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바른정당 대선후보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좌로부터. 자료사진
5‧9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중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구(舊)여야 간 후보 단일화에 대한 뚜렷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우세인 야권에선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거리를 두고 있는 반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보수진영에선 여전히 단일화 요구가 거세다.
보수진영에서 단일화에 목매는 또 다른 배경에는 대선 패배 이후 책임론을 면하기 위한 ‘보험 들기’ 차원의 포석이 깔려 있다. 설사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더라도 미리 요구했던 쪽에선 변명의 여지가 있지만, 끝내 단일화 요구를 외면한 후보 측은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책임론을 뒤집어쓰게 된다.
자유한국당에선 홍준표 후보가 선거비용 보전 수준인 15% 이상 득표하지 못하면 2선 후퇴한 친박의 부활이 예고된다. 바른정당에선 유승민 후보가 완주 끝에 고전할 경우 현재 사퇴론(論)을 띄우고 있는 김무성 선거대책위원장의 측근 의원들이 오히려 득세할 수 있다.
◇ 安 하락세…劉 사퇴시켜 한국당 의탁하려는 바른정당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지난 21일 밤늦게 김무성 선대위원장과 주호영 원내대표, 정병국 전 대표 등과 비공개로 만나 후보 단일화 혹은 사퇴 요구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이 자리에서 “완주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후보는 22일 울산지역 유세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후보 단일화 요구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저는 흔들림이 없다”며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특히 일각의 ‘사퇴’ 요구에 대해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후보를 뽑아 놓고서 이런 식으로 당에서 흔드는 점에 할 말이 많지만, 귀를 막고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겠다”며 불쾌한 심정까지 드러냈다.
이 같은 반응은 김재경 의원 등 소속 의원들이 한국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김무성 선대위원장의 측근 의원의 경우 최근 사석에서 “유 후보가 TV토론으로 이미지가 좋아졌을 때 물러나는 것이 이롭다”며 반(半)공개적으로 사퇴론을 주장했다.
유 후보에 반대하는 단일화 혹은 사퇴론은 그 방향성이 최근 안 후보에서 홍 후보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와 오차범위 내 박빙에서 10%p 안팎으로 벌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때문에 당 일각에선 “실제 대선 승리를 위한 단일화라기보다 선거 이후 연대할 대상을 찾다보니 홍 후보로 귀결된 것”이란 자조 섞인 말까지 흘러나온다. 바른정당이 사실상의 대선 패배 상황을 가정하고, 선거 이후 투항에 앞서 친박계의 반감이 강한 유 후보의 사퇴를 제물로 바치려 한다는 것이다.
중도 사퇴할 경우 정치적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유 후보 입장에선 더욱 완주와 선거 후 독자세력화에 주력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는 홍 후보를 겨냥해 “우리나라 보수층이 형사 피고인, 성범죄 미수자라고 해야 할 사람을 대표로 생각할 리 없다”며 보수 적통 경쟁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다.
◇ 돼지흥분제에도 洪 못 내치고, '주적 논란'에도 文 못 때리는 한국당
자기 당 후보를 강하게 지원하지 못하는 분위기는 한국당도 마찬가지다. 당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민주당이 홍 후보의 ‘돼지흥분제 사건’과 같은 호재에도 예전처럼 거세게 반응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문재인 후보의 ‘송민순 청와대 문건’에 다소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한국당의 딜레마는 문 후보를 비판할수록 홍 후보가 아닌 안 후보가 반사이익을 얻게 된다는 데 있다. 안 후보가 2차 TV토론회에서 문 후보가 답하지 못한 사안에 대해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말하는 등 보수층 흡수에 나서면서 색깔론이 그리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게 됐다는 얘기다.
이 같은 난점은 최근 한국당의 텃밭인 대구‧경북(TK)이 분열된 상황과 무관치 않다. 한국갤럽이 지난 2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홍 후보의 지지율은 26%로 다자구도 중 1위였지만, 문 후보(24%), 안 후보(23%) 등과 오차범위 내 박빙이었다. (이상 인용된 여론조사와 관련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거 이후 보수의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한국당 입장에선 지지층이 붕괴되는 것을 막는 것이 대선 승리보다 급선무인 셈이다. 때문에 안 후보가 보수와 TK 표심을 잠식하지 않도록 막고, 지지율 2위 자리를 탈환하는 것이 대선승리보다 현실적인 목표가 되고 있다.
친박계의 이해관계는 한층 더 미묘하다. 한 친박 의원은 최근 사석에서 “우리가 돼지흥분제 사건에도 홍 후보를 버리는 못하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고 털어놨다. 대권보다 당권을 노리는 친박 입장에선 홍 후보가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조직의 분열을 막아줬기 때문에 기대한 역할을 다 한 것이고, 책임론을 덧씌워 퇴출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꽃놀이패라고 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