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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뒤끝작렬] '영혼 있는 공무원' K가 그립다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은 왜 대선 공약에 등장했을까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그때 그 일의 속 사정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편집자 주]

    (그래픽=강인경 디자이너)

     


    "우리가 의(義)를 들어 여기에 이르렀음은 그 본의가 결코 다른 데 있지 아니하고, 창생을 도탄 중에서 건지고 국가를 반석 위에다 두자 함이라. 안으로는 탐학한 관리의 머리를 베고…."

    K의 페이스북 대문 사진에는 2년째 전봉준 장군의 격문이 걸려 있다. 부패한 관리를 엄벌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려던 전봉준의 사상이 곧 K의 간절한 바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K와 알고 지낸 지 올해로 7년째다. 지난 2011년 서울시를 출입하면서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K와 자연스레 안면을 트게 됐다.

    그는 올곧은 소리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정부 부처에 만연해 있는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를 K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었다.

    특히 그는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는 것도 모자라 세금을 들여 투표에 부친다는 사실에 몸서리를 쳤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지난 2011년 8월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시장직을 걸겠다"고 밝힌 뒤 시민들께 송구하다면서 무릎을 꿇었다.(그래픽=강인경 디자이너)

     

    서울시에서 호들갑스럽게 정책을 발표하거나 보도자료를 뿌릴 때마다 그를 찾아갔다. 그러면 K는 '이건 하나마나한 정책이다', '이건 잘못됐다'는 식으로 거품을 걷어내주었다.

    당시 K는 공직 생활 15년차였다. 서울시 복지와 주택, 교통 등 핵심 정책 부서를 거친 K의 식견이 탁월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아첨꾼에 둘러싸인 행정 수장에게 공개적으로 쓴소리를 내는 공무원은 K가 거의 유일했다.

    그건 경직된 공직 사회에서 K의 단점(?)이기도 했다. K는 이명박이든 오세훈이든 박원순이든 역대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일단 쓴소리를 하고 봤다. 승진에 목매 상관의 비위나 맞출 줄 아는 공직자들에게 그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영혼 없는 공무원'은 도처에 있었다. 오세훈 서울시장 재임 시절 전시행정의 표본이었던 세빛둥둥섬(현재 세빛섬)과 서해뱃길 사업 등에 대해 찬양 일색이던 공무원들이 박원순 시장이 온 후로 180도 달라졌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건 정말 문제가 많았던 사업이라는 둥, 자신도 처음부터 반대했다는 둥, 심지어 어느 식사 자리에서는 불명예 퇴진한 오 전 시장을 조롱하기까지 하는 공무원의 이율배반성을 보면서 나는 삼켰던 밥알을 다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환멸을 느꼈다.

    자유한국당 윤상현 의원(그래픽=강인경 디자이너)

     

    출입처를 옮긴 후에도 이따금 안부를 주고받던 K를 지면에서 보게 된 것은 2014년 5월이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K가 윤상현 당시 사무총장으로부터 고발당한 것이었다.

    K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공무원의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었는데, 과연 법은 온당했을까?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 위해 글의 전문 또는 일부를 그대로 싣는다.

    "대통령 하나 바뀌면 많이 엄청 많이 바뀐다. 오세훈이 박원순으로 바뀌니 많이 바뀌더라.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편지를 썼더니 오세훈은 한 번도 답장 안하더라. 그런데 박원순은 꼬박 꼬박 한다 늦은 밤에 또는 이른 새벽에 하더라"

    (새누리당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가 수락 연설을 하면서 눈물 흘리는 사진에 대해) "자기 자식 때문에 우는 놈 정신 빠진 놈,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네 이놈아, 안산에 합동분향소 아이들, 영정사진 가서 봐라"

    "사고 나서 한 달 만에 담화문 읽기 수첩이 필요 없는 상황 박그네가 한 일, 버스 타고 부정개표하기, 검찰 시켜 통진당 빨갱이 만들기, 걱정원 시켜 탈북자 간첩 만들기…(중략)…(아고라에서 펌)"

    지난 2015년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재판에 넘겨진 K는 벌금 25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고 공무원직을 잃었다. 가족에게 든든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나는 그에게 힘내라는 말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뻔한 위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제공 김민호 씨)

     

    서울시 7급 공무원이었던 K, 그의 이름은 김민호다. 그는 확정 판결 이후 대법원 앞에서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물론 현재까지 바뀐 것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이중적이다. 국민에 대해서는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면서 같은 국민인 공무원에게는 허용하지 않는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보장된다'고 규정한 헌법 7조 2항과 이에 기반한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등은 공무원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족쇄로 작용하곤 한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같은 해 8월 당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새누리당 연찬회에서 "총선을 외치면 필승을 외쳐달라"고 건배사를 했는데, 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 장관은 이듬해 장관직을 사퇴하고 직접 총선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이렇듯 대한민국에서 법의 잣대는 고위직에 관대하고 하위직에는 엄격하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어떨까?

    국정농단의 주역들. 왼쪽부터 김기춘, 조윤선, 안종범, 문형표, 김종덕, 정관주 씨(그래픽=강인경 디자이너)

     

    한국과 달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대다수는 공무원의 정치 참여를 보장하고 있다. 또 지난해 유엔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한 현행법이 국제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공무원의 정치기본권 공약을 내놓은 사람은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다. 심 후보는 공약집에서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기본권과 정치활동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다시, K의 이야기. 최근 오랜만에 K와 통화를 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기사를 마무리한다.

    "공무원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됐으면 최순실 사태도 없었을 거예요. 정권에 눈치 보지 않고 말할 수 있잖아요. 대통령이 국정농단하고 있을 때 최초로 문제 제기했던 유진룡 장관 쫓겨났죠. 최순실이 권력서열 1위라고 폭로한 박관천 경정도 묵살당했죠. 그런데 (공직 사회에선) 내부자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돼야 국민 의견이 반영될 수 있어요. 안 그러면 그게 독재자이지 뭡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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