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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약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 이번엔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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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공약 ‘금융소비자보호기구 설립’ 이번엔 가능?

    금융개혁 차원에서 깊이 있고 민주적인 논의 필요, 신중히 추진해야

     

    2011년 1월 4일. 금융위원회는 삼화상호저축은행의 영업을 정지시켰다.

    이후 9월까지 15개 상호저축은행들이 줄줄이 영업정지 조치를 받으면서 5천만 원이상의 예금은 원금 손실이 초래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다. 상호저축은행들이 본령인 서민 금융을 외면하고 부동산 개발에 주로 동원되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F)에 너도 나도 뛰어들었다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부동산 경기가 위축되자 곧바로 부실해 진 것이 원인이었다.

    서민의 돈을 함부로 굴린 결과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로 돌아갔다.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원망이 쏟아졌다.

    금융감독기구들이 이런 사태를 왜 사전에 막지 못했느냐, 금융감독체계가 소비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따라 독립적인 소비자보호 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2013년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금융소비자보호법의 제정이 추진됐으나 당시 정부와 여야간에 의견이 맞서 결실을 보지 못했다. 금융감독 체계의 개편문제가 맞물려 논의가 공전됐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융감독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금융소비자원을 만든 뒤 금융위원회 산하에 두자는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측 주장과 독립적인 금융소비자보호 위원회를 만들자는 야당측 주장이 맞서 왔다.

    2017년 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구의 설립 이슈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기구 설립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개혁 문제와 맞물려 있어서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선 깊이 있고 충분한 논의를 진행할 시간과 절차가 필요한 사안이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금융개혁이라는 큰 프레임안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라는 문제를 다뤄야 한다. 금융개혁의 목표는 관치 금융 청산과 소비자 보호로 대개 규정되는데 이 두 가지를 모두 구현하면서 소비자 보호기구 설립 문제를 다뤄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금까지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이 잘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감독당국(금융위원회)이 금융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 수립의 기능과 감독의 기능을 한꺼번에 가지고 있는데 따라서 때로는 금융산업 육성을 위해 때로는 금융회사들의 건전성 제고를 위해 소비자 보호 문제가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특히 정책 추진기능이 감독기능을 압도하는 상태에서 아무 힘도 없는 소비자보호기구가 설립된다면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 교수는 지적했다.

    감독체계 개편은 해묵은 문제여서 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몇가지 안이 논의돼 오다 최근에는 이른바 ‘쌍봉형’과 ‘단봉형’ 모형으로 좁혀지는 추세다.

    ‘쌍봉형’ 모형은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감독’을 별도 기구가 담당하는 감독체계를 말한다.

    건전성 감독은 금융회사가 건강하게 운영되고 육성되도록 국제결제은행의 자기자본비율(BIS)을 맞추게 한다든지, 부실채권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신심사를 강화하도록 한다든지 하는 규제를 내용으로 한다.

    영업행위 감독은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를 상대로 사기행위나 허위 공시,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 등을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말한다.

    현재의 금융위원회는 금융정책 수립기능을 기획재정부 등 경제부처로 이전하고 해체하며, 금융감독원은 건전성 감독만 수행하고 금융시장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을 규제하는 권한을 소비자 보호 기능과 합쳐 금융소비자 보호기구를 설립하는 안이 구체적으로 제안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비자 보호업무는 금융산업 육성정책이나 금융회사의 건전성 감독과는 별개로 담보될 수 있어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쌍봉형 모형 지지자들의 주장이다.

    ‘단봉형’ 모형은 금융감독 업무와 소비자 보호 업무를 하나의 통합기구에서 담당하는 감독체계를 말한다. 두 업무가 불가분의 관계여서 하나의 기구가 담당해야 실효성이 있다는 시각에서 제안되는 모형이다.

    건전성 감독과 영업행위 감독이 현장에서는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많다는 게 이 모형을 지지하는 쪽의 논거다. 예를 들어 금융회사가 소비자에게 대출을 해 줄 때 결정하는 가산금리가 적정하지 않다면 건전성 감독기구가 규제를 해야 하느냐 영업행위 감독기구가 규제를 해야 하느냐를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핀테크를 결합한 상품 등 금융신상품이 나오는 경우 쌍봉형 감독체계에선 건전성이나 영업행위의 어느 측면에서 볼 것인가를 두고 서로 소관부처가 아니라고 다투면서 감독의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게 단봉형 모형 지지자들의 우려다.

    2016년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4개 회원국 가운데 5개국이 쌍봉형 모델을 채택하고 있고 16개국이 통합형(단봉형) 모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외 국가들은 은행이나 증권, 보험 등 권역별 감독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자료=Central Bank Publication)

    이들 두 모형은 나름대로 장단점이 지적되고 있고 감독기구들이나 학계, 금융회사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의 주장도 맞서고 있어서 감독기구개편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공론의 장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운영돼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상대 김홍범 교수는 2015년 12월 '금융연구'에 게재한 논문 ‘위기 이후 금융개혁: 영국, 독일, 호주의 경험과 시사점’에서 “2012년말 대선 전후로 약 1년동안 전개됐던 금융감독체계 개편론은 '모형 선택의 함정'에 빠져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영국과 독일의 최근 금융개혁 사례를 보면 특정한 감독모형의 선택은 소비자 보호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음을 확인한다”고 이 논문에서 주장했다.

    특히 “호주가 최근 추진 중인 금융개혁에서는 정부에 의해 임명된 민간위원회가 처음부터 이해관계자들과 개방적이고 투명한 협의 과정을 거쳐 개혁안을 마련해 이행단계의 성공 확률을 크게 높였음을 확인했다"면서 "우리의 금융개혁 추진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썼다.

    “순수 민간위원회가 이해관계자 및 일반 국민과의 개방적 소통과 조정을 토대로 개혁안을 마련하는 상향식 접근이 개혁 성공의 관건”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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