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의 중국사'는 중국 한족과 얽힌 소수민족 이야기로 중국사의 나머지 절반을 채웠다. 이 책은 중국의 고전을 비롯해 방대한 사료들을 토대로 소수민족의 기원을 밝히는 데 그 의의를 두었다. 본문만 900여 쪽에 이르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굽이굽이 펼쳐진다.
"저자는 오랜 공력을 바탕으로 북방 초원을 치달렸던 유목민족들의 역사를 서술하고, 중원의 왕조를 위협했던 토번이나 서하 영웅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낯선 서남부 지역의 여러 왕조들에 얽힌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낯설고 신비로우며 흥미롭다. 한 권의 책 안에서 과거 중국 땅에 존재했던 여러 민족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빼어난 장점이다. 그리고 동시에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왜 '절반의 중국사'라고 붙였는지 이해하게 해준다."(옮긴이의 말, 869쪽)
저자 가오훙레이는 "소수민족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것은 중국 내 '정통' 역사학자들과 힘을 겨루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며 지금의 중국 땅에 존재하는, 그러나 그동안 조명 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통상 중국의 소수민족이란, 지금의 중국이라는 지리적 영역 안에 거주하는 한족을 제외한 55개의 민족을 일컫는다. 이 책이 다루는 소수민족이란 이들의 기원이 되는 민족들이다. 흉노와 유연 등의 초원민족과 선비, 저, 강 등의 유목민족, 그밖에도 오아시스 왕국을 세웠던 월지, 누란 등을 일컫는다. 저자는 기존의 중국 역사가 중원 왕조, 한족 중심의 역사로 서술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들과 얽혀온 비(非)한족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유목민족 지도자들을 재평가하고, 잊고 있던 왕국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저자가 들려주는 18개 민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중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의 기원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제 10장 '토번'(40여 쪽 분량)에서는 티베트의 건국신화부터 영국의 침략, 현재 중국과의 갈등까지 살펴볼 수 있다.
중국 국토자원 작가협회 부주석이자 중국 작가협회 회원인 저자는 작가답게 다양한 시와 고사성어 등을 활용해 이야기로 역사를 풀어냈다. 엄밀한 역사서와 달리 개인적 감상과 비평도 곳곳에 들어 있다.
작가가 쓴 역사 교양서이지만 일반 독자뿐 아니라 분야의 연구자들에게도 참고가 될 수 있도록 시와 고사성어는 물론, 국내 독자들에게 낯선 지명과 인명에 대해서도 주석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낯설고 생소한 민족들과 지도자들의 이야기는 중국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묵돌'은 LA 세계민족영화제에서 최우수 민족영화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김선자는 국내 독자들을 위해 단어나 서술에 객관성이 떨어지는 지점에 촘촘히 주석을 달았다. 역주 분량이 150페이지에 이른다.
책 속으로몽골인은 다 합해봐야 겨우 몇 백만밖에 안 되었고, 송 왕조의 군대와 백성의 수는 그들의 십수 배는 되었다. 몽골 기병의 힘까지 덧붙인다고 해도 쌍압의 세력은 팽팽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 나오는 한 장면을 읽다보면 인구가 엄청나게 많았단 남송이 망한 역사의 발전 과정에 대해 그리 놀랄 필요가 없어진다. 몽골인이 하중에 침입했을 때, 한 몽골기병이 한족 백성 한 명과 마주쳤다. 몽골 기병은 한족 백성에게 엎드려 죽음을 기다리라고 했다. 하중의 백성들은 원래부터 모범적인 양민인지라 그 자리에서 얌전하게 엎드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몽골 기병이 마침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서 무기를 갖고 올 테니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있으라고 했다. 누군가가 그것을 보고 빨리 도망가라고 말했지만 그 백성은 "제가 어떻게 감히 도망칠 수 있겠어요"라고 말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결국 무기를 갖고 돌아온 몽골 기병이 단칼에 그를 베어버렸다. 생각해보라. 이렇게 노예근성이 몸에 밴 백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한족 정권이 패배하지 않으면 이상한 것 아닌가? -660쪽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초원민족은 천년 이상의 세월 동안 중원 민족에게 비하와 멸시를 당했다. 문자를 발명했으며 역사 편찬의 권리를 갖고 있었던 중원의 관료와 문인은 초원민족에 모욕적인 이름을 붙였다. 이민족을 호칭하는 데 대부분 견‘犭’ 자가 붙은 것이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28쪽
하지만 아버지는 매처럼 눈빛이 깊은 맏아들을 낮게 평가했다. 아버지의 의도가 무엇인지 마침내 알게 된 묵돌은 아버지에게 원한을 품게 되었다. 부자지간의 정 따위는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정하게 사라져버렸다. 사실 별로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닭이 알을 낳지만, 알은 더는 닭에 속해 있지 않았다. -35쪽
진의 밝은 달, 한의 관문은 여전한데,
만 리 길 전쟁터에 나갔던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는구나.
위청과 이광 장군이 지금도 있다면,
북쪽의 적들이 음산을 넘어오지 못하게 할 텐데. - 45쪽
언제나 역사에는 비슷한 점이 나타나곤 한다. 요 멸망의 순간에 한 여인이 끼어들었다. 물론 이 기녀가 요의 쇠망에 무슨 작용을 했는지 고증하기 어렵다. 그러나 역사서는 일정 부분의 책임을 그녀에게 미루고 있다. 이를 보면 중국 남자는 망국의 책임을 여인에게 미루고, 여인에게 제왕의 죄를 대신 뒤집어씌우는 것을 참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361쪽
이것이 정말 중국이란 말인가? 찬란하게 빛나는 실크로드와 둔황敦煌이 있으며, 장성을 쌓았고 운하를 팠고, 유교와 도교를 창조해 불교, 회교와 융합시켜 여러 이민족을 동화시킨 중국이란 말인가? 어찌 미미한 존재였던 왜구가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았단 말인가? 글씨는 잘 썼지만 무지하고 자기중심적이었던 서태후로서는 그 원인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더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조카인 광서(서태후의 외아들인 동치는 18세 되던 해에 매독에 걸려 죽었다)에게 정권을 돌려주었다. -446쪽
전설에 의하면 테무친은 태어날 때 손에 쇠처럼 단단한 핏덩어리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은 후대인에 의해 신화화된 이야기일 것이다. 위인이 탄생할 때 천둥 번개가 우르릉거렸다거나, 긴 무지개가 하늘을 가로질렀다거나, 온 집안에 붉은 빛이 가득하거나 혹은 행성이 떨어졌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642쪽
가오훙레이 지음 | 김선자 옮김 | 메디치미디어 | 1044쪽 |4만8000원 유라시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