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할 말이 많습니다' 지난 23일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거친 파울을 주고받았던 삼성 이관희(왼쪽)와 인삼공사 이정현. 26일 3차전에서 인삼공사가 승리하면서 이정현은 팬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놓을 수 있었지만 이관희는 관중석에서 삼성의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자료사진=KBL)
안양 KGC인삼공사 주장 양희종(33 · 194cm)은 경기 후 "정말 이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야 말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경기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와 당당하게 인터뷰를 수 있는 '승자만의 특권'을 간절하게 원했다는 것이다.
본인보다 사태의 당사자였던 후배 이정현(30 · 191cm)의 발언 기회를 주고 싶었다는 캡틴이었다. 그리고 결국 대역전승을 거두고 둘은 비로소 가슴 속 깊숙한 곳에 담아뒀던 속내를 털어놨다.
인삼공사는 26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삼성과 '2016-2017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3차전을 88-82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3쿼터까지 8점 차 열세를 뒤집고 7전4승제 시리즈에서 2승(1패)에 선착했다.
양희종은 이날 13점 중 4쿼터에만 양 팀 최다인 8점을 집중시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양 팀 최다인 6도움을 기록, 팀 공격을 이끌며 주장의 본분을 다했다. 이날 인삼공사는 데이비드 사이먼이 양 팀 최다 34점, 오세근이 22점에 팀 최다 12리바운드를 올렸지만 숨은 공신은 양희종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양희종은 인상적인 멘트를 내놨다. 양희종은 "오늘은 정말 이기고 싶었다"면서 "그래야 취재진 앞에서 공식적으로 떳떳하게 무엇이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2차전 당시 벌어진 사건과 관련한 발언권이었다.
'힘내라! 현정, 아니 정현아!' 인삼공사 주장 양희종(오른쪽)이 26일 삼성과 챔피언결정전 3차전에서 이정현을 격려하고 있다.(잠실=KBL)
2차전에서 두 팀 선수들은 1쿼터 도중 거세게 엉켰다. 이정현이 밀착 수비하던 삼성 가드 이관희(29 · 190cm)의 목을 팔꿈치로 밀었고, 넘어진 이관희가 격분해 곧바로 일어나 이정현을 강하게 밀어 넘어뜨리며 두 팀 선수들이 코트에서 대치하게 된 것.
결국 이관희는 퇴장 파울이, 이정현은 U 파울이 선언됐다. 사후 재정위원회에서 이관희는 1경기 출장 정지와 벌금 200만 원, 이정현은 벌금 150만 원 징계를 받았다. 쌍방 과실이 인정된 것이었다. 이관희의 파울이 더 중했지만 이정현도 빌미를 제공했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팬들과 여론은 이정현에 더 많은 비난을 가하는 모양새였다. 평소 상대 수비에 다소 과한 동작, 이른바 할리우드 액션으로 파울을 유도하는 경우가 적잖았던 이정현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더불어 공격적인 수비로 가로채기를 즐기는 인삼공사의 플레이 스타일도 싸잡아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히려 인삼공사에게는 약이 됐다. 김승기 감독과 선수들은 이정현을 격려해줬고, 팀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정현은 3차전에서 공을 잡을 때마다 삼성 팬들의 거센 야유를 받기도 했지만 4쿼터 결정적인 가로채기와 도움 2개씩으로 승리에 힘을 보탰다.
특히 이정현에게 경기 후 공식 인터뷰에서 발언 기회를 주려는 동료들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다. 경기 후 양희종은 "여러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거 같았다"면서 "사과를 하려고 해도 이겨야 (기자회견에서)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정말 이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인삼공사는 2차전 당시 패배하면서 선수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도대체 왜' 23일 챔프전 2차전에서 삼성 이관희가 팔꿈치로 자신을 밀어 넘어뜨린 데 대해 격분해 인삼공사 이정현을 밀치는 모습.(자료사진=KBL)
통상 경기 후 두 팀 감독은 인터뷰를 하지만 선수들은 승리팀일 경우에만 회견에 나선다. 취재진의 요구가 있을 때면 진 팀 선수도 인터뷰를 하지만 극히 드문 경우다. 양희종은 "친한 기자 몇 분들에게 말할 수도 있지만 많은 취재진 앞에서 떳떳하게 공식적으로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말을 후련하게 쏟아냈다. 양희종은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떠나서 조금 아쉬웠다"면서 "이정현과 이관희 모두 잘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여론이나 팬들이나 한쪽을 너무 나쁜 사람으로 만든 거 같아서 조금 섭섭했다"고 말했다.
이정현 역시 2차전 이후 3일 만에 발언 기회를 얻었다. 이정현은 "2차전 이후에 본의 아니게 욕을 많이 먹었는데 힘들었다"면서 "진심으로 가격하려는 건 아니고 내가 부족해 감정 절제를 못 해서 거친 수비에 참지 못하고 공격자 파울을 하게 돼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챔프전인데 그런 모습 나와 죄송하고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속앓이도 털어놨다. 이정현은 "주축 선수로 팀에 피해를 입힌 것 같아서 마음 고생도 심했다"면서 이날 팬들의 야유에 대해서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고, 처음 겪어본 일이고 원정이라 심리적으로 흔들리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팀 동료들이 격려해줬다"면서 "희종이 형과 사이먼, 오세근 등 주축들이나 특히 백업 선수들까지 너무 잘 해서 승리를 안겨준 데 대해 감사한다"고도 했다.
'친구야, 정말 고맙다' 인삼공사 이정현(오른쪽)이 26일 삼성과 챔프전 3차전에서 역전승을 거둔 뒤 오세근을 격려하고 있다.(잠실=KBL)
일단 이정현과 인삼공사는 3차전 승리와 기자회견을 통해 쌓였던 울분을 시원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어떻든 간에 본인과 팀의 입장을 어쨌든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밝힐 수 있었던 것이다. 주장 양희종을 필두로 전체 선수단이 하나가 됐다.
반면 이관희는 이런 기회를 아직은 얻지 못했다. 이관희는 출장 정지로 3차전을 코트에서 볼 수는 없었고, 만약 삼성이 이겼어도 회견에 나설 수도 없는 처지였다. 양희종의 말처럼 이날 경기 전 이관희는 몇몇 기자들과 만나 당시 격한 파울을 해야만 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농구 취재진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관희와 삼성도 할 말은 많을 터. 발언 기회는 얻을 수 있다. 이관희는 오는 28일 4차전에 나설 수 있다. 3차전을 앞두고 "(출전 정지로 팀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했던 이관희는 4차전에서 속죄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이정현은 이관희와 재대결에 대해 "그 선수만의 플레이 스타일 있기 때문에 신경쓰거나 흥분하지 않도록 신경전 대신 챔프전에 걸맞는 경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과연 삼성은 4차전에서 이관희에게 발언권을 줄 수 있을까, 또 이관희도 기자회견에 나설 만큼 활약을 펼쳐 스스로 기회를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