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근로자복지센터가 개최하는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가 올해로 5회를 맞았다. '노동', '노동인권'을 주제로 한 다양한 영화를 통해 노동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 노동현실을 함께 되짚는 소통의 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보통 슈퍼우먼'이다. 낮은 곳에서 힘겨운 노동을 담당하며 육아노동까지 책임지는 '여성노동자'에 초점을 맞춰, 국내와 국외를 아우르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CBS노컷뉴스는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내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29~30일 양일 간 열리는 '보통 슈퍼우먼'의 상영작을 훑고, 영화의 메시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관객과의 대화'를 전한다. [편집자 주]
왼쪽부터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 윤민례 분회장, 김미례 감독, 박지선 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29일 개막한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의 두 번째 작품은 지혜 감독의 '얼굴들'과 박지선 감독의 '따뜻한 밥'이었다. 두 작품 다 우리네 '어머니'들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얼굴들'은 갑작스레 공장을 이전하면서 해고 통보를 받은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다. 대부분 기혼자여서 아이가 있는 '엄마'였던 이들은, 냉정한 자본과 싸우는 것만큼이나 남편과 자녀, 시부모 등 가족들을 설득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었다. 남성들이 중심이 된 투쟁에서 아내가 뒷바라지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과 달리, '아내들'의 투쟁은 남편의 '허락'이 선행되어야 했다. 삭발, 단식, 한강 철교 오르기, 천막농성 등 긴 투쟁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따뜻한 밥'은 한전의료재단 한일병원에서 환자식의 조리·배식을 담당하던 여성노동자 19명이 일시해직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적게는 2년, 많게는 30년 동안 묵묵히 일해 온 이들은 단지 민주노조를 만들어 마땅한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잘리고, 병원과 용역업체를 상대로 천막농성과 집회를 진행한다.
영화 상영 후, '얼굴들'에 나오는 금속노조 시그네틱스 윤민례 분회장과 '따뜻한 밥'을 만든 박지선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섰다. 진행은 '외박', '산다' 등을 제작한 김미례 감독이 맡았다.
◇ 영화 제작 후 11년, 시그네틱스 노조는 여전히 싸우고 있다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상영작 '얼굴들'
2001년부터 시작된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의 투쟁을 담은 '얼굴들'은 만들어진지 어느덧 11년을 맞았다. 윤 분회장은 지나간 시간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2001년 처음 발생한 '해고'는 지난해 9월 3번째 해고로까지 이어졌다. 영풍 자본과의 싸움은 법정 소송으로 번졌고,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일부 인원이 복직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원은 9명이다. 이들이 외치는 것은 변함없다. 해고 철회와 파주공장으로의 복귀다.
윤 분회장은 "노동조합을 해 보니 내 삶도 지켜주고 나의 일자리도 지켜주고 세상을 바로보는 눈을 알려줬다"며 "(우리가) 파주(공장)에 가면 노조 만들 걸 아니까 못 가게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영풍이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우리를 없애려고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우린 여전히 금속노조 깃발 아래 있다. 지금은 9명이 움직이지만 고맙다"며 "어렵지만 투쟁 승리해서 현장에 들어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윤 분회장은 "저희 영상 찍을 때까지 제가 주인공인 줄 몰랐다"며 "(투쟁을 통해) 내가 노동자라는 것을 알았고, 여성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들의 격려 받으면서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시그네틱스 조합원 숫자가 줄어서인지 (회사가 저희를) 더 얕보는 것 같다"면서도 "작은 곳에서 약하게 투쟁하고 있지만 개돼지 되지 않도록, 더 나은 대한민국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 환자의 건강권과 식당노동자의 노동권은 연결돼 있다
제5회 서대문구 노동인권영화제 상영작 '따뜻한 밥'
'따뜻한 밥'은 박 감독의 졸업작품이다. 원래 다른 단체를 찍으려고 다니다가, 우연히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한일병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식당노동자들의 투쟁을 만났다.
박 감독은 "26일차 됐을 때부터 찍었다. 조금 더 일찍 갔더라면, 정말 처음 조직하셨을 때부터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며 "이런 투쟁현장을 가는 게 처음이라 저 개인적으로는 많은 공부가 됐고, 어머님들을 만나게 된 것도 제게 되게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은 100일 넘게 병원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면서 전원 고용승계를 요구했고, 우여곡절 끝에 교섭의 자리를 얻어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복직은 투쟁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당시 천막농성부터 같이 했던 한옥선 어머니는 "복직 후에 차별대우 안한다고는 했지만, 못 견딜 정도로는 안 해도 은근슬쩍 했다. '네가 이거 못 견디면 나가라' 하는 식으로"라며 "(투쟁 과정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 이런 건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투쟁의 과정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문제를 담지 못한 게 있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 급식 문제는 병원장에게 책임이 있다. 투쟁할 때도 얘기했던 게 환자 식사는 치료행위의 일부라는 것이었다. 환자 식사의 질이 떨어지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용역업체들은 이윤을 남겨야 하니까 어머님들 수당도 다 떼먹었다. (병원은)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어머님들이 병원 직원(직고용)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종을 안해주기도 했다. 배식을 하면서 환자와 맞닥뜨리는 입장에서 병 옮길 수도 있는 것이고, 누구나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식을 먹지 않나. 환자의 건강권과 노동자의 노동권이 다른 문제가 아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