(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법적 혼인은 하지 않았지만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 다니던 일터에 임신 소식이라도 알려지면 이들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쫓기기 일쑤다.
이들은 모아둔 돈으로 일단 아기는 낳았지만, 아기를 맡길 데가 없어 재취업도 못하는 실정이다.
◇ "직원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느냐…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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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에 사는 미혼모 김 모(37) 씨는 출산 진통이 오는 날까지 화사에 출근했다. 조금이라도 더 일을 해 아기 출산비용과 양육비를 미리 벌어놔야 해서다.
하지만 김 씨는 임신소식이 알려짐과 동시에 이미 회사에서 직위해제를 당한 상태였다. 사장은 퇴사하지 않는 그를 향해 "내 직원이 미혼모인 게 싫다. 아래 직원이 너를 어떻게 보겠느냐"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김 씨는 "믿었던 가족들마저 출산 직전까지 아이를 지우라고 했다"면서 "내가 아이에게 몹쓸 짓을 한 범죄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울먹였다.
(사진=미혼모 측 제공)
아이가 태어나니 본격적으로 생활고가 시작됐다. '아이돌봄서비스' 지원 대상에서 탈락하자 김 씨의 재취업도 좌절됐다. 아기를 맡길 사람도 찾아봤지만 부르는 게 값이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김 씨는 최근 어린이집 배정 가능성이 그나마 높다는 지역으로 이사했다. 그러는 사이 경력 단절 기간은 지금도 늘어나고 있다.
그는 "예전엔 미혼모 문제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처하니 문제의 심각성이 한둘이 아니다. 왜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남들의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 먼저 일을 그만둔 미혼모도 있다.
(사진=미혼모 측 제공)
9개월 난 딸과 단둘이 사는 김 모(32) 씨는 임신으로 배가 불러올 때쯤 다니던 도서 관리직을 그만뒀다. 미혼인데 배가 나오는 걸 회사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김 씨는 건강이 많이 나빠져 좀 쉬어야겠다고 둘러말한 뒤 퇴직했다. 그는 "뉴스에서도 보듯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에 지레 겁을 먹고 그만뒀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 10년간 모아둔 돈으로 생활비와 양육비를 충당해야했다. 김 씨는 "사회생활을 하며 벌어둔 돈이 있어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면서 "경제력이 없는 20대 초반의 미혼모들은 얼마나 힘들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 "경력단절에 아이 맡길 곳까지 없어…"
(사진=미혼모 측 제공)
현재 국내에 공식 집계된 미혼모 숫자만 2만4487명(통계청, 2015)이다. 자신의 신분을 밝히길 꺼려하는 미혼모의 특성상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가 육아문제와 경력단절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임신 전 직장을 다녔던 미혼모의 97%가 임신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했다(한국미혼모지원네크워크, 2016). 반면, 임신으로 직장을 그만둔 경험이 있는 기혼여성의 비율은 42.3%다(통계청,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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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에 대한 정부지원도 일반 한부모가족의 경우와 별반 차이가 없다.
미혼모는 다른 한부모가족과 똑같이 중위소득 기준을 충족하면 만 24세 이하는 17만원, 그 이상은 15만원의 아동양육비를 매달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육아비용으로 매달 평균 107만원(여성가족부 '2016 육아문화 인식조사')을 쓰는 것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미혼모들에게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 초기 3~4년이 고비다. 하지만 이들에게 생후 3개월 이상 아기를 대상으로 하는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에 우선권은 없다. 여가부 관계자는 "양육공백이 있으면 중위소득 기준에 따라 아이돌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데, 미혼모와 맞벌이가족 모두 같은 소득기준을 적용 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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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박영미 대표는 "미혼모들은 임신 뒤 경력이 단절돼 몇 달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진다"면서 "아이와 함께 생활고를 딛고 일어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끝까지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교수는 "미혼모들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이 결국 경제적 빈곤으로 이어지는 꼴"이라면서 "스웨덴에선 정부가 미혼모 가족에 우선 금전적으로 지원을 한 뒤, 아이의 아버지가 소득이 있을 경우 그에게 구상권을 청구한다"며 제도적 장치마련을 촉구했다.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진미정 교수는 "미혼모는 친부와 거의 연락이 안 돼 다른 한부모가족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훨씬 취약한 상황에 있다"면서 "정부의 경제적 지원을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미혼모에 대한 공동생활시설 지원은 18개월 연장 정도에서 그치는데, 이를 적어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엄마들이 본격적으로 일할 수 있는 기간까지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