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사드반대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 사태로 치러지는 장미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세우며 표몰이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새 시대를 열겠다는 후보들의 다짐이 무색하게, 구태 선거문화가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선거문화 이제 바꿉시다' 연속기획을 통해 시대적 요구와 괴리된 선거문화를 짚어보고 변화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편집자주]
19대 대선이 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선거벽보 훼손부터 반대 측 지지자 폭행 등 구시대적 선거범죄는 물론 SNS 등을 통한 흑색선전 등 21세기형 선거범죄가 판치고 있다.
결국 국정농단과 구태정치에 분노해 사상초유의 대통령탄핵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의 성과를 유권자들과 정치권이 스스로 후퇴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새정치 요구한 촛불민심'…선거범죄는 되레 급증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3차 범국민행동의 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촛불을 들고 파도타기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6일까지 선거벽보‧현수막 등을 훼손한 사례는 236건에 달했다. 벽보가 지난 17일부터, 현수막이 지난 20일부터 게시된 점을 고려하면 열흘 만에 200건이 넘는 범죄가 발생한 것이다.
서울 은평구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특정 후보의 벽보를 7차례나 도려내는가 하면 강원도 춘천에서는 장난삼아 라이터로 벽보를 훼손하는 일 등이 발생했다.
대구에서는 50대 남성이 모 후보의 유세차량에 올라타 곡괭이로 전광판을 부수고 선거사무원을 폭행하는 등 선거운동과 관련한 폭력사태도 비일비재하다.
경찰은 "급증하고 있는 벽보훼손, 선거홍보 방해 범죄에 대해 순찰을 강화하고 엄중히 처벌하겠다"며 5억 원의 신고보상금까지 내걸었다.
◇ '사이버 네거티브'는 지난 대선보다 4.5배 증가선거현장에서 물리적으로 이뤄지는 구시대적 선거범죄보다 더 심각한 것은 SNS 등을 통한 흑색선전과 허위사실 유포 등 21세기형 선거범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이버위반행위는 지난 18대 대선보다 4.5배나 늘어 28일 기준 3만 2502건에 달했다.
재외국민 이 모(67) 씨는 유튜브에 'A 후보 빨갱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게시해 재판에 넘겨졌고 한 네티즌은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백과'에 A 후보의 국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바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공직자들도 허위사실 공표 등 각종 흑색선전에 가담하고 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놈현·문죄인의 엄청난 비자금'이라는 제목의 글과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경찰수사를 받고 있다.
적폐청산‧새정치 등을 전면에 내세운 각 정당과 후보들은 이같은 구태 선거문화를 퇴출시키기는데 앞장서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는 'SNS에 상대후보를 비방하라'는 내용의 문건까지 만들어 당의 지침으로 내리기도 했다. 후보 가족들을 상대로한 해묵은 의혹제기는 과열을 넘어 고소‧고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처음으로 단속대상에 포함된 지역‧성별 비하 역시 지금까지 총 382 건이나 적발됐다. 선관위 관계자는 "건수로 봤을 땐 지난 18대 대선보다 비방‧허위사실 공표 등 사이버위반행위가 4.5배 증가한 추세"라며 "각종 매체가 발달하면서 퍼져나가는 속도가 매우 빨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새로운 정치' 외친 정치권‧시민…결국 구태반복
이같은 구태 선거범죄가 결국 대통령탄핵과 장미대선을 이끌어낸 촛불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으며 '새로운 정치'를 약속한 정치권 역시 스스로 국민과의 약속을 깨고 있다는 지적이다.
고려대 사회학과 이내영 교수는 "정치실패 때문에 조기대선을 하는 것"이라며 "많은 국민들이 제대로 된 정치를 바라는 마음인데 오히려 선거범죄가 판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책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네거티브가 난무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같은 대학 윤인진 교수 역시 "촛불집회의 경우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평화집회를 해야한다는 규범이 강하게 작동했지만 SNS에서는 개인행위를 규제하는 규범이 매우 약하다"며 "그러다보니 공격적이고 음해적인 행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터넷에서 상대방에게 불리한 정보를 확산하는 것은 하나의 트렌드가 됐고 다음 선거 때는 더욱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