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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문학, 혁명을 만나다

책/학술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문학, 혁명을 만나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

     

    서평가 로쟈 이현우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20세기_ 고리키에서 나보코프까지…| 문학, 혁명을 만나다'를 펴냈다.

    19세기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으로 이어지는 문학의 '황금시대'였다면, 20세기는 그러한 비옥한 토대가 혁명이란 파랑을 만날 때 어떻게 요동치는지를 설명한다.

    노동자의 계급 각성을 그린 최초의 노동자 소설 '어머니'의 고리키에서부터 혁명에 회의적이었던 '닥터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 공식 문학의 문화 권력자이면서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숄로호프, 모국은 물론 모국어를 떠나 이방의 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까지, 20세기를 살았던 작가 중 누구도 혁명의 물결을 비껴갈 수 없었다.

    사회주의에 혁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체제의 탄압을 받아 러시아 내에서 공식 출간될 수 없었던 작품은 '비공식 문학'이라 한다. 비공식 문학이라고 해서 모두 혁명과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물론 '닥터 지바고'처럼 혁명에 비판적이거나 불가코프의 희곡들처럼 당 관료들과 속물들을 풍자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플라토노프처럼 '현실보다 더 왼쪽으로' 기울어 있기에 현실 사회주의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작가도 있었다. 소련의 수용소 사회를 고발한 솔제니친 같은 작가도 서구나 국내엔 '반공 작가'처럼 소개되었지만 사실 그는 억압적 체제를 비판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공산주의자였다.

    19세기 비판적 리얼리즘은 있는 그대로 현실을 그리지만 사회주의리얼리즘에서는 당위적 현실이 중요합니다. 있어야만 하는 현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국가라도 부족해서 못 먹고 못살 수 있죠. 하지만 그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사회주의리얼리즘이 아니에요. 당성이 부족한 것이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리얼리즘의 실상은 고전주의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본문 224쪽)

    한마디로 말해, 솔제니친은 사회주의가 응당 그래야 하는 '당위적 현실'을 그리지 않고, 체제가 지닌 있는 그대로의 문제를 폭로했기에 소련 사회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안티유토피아를 다룬 '우리들'의 자먀틴이나 소비에트의 새로운 인간상을 조롱한 '개의 심장'을 쓴 불가코프 역시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에 긍정적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간이 금지되었다.

    러시아에는 뛰어난 작가들이 많았던 만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도 많다. 그러나 노벨상을 탔다고 해서 영예롭고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파스테르나크는 반체제적 작품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일대 스캔들이 일어났으며, 솔제니친도 수상 이후 커진 유명세로 인해 더 큰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닥터 지바고'가 195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5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입니다. 거의 전례 없는 결정이었죠. 그와 관련해서 미국 CIA 공작설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1956년 흐루쇼프가 제 20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을 비판하고 1957년 소련에서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소 사이에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한발 늦은 미국이 소련 체제를 비방하는 선전의 일환으로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배후에서 밀어주었다는 설입니다. (본문 124쪽)

    국외 추방을 면하기 위해 파스테르나크는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고, 솔제니친 역시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락하기는 하지만 정부가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 두려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1973년에 '수용소 군도'가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1974년에 추방당하고 만다. 당시 냉전 속 동서의 힘겨루기가 문학계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안티유토피아 소설 하면 어떤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냐고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이 조지 오웰의 '1984'(1949)라고 대답할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1932)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브게니 자먀틴의 '우리들'(1924)이 이 두 작품보다 훨씬 앞선 작품이었다. 흔히 이 세 작품을 묶어 3대 안티유토피아 소설이라 부른다.

    실제로 '우리들'에 대한 서평을 쓰기도 했던 오웰은 헉슬리가 '우리들'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오히려 '멋진 신세계'보다 '1984'가 '우리들'에 빚진 바가 크다고 말한다.

    러시아 문학사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문학사상 독특한 위치를 점한 작가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있다. 1955년 출간된 영어 소설 '롤리타'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혁명 이후 아버지는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에 가담했다가 암살되고, 동생 역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가족사를 안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 양쪽의 언어 모두로 작품을 쓴 전무후무한 작가가 된다. 이 독특한 상황은 20세기 러시아의 상황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책 속으로

    사실 『어머니』는 1905년 러시아 제1차 혁명 이후 긴박한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고 쓴 작품입니다. 사회 변혁의 시기에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발언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일부 비평가들은 인물의 구도나 작품에 드러난 세계관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이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그런 비판이 도식적으로 보입니다. 그 시대 자체가 도식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1980년대를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야말로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회였죠. 억압적이기도 했고요.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평하면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본문 36쪽)

    '살아 있고-죽어 있는' 인간과 '살아 있고-살아 있는' 인간이 자먀틴의 인간 구분법입니다. '살아 있고-죽어 있는 인간 또한 쓰고 걷고 말하고 행동'하고 강의도 듣고 할 것 다 하지만, 그들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죽은 행동'입니다. '살아 있고-살아 있는 인간은 실수와 탐구와 질문과 고통 속에 존재'하니까요. 자먀틴은 '쓴다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본문 67쪽)

    이 작품에서 불가코프가 보기에 예수가 인간에게 던진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어떤 권력, 어떤 폭력도 없는 정의와 진리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그런 시대가 될 것이다.

    불가코프 개인으로 보면, 권력으로부터 받은 억압 때문에 피해망상증에 시달리고, 작가로서는 사망선고를 받고, 모든 작품을 공연 금지당하는 등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권력에 대한 그의 거부감을 떠올려볼 수 있죠. 이런 말도 안 되는 것들이 모두 철폐되는 정의와 진리의 왕국이 도래하리라는 것이 예슈아의 입을 통해 불가코프가 말하고자 했던 자기 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본문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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