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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노학자 한완상, 젊은 벗들에게 부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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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학술

    여든 노학자 한완상, 젊은 벗들에게 부치는 편지

    신간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는 여든을 넘긴 사회학자 한완상이 지식인과 공직자로 살아온 개인적 삶을 회고하며 지난 50여 년간의 한국 정치사회사를 기록한 회고록이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미국 망명 생활을 거쳐 다시 고국에 돌아오기까지 비판적 지식인으로 살았던 권위주의 정권 시기, 그리고 학계를 떠나 공직 생활에 몸담으며 겪었던 민주정부 10년을 반추한다. 그는 과거가 현재에 남긴 상처를 진단하고, 앞으로 새 시대를 열어 갈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았다.

    1부 '젊은 벗들에게 부치는 편지'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갖가지 이상 징후들(식민지 잔재, 군대와 권위주의 문화, 교육 문제 등)을 자신이 경험한 일제 식민지 교육, 탈병이 되었던 사연, 미국 유학 생활에서 부딪힌 난관 등을 통해 성찰하며 '자신보다 더 고생 많은 한 시대'를 살아갈 젊은 세대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저자는 가난과 전쟁, 권위주의 정권의 억압 속에서도 사회적 질병을 고치는 '사회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고 타인의 고통을 공유할 줄 알았던 그 시절을 반추하며, 꿈을 꿀 수 없는 지금의 '삼포 세대', '건물주'를 장래 희망으로 꼽는 아이들, 권위주의 정권 대신 시장의 힘이 지배하는 대학, 을의 고통에 무감각한 갑 들을 만들어 낸 지금의 한국 사회를 아프게 바라본다.

    2부 '새로운 역사에 부치는 편지'에서는 1980년대 미국 망명 시절부터 노무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운동의 현장과 민주정부의 심장에서 겪은 일들을 사회학자의 관점에서 꼼꼼히 기록하고 분석했다. 망명 시절 가까이서 바라본 김대중과 김삼의 갈등, 통일원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거치며 겪은 냉전 수구 세력의 개혁에 대한 저항과 보수 언론의 공격,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애썼지만 강대국들과 냉전 세력의 틈바구니에서 가질 수밖에 없던 한계들에 대한 솔직한 고백을 통해 남북 관계 개선과 개혁 정치 추진을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 성찰한다. 특히 여전히 색깔론으로 모든 갈등을 봉합하려는 냉전 수구 세력을 매섭게 비판하며 남북한 수구 세력의 적대적 공생 관계가 상존하는 한 그 어떤 개혁도 쉽게 성공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는 최근 탄핵 정국에서 촛불 시위의 역할을 되돌아보며 과거 6월항쟁 때와 마찬가지로 시민사회를 이끌어 가는 민중의 지혜가 민주주의의 기초임을 역설하고 갑과 을의 구분이 사라진 세상을 이야기한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이사야 11장 6~9절)

    책 속에서

    오늘날 우리 아이들이 ‘돈 많이 버는 것’을 장래 희망으로 꿈꾼다면, 아이들이 천박하다고 탓할 일이 아니라, 물질 만능주의에 찌든 이전 세대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우리 사회를 안타깝게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23쪽

    일제의 식민 지배는 1945년 8월 15일에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어진 분단 과정 속에서 남과 북 모두 극단 세력이 지배 세력이 되었지요. 북에서는 극좌 군부 세력이, 남에서는 친일 극우 냉전 세력이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남북 간의 긴장과 마찰을 부추기면서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들은 남북 간 긴장과 증오가 강화되어야만 정치경제적 이득을 더 효과적으로 챙길 수 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서로를 주적으로 증오하며 으르대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서로를 이용해 자기들의 기득권을 강화시켜 왔지요. 이것이 바로 비극적인 적대적 공생 관계입니다. -100쪽

    정正과 사邪가 확연히 구분되는 상황에서 중립이나 중도의 입장을 표방하는 것은 결국 사邪를 응원해 주는 아주 잘못된 선택입니다. -101쪽

    남한의 수구 세력은 그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대북 강경 정책을 통해 결과적으로 북의 지배 세력을 더욱 강화시킨다는 사실을 외면합니다. 이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친북, 종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의 민주화 세력이 이 같은 적대적 공생 관계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장기적으로 성공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그리고 통일 문제를 항상 민주화 문제와 긴히 연관시켜 해결해야 합니다. -173쪽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공안 요원들이 학교 교실에 침입해 학생들을 거칠게 체포해 갈 때, 개 끌려가듯 잡혀가는 그들을 보고도 멀뚱멀뚱 구경만 한 제 자신이 가장 부끄러웠지요. 공부도 잘하고 시대 흐름도 잘 읽어 내던 제자들이 하나둘 주변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어떤 학생은 노동 현장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과연 그런 제자들이 당국이 주장하는 대로 친북 과격 혁명 분자일까 자문해 보았습니다. 바른말 하는 젊은이나 지식인들이 안방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마당으로, 마당에서 거친 들판으로 내몰리니 점점 사나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정체성 변화를 유도하는 주체는 누구일까요. 온건 세력을 혁명 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이들은 바로 냉전 수구 세력입니다. -206~207쪽

    우리의 역사 현실을 보면 국가의 갑들이 공적 임무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을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국가의 일꾼은 마땅히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공무원이요, 공복인데도 실제로는 사익을 탐하는 시장의 갑들과 결탁해 백성을 혹사시키고 차별하고 억압하며 착취해 왔지요. 옛날 왕조 시대뿐만 아니라 현대 민주주의 시대에도 이는 마찬가지습니다. 이번 탄핵 정국도 따지고 보면 바로 이 같은 국가의 공적 가치를 국가 최고 지도자가 짓밟
    고 비선 실세와 함께 사익을 탐하다 벌어진 비극입니다. 공익을 모범적으로 추구해야 할 최고 지도자가 시장의 갑들과 결탁해 사익을 추구하다 적발된 비극이 바로 박근혜-최순실의 국기 문란 일탈입니다. 바로 이런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 국가의 사자들은 사회의 약자인 을들의 먹음으로써 사자의 육식 체질을 바꿔야 합니다. 사자들이 소처럼 여물을 먹어 그들의 체질을, 그들의 문화를 바꾸고, 그들의 적폐를 스스로 청산하려 할 때 비로소 황무지 같은 곳이 장미꽃밭으로 변화할 것이며, 사막 같이 마른 땅에 샘물이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는 새로운 질서를 꿈꾸며 살아왔습니다. 그 흔적을 이 책에서 증언하려 했지요. -334~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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