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의 운명이 한일 외교의 중대 현안으로 부상한 가운데, 유엔기구가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함에 따라 재협상론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ommittee against Torture·CAT)는 12일(현지시간) 펴낸 한국 관련 보고서에서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양국 간 이뤄진 합의를 환영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 진실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 등과 관련해서는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위원회는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양국 간 이뤄진 기존 합의가 수정돼야 한다며 사실상 재협상을 촉구했다.
고문방지위는 고문방지협약 제17조에 따라 협약을 비준한 국가의 협약 이행의무를 감시하기 위해 1987년 유엔 산하에 설치된 기구로, 협약 당사국에 의해 선출된 위원들로 구성돼 있다.
이 기구는 2012년 일본 정부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더 노력할 것을 촉구한 바 있지만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도출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보고서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고문 방지위의 권고는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 여론 면에서 권위와 영향력이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라서 이번 보고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에 명시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는 일본 정부에는 곤혹스러울 것이며, 한일 위안부 합의의 재협상론에는 힘을 싣는 내용이다.
결국 위안부 합의의 재협상 또는 보완에 열린 입장인 문재인 정부는 향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대일 외교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자료를 얻은 셈이 됐다. 한국 국내 여론 뿐 아니라 국제 인권 전문가들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통화에서 '위안부 합의의 착실한 이행'을 기대한다는 아베 총리의 언급에 대해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유엔 근무 경력의 한 국제기구 전문가는 "고문방지위원회는 위원들을 '인권 원리주의자'로 칭해도 무방할 정도로 인권 문제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진보적인 기구"라며 "그런 측면과 강제력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하더라도 위원회의 권고는 신뢰성과 권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인 작년 3월에는 유엔 여성차별위원회원회가 한일 합의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