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선 역전 가능성을 언급한 월스트리트 저널의 사설 (월스트리트 저널 인터넷판 캡쳐)
미국 현지시간으로 6일자 월스트리트 저널(WSJ) 사설이 화제다. 한국 대선의 판세 분석을 하면서 역전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보수성향 경제지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을 통해 지지율 17%까지 치고 올라온 홍준표 후보의 상승세와 지지율 21%인 안철수 후보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말미에 “아직 20% 가량의 유권자들은 마음을 정하지 않았다. 만약 중도 우파의 유권자들이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면 역전(upset)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썼다.
홍준표 후보 캠프와 안철수 후보 캠프는 저마다 ‘거봐라 미국에서도 역전이 가능하다고 하지 않느냐’며 아전인수에 바쁘다. 문재인 캠프도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사설에서 제기한 ‘역전극’의 근거는 문재인의 지지율이 절대 우위가 아니라는 것 하나 뿐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문재인 후보는 당선이 가장 유력하지만, 지지율은 단지 40%에 불과하다“고 평가하면서 ‘plurality in the polls’라는 표현을 썼다. 투표에서 plurality(최다득표)란 가장 많은 표를 얻기는 했지만, 절대 다수에는 못 미치는 상태를 말한다.
그 이후에 사설은 단순한 ‘산수’를 한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40%이고, 마음을 못 정한 부동층(浮動層)이 20%이니까, 이들이 모두 홍준표나 안철수 후보 중 1명에게 몰표를 주면 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선 막판에 한국의 부동층 유권자들이 어느 한 쪽에 몰표를 던질 것이라고 믿을 만큼 월스트리트 저널 논설진이 순진할 것 같지는 않다. 사실 그들의 의도는 글 속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한마디로 ‘문재인 대통령은 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설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다. 2000년 중반에 개성공단을 열어 평양(북한정권)이 1년에 1억불을 벌도록 해 준 대통령의 비서실장. 문재인 후보는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일부분 책임이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논설진은 그런 문재인 후보가 또 다시 개성공단을 재개하겠다고 공약한 것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압박하고 있는 미국의 노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 비용 청구 발언으로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을 더 높여주는 일을 하고 있다.
결국 사설의 맨 마지막 문장에 월스트리트 저널이 하고 싶은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역전극은 가능할 것이다. 중도 우파 유권자들이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침묵을 지킨다면.”
종이신문에 올라온 최종본은 앞서 인터넷 판에 올라온 마지막 문장. “적어도 한국 대선이 결정될 때까지 만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좀 침묵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까?”라는 표현보다 더 명료하게 글을 가다듬었다.
사설이 의도하는 바는 그래서 단 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는 문재인이 싫다. 그러니 제발 트럼프 대통령은 문재인 도와주는 소리 그만 하시고 좀 조용히 계시라!”
월스트리트 저널은 정치적 지형으로 보면 명확히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다. 공화당은 북한에 대한 강경책, 즉 제재와 압박을 강조한다. 또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김연호 선임연구원은 현지시간으로 7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북 강경론을 지지해온 월스트리트 저널의 입장에서는 대북 압박의 고삐를 늦출 수 있는 새 한국 대통령의 출현이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성공단 재개 등 북한과의 경제협력 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된다면 앞으로 월스트리트 저널 뿐만 아니라, 미국 공화당이 드러내 놓고 싫은 기색을 내비칠 가능성이 높다.
사실은 월스트리트 저널 사설에서는 대선 역전극의 가능성이 아니라, 대북 유화책을 진행할 경우 앞으로 미국 여당인 공화당과 불편한 관계가 빚어질 가능성을 냉철하게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