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사진=국회사진취재단)
"스트롱맨"을 자처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바른정당 탈당파를 끌어안으면서 '심리적 단일화'라는 최대 승부수를 띄웠지만, 친박들의 반발로 제동이 걸렸기 때문이다.
결국 홍 후보는 탄핵 국면에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친박 핵심들의 '징계 해제'를 공언하며 바른정당 탈당파를 복당(復黨)시키자고 주장했다. 친박계에 '당근'을 제시하며 사실상 읍소한 셈이다.
대선을 코 앞에 두고도 당을 장악하지 못한 홍 후보의 위태로운 처지가 부각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바른정당 탈당파에게는 '친박 복권(復權)'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거세다.
◇ 洪 '보수통합 승부수' 삐걱…실상은 '스트롱 친박'?홍 후보는 그간 강한 리더십을 장점으로 부각시키며 본인을 '스트롱맨'이라고 불러왔다. 그런 그에게 '바른정당 탈당파와의 심야 담판 후 집단 복당 성사'는 본인의 장점을 부각시킬 최대 승부수와도 같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는 평이다.
당내 최대 주주 격인 친박계가 '탄핵 찬성세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집단 반발하면서 홍 후보가 이들에게 '재가(裁可)'를 청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본인의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친박계 중에서는 바른정당 의원들을 무조건적으로 복당시킬 경우 "당을 떠나겠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결국 홍 후보는 4일 "이제 친박들 당원권 정지하고 그런 것을 다 용서하자"며 "모두 하나가 돼서 5월9일 우리가 압승하기 위해 바른정당에서 오려고 하는 사람들도 다 용서하자. 복당시키는 게 맞다"고 했다. 친박 핵심들의 징계를 풀어줄 테니, 복당을 허용하자는 사실상의 '읍소'다.
이번 일로 홍 후보와 친박계 간 묘한 역학관계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내 비주류로서 대권을 노리는 홍 후보와 보수 텃밭 TK(대구·경북)의 대주주로서 대선 후 복권을 노리는 친박계가 전략적으로 손을 잡았다는 관측은 줄곧 이어져왔다.
실제로 홍 후보 측 관계자는 바른정당이 친박 인적청산을 강하게 요구할 당시 "제명을 시도했다가 실패할 경우 후보가 쫓겨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친박계의 입김이 거세다는 점을 시사했었다. 보수진영 경쟁자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홍 후보는 국정농단의 책임이 있고 대통령이 망쳐놓은 친박 세력에 업혀 대선후보가 됐다"고 비판해왔다. 한국당 내에서 실질적 '스트롱맨'들은 친박계라는 뜻이다.
나아가 한 친박 의원은 사석에서 "우리가 돼지흥분제 사건에도 홍 후보를 버리는 못하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대권보다 당권을 노리는 친박 입장에서는 홍 후보가 대선에 패배하더라도 조직의 분열을 막아줬기 때문에 기대한 역할을 다 한 것이고, 책임론을 덧씌워 퇴출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꽃놀이패라고 했다고 한다.
◇ 바른정당 탈당파가 친박 복권시키나…'멘붕 기류'이런 상황에서 한국당 복당을 택한 바른정당 탈당파들의 속내는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함께 한국당 복당을 결의했다가 바른정당 잔류로 돌아선 의원들이 나오면서 보수통합의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던 이들의 전략에는 일단 금이 갔다.
게다가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복당이 '친박계 징계해제'로 귀결될 수 있는 상황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다. 자신들이 '패권주의', '수구세력'이라는 표현으로 거세게 비판해왔던 친박계를 복권시켜주는 모양새가 되면 '소신 대신 현실을 택했다'는 비난이 더욱 거세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4일 서울 모처에서 회동을 갖고 향후 대응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당 선언을 번복하고 잔류를 택한 황영철 의원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탈당 번복을 고민하는 의원이) 서너 분 정도"라고 말했다.
황 의원은 "친박계 의원들이 그렇게 나서서 비난하고 다시 목소리를 내고 이런 것을 들으면서 이거 좀 아닌 것 같다. 이렇게 솔직히 저하고 또 통화한 의원들도 계신다"고 덧붙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놓인 바른정당 탈당파의 '멘붕 기류'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같은 날 한국당의 친박 복권 기류에 대해 "탈당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원권) 정지를 푸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귀를 의심케 한다는 뜻이다.
유 후보는 "홍 후보에 대해 입을 떼기가 싫은데, 그 당은 이름을 바꾼 것 말고는 유일한 변화가 2~3명 당원권 정지시킨 것인데 그 마저도 없애겠다는 것 아니냐"며 "한국당을 보면 보수가 이런 식으로 망해가는구나. (한국당은) 5월 9일 선거 결과와 아무런 관계 없이 분명히 망하는 정당"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