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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비정규직 제로 시대" 열려면… 勞·政교섭 절실

경제정책

    文 "비정규직 제로 시대" 열려면… 勞·政교섭 절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고용안정·처우개선 두 마리 토끼 잡아야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포하면서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놓고 노정교섭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 새 대통령 광속 행보에 '비정규직 제로시대' 활짝 열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가 간담회를 갖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이 굳이 인천공항을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선포하는 장소로 삼은 이유는 그동안 공공기관 중에서도 인천공항이 비정규직 문제로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대표적 사업장으로 꼽혀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인천공항에 직접 고용된 직원 1196명 가운데 비정규직은 29명에 불과하지만, 46개 용역업체에 소속된 공항방재·시설관리·환경미화 등의 인력을 고려하면 비정규직 비율이 무려 약 85%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용역업체에 1년 단위 단기계약으로 고용된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설움은 '고용불안정'이다.

    해마다 계약이 갱신될 때마다 해고 위협에 시달려야 하고, 3~5년마다 업체가 교체될 때 본사가 일부 인력을 승계하지 않는 방식으로 교묘하게 해고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비슷한 일을 하는 정규직보다 낮은 수준의 임금과 열악한 복지 수준에도 불평하기 어려운데다, 아무리 오래 일했어도 업체가 바뀔 때마다 신입사원으로 임금 수준이 다시 굴러 떨어지기 마련이다.

    비단 노동자들의 처우만 열악해질 뿐 아니라 다단계 하청 구조는 노동자와 사업장 사이의 의사소통을 마치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져서 공공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제기돼왔다.

    급기야 2013년 12월에는 환경미화·시설관리 직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가 19일에 걸쳐 파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일성(一聲)에 사태가 180도 바뀌었다.

    인천공항은 올해 안에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겠다고 밝히고, 지난 15일 '좋은 일자리 창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정규직 전환 및 일자리 창출 준비에 나섰다.

    특히 문 대통령이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평가 방식을 바꾸겠다고 언급하면서 "하반기 중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의 로드맵을 구체적 방안까지 마련해달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번 인천공항의 정규직 전환 방식은 향후 약 12만명에 달하는 다른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움직임에도 선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만약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정규직 전환이 '상식'으로 자리 잡으면 자연히 비정규직 과다 사용 기업에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제’를 도입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감축 공약 등에도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 자회사·무기계약 방식 검토? '빛 좋은 개살구' 정규직 전환 우려

    문제는 실제 정규직화 과정 곳곳에는 '무늬만 정규직'으로 그칠 수 있는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은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약 7천여명, 향후 제2터미널이 개항되면 1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도 공항 측이 많은 인원을 연내에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천공항도 용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설립해 대신 고용하는 방식에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공항과 용역업체가 재계약할 때마다 겪는 고용불안은 해결될 수 있지만, 여전히 '또 다른 방식의 간접고용'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특히 임금체계 등 노동조건은 용역업체에서 직영 자회사로 전환될 뿐 처우가 크게 개선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노동계 최대 이슈였던 KTX 승무원 대량 해고 사태 역시 승무원들이 자회사 소속 비정규직으로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다 파업을 벌이면서 시작돼 10년 넘게 갈등이 풀리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유력한 대안은 무기계약직 전환 방식이다.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 동안에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꾸준히 감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관련 통계를 제시할 때마다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을 합쳐 상용직으로 분류해 비정규직 비율을 낮추고 있다고 홍보해왔다.

    이 과정에서 상시 지속 업무일 경우 2년 이상 근무하면 무기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른바 '쪼개기' 계약으로 불리는 단기계약으로 근무 기간을 강제로 줄이거나, 사측이 일방적으로 전환 대상에서 제외하는 수법으로 무기계약 전환을 미루는 사례도 횡행했다.

    그나마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도 정규직과 같은 업무를 하면서도 저임금‥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기 쉬워 이른바 '중규직'이라는 한숨 섞인 비난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은 "첫 단추를 잘 꿰어서 전체 얼개는 수우미양가 중 우 수준은 된다고 본다"면서도 "구체적인 로드맵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라는 전체 청사진과 조우하는 계획으로 나올 수 있을지 연말까지 지켜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공공부문은 다종다양해서 획일적인 정규직 전환 방식은 있을 수 없으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병행이 핵심"이라며 "보수정권은 물론 김대중·노무현 정부와도 차별화된, 지속 가능하고 민간부문 정규직화를 선도할 정규직 전환 계획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문 대통령 노동 개혁 의지 빛 보려면… 勞政 대화 더욱 절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을 방문한 자리에서 박대성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부장은 "어떤 정규직화인지가 더 중요하다"며 "논의할 수 있는 정부, 노조, 공사 간 논의 테이블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한 이유도 이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숨은 함정 때문이다.

    관련 노조들도 문 대통령의 과감한 행보와 의지를 반기면서도 노조와의 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인천공항노조의 상급 노조인 공공운수노조는 "단순한 고용형태 전환만이 아닌 처우 개선이 함께 추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 사장, 노동자가 같이 정규직 전환을 논의할 수 있는 테이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 역시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는 정규직화 논의기구 구성 등, 첫 행보에 걸맞는 조치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공염불에 그치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공공운수노조 오승은 정책기획차장은 "노정 교섭을 통해 정규직 전환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 원칙"이라며 "근속이나 숙련도, 경력을 인정한 임금·복지 체계 표준을 마련해서 정규직과 차별없는 처우 개선을 이뤄야 하며, 고용 안정을 위한 해고 요건도 명확히 정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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