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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하던 공원에 찾아온 불편함…"망각하고 계셨나요?"



공연/전시

    평온하던 공원에 찾아온 불편함…"망각하고 계셨나요?"

    [노컷 리뷰] <망각댄스, 세월호편> 1탄 성수대교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봄기운이 완연하던 23일 일요일 저녁 5시께. 서울 성동구 서울숲 중앙 잔디에는 가족 혹은 연인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공원 한복판에서 8명의 남녀가 갑자기 음악을 크게 틀고 스윙댄스를 선보였다. 마치 영화 ‘라라랜드’의 한 장면 같았다.

    음악소리를 들은 시민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어린아이와 부모, 그리고 청춘남녀 등, 저마다 자리를 잡고 잔디에 앉아 손뼉 치며 춤을 감상했다. 한 편의 길거리 공연은 볕을 받아 더욱 빛났다. 구경하는 관객들의 고개와 어깨가 절로 리듬을 탔다. 어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고 춤추는 모습을 찍었다.

    그때 갑자기 한 댄서가 춤을 멈추고, 큰 소리로 외쳤다. “2014년 4월 15일”. 순간 흥이 깨졌다. 음악은 계속 흘렀는데, 댄서들은 춤을 추지 않았다. 관객의 시선은 그 댄서에게로 쏠렸다.

    댄서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발했다”고 했다. 이어 나머지 댄서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세월호의 사고 타임테이블을 세세하게 읊어나갔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관객들의 표정은 당황스러워 보였다. 신나게 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표정이었다. 더러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보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또한 쉽사리 자리를 뜨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댄서들이 1명씩 돌아가며 외워서 말하는 세월호 타임테이블은 상당히 길었다. 4~5분여가 지났을까. 2014년을 넘어 2015년의 차례가 됐고, 한 댄서가 이렇게 말했다. “2015년 새해가 밝았지만,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렀다.” 이 말이 끝나자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고, 그들은 다시 춤을 췄다.

    그들은 신나게 춤을 추다 또 멈춰 타임테이블을 읊었고, 다시 “2016년 새해가 밝았지만,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렀다”고 말한 뒤 춤을 추는 상황을 반복했다. 처음에는 분명 신나보였던 그들의 춤은, 언제부턴가 몸부림처럼 보였다. 무언가 잊고 싶어 온힘을 다해 발악하는 처절한 몸짓이었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이 공연은 극단 신세계(대표 및 상임연출 김수정)가 제작한 ‘<망각댄스_세월호편> 1탄 성수대교’였다. 이날 오후 4시 압구정역 1번출구에서 모인 배우와 시민 등 40여 명은 도보로 성수대교를 건너 서울숲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 침묵했고, 성수대교 가운데에서는 잠시 멈춰 눈을 감고 강바람과 빠르게 이동하는 차로 인한 다리의 진동을 느꼈다.

    이어 서울숲에서 짧은 공연을 마친 뒤 수도박물관을 통과해 성수대교 북단에 있는 '성수대교참사 희생자 위령비'까지 순례했다. 위령비 앞에서 희생자 32명을 추모했고,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성수대교 북단, '성수대교참사 희생자 위령비' 앞.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극단 신세계는 지난해 진행된 혜화동1번지 6기동인 2016기획초청공연 ‘세월호’ 참가작 [사랑하는 대한민국] 공연에서 “극장 밖을 나가 광장으로 가겠다”고 외쳤다. 이번 공연은 그 약속을 이행한 것이다.

    극단 측은 "우리가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반복된 참사들을 경험했는지 가만히 떠올려 보자. 반복되는 이유는 평온을 유지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조장하는 일상이 우리들에게 학습시킨 ‘망각’ 때문이 아닐까"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는 이 모든 감각의 망각을 거부해야 진정한 평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래서 대한민국의 과거 참사 현장에서 세월호를 다시금 대면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8명의 행위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세월호 참사의 타임테이블을 모두 암기해 발언했고, 사교 댄스로 잘 알려진 스윙댄스를 통해 시민들의 흥미를 이끔과 동시에 마치 족쇄를 찬 듯한 스윙댄스의 몸짓으로 망각으로 인한 우리의 고통을 표현해냈다"고 설명했다.

    극장 안이 아닌 밖으로, 광장으로 나온 배우들은 오는 12월까지 매달 한번씩 평온했던 시민들의 일상에 균열을 낼 예정이다.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게, 직접 대면하게 하려는 의도이다.

    과거 참사 현장도 계속 방문한다. 5월에는 경북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 현장을 찾아 <망각댄스_세월호편> 2탄을 선보인다. 이어 '삼풍백화점'(6월),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7월), '서해 훼리호'(8월), '가습기 살균제'(9월), '경주 마우나 리조트'(10월), '판교 공연장 환풍구'(11월), '세월호'(12월) 사고 현장으로 장소를 옮긴다.

    극단 신세계는 거듭 강조해 말했다. "참사보다 무서운 것은 망각"이라고. 그들의 말처럼 안전한 대한민국, 평화로운 대한민국은 '3년이나 했는데 이제 그만하자, 잊자'고 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연은 서울문화재단 2017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창작지원사업 선정작이다. 시민예술단체 스윙댄스놀이터 딴따라 땐스홀이 협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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