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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



책/학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

    '봉순이 언니' … 공지영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 다섯살 꼬마의 시선

     

    '공지영의 지리산 행복학교'는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지리산 자락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지리산 입성의 우여곡절과 좌충우돌의 과정, 그리고 그곳에서 새롭게 일구는 삶의 이야기가 상큼하고 발랄하게 펼쳐진다.

    서울에서 출세한 촌놈이 겨우 수중에 50만 원만을 쥐어든 실패한 촌놈이 되어 지리산에 새 터를 잡은 낙장불입 시인, 산 아래의 삶이 익숙지 않아 저잣거리에 내려갈 때면 귀마개를 하는 함태식 옹,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든 이래 산골로 찾아든 버들치 시인, ‘내비도’의 교주이자 잠잠산방의 주인인 최도사, ‘스스로 발등을 찍은 여자들’, 두려움보다 더 큰 소망 때문에 지리산에 온 사진작가 등 지리산에 찾아와 지난 삶의 아픔을 위로받고 행복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지리산 학교’를 여는 모습이 공지영이라는 이야기꾼을 만나 생생하게 전해진다.

    책 속으로

    어머니를 묻고 새로 이룬 가족을 잃고 그리고 직장에서마저 쫓겨난 그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지리산으로 온 것은 그러니 너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누군가 버리고 간 쓰러져가는 초가삼간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는 “밥을 주면 밥을 먹고 돌을 던지면 돌을 맞으며” 첫 3년을 버틴다. 그는 그 3년 동안 굶어 죽지 않은 것이 기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안다. 그곳이 지리산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가끔 그에게 편지가 왔다.
    “두 끼를 굶었어. 지난밤에는 피아골의 나무가 소식을 보내왔지. ‘나 절정이야. 혁명도 없이 희망도 없이 내 몸은 곧 절정이야…….’ 밤새 단풍나무 벗 삼아 게임 고스톱을 치다 보면 낙엽들이 ‘낙장불입, 낙장불입’ 하고 떨어지네……. 때 이른 단풍 하나 주우려다 보니 인생이 낙장불입인 거 같아……. 생각해보면 길을 잃었다고 뭐가 그리 대수일까, 잃어버렸다고 헤매는 그 길도 길인 것을.”
    ―「낙장불입 1」 중에서

    “여보, 당신 전에 화개장터에 책방 하나 내고 싶다고 했지. 엄선된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
    낙시인은 빙그레 웃었다. 정말 그의 꿈은 딱 30권만 놓고 파는 책방이었다. 그 대신 그가 읽고 정말 소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책이어야 했다. 대신 차는 공짜란다. 그러자 알피엠이 말했다.
    “당연히 장사가 안 되겠지? 집세만 나오면 되지 뭐. 당신은 거기에 책상 하나 갖다 놓고 천천히 시를 쓰고……. 그러니 내가 그 책방 바로 옆에 식당을 내겠어.”
    낙시인이 잠시 생각하다가 너무 놀라 벌떡 일어났다. “당신이 식당을?”
    “응, 여보. 우리나라 식당들은 너무 반찬을 많이 줘. 사람들이 부담스럽잖아. 모두가 집 밥처럼 먹을 수 있도록 약간 타거나 선 밥에 신김치, 졸아붙은 된장찌개, 이런 거를 주 반찬으로 하는 거야. 얼마나 소박해, 그 이름은 ‘성의 없는 부인 식당’이야.”
    “대박이다! 대박이야.” 낙시인이 웃었다. 거기에는 약간 어이없음이 있었는데 알피엠 여사의 눈은 꿈에 부풀었다.
    ―「‘섬지사 동네밴드’ 결성 막전막후」 중에서

    우리는 ‘소풍’에 앉아 찬 맥주를 마셨다. 당연히 우리가 내야 할 돈인데 주인은 실상사 앞 슈퍼에 가더니 맥주를 그냥 들고 왔다. 월말 일괄 계산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시면 돌아갈 때 운전은 누가 해?’ 나는 궁금했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만 마시고 가자’고 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저녁이 되어서 내가 낙시인에게 묻자 낙시인은 별 걱정을 다 한다는 듯이 “이곳은 잘 데가 천지!”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풍 주인이 입을 열었다.
    “이곳에 온 지 10년, 무엇이 변했는지 한번 돌아보았죠……. 시간, 시간이었어요. 서울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의 시간은 내 것이에요. 이게 제일 큰 변화더라고요……. 조각을 하고 싶으면 하고, 팥빙수를 팔고 싶으면 팔고 가게를 닫고 몇 개월씩 순례를 떠나고 싶으면 떠나죠. 지리산은 참 이상해요. 누가 와도 어울려요. 조선백자처럼요. 조선백자는 베르사유 콘솔에 올려놓아도 시골집 뒤주에 놔둬도 어울리잖아요. 중국의 자기도 일본의 도자들도 그렇지는 못하죠. 지리산은 백자처럼 누구라도 품는 그런 산인 거 같아요.”
    ―「‘소풍’ 가실래요」 중에서

    공지영 지음 | 해냄출판사 | 348쪽 | 14,000원 …

     

    공지영 작가의 장편소설 '봉순이 언니'는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은 짱아, 즉 소설 속 화자인 ‘나’가 봉순이 언니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끊임없이 고난과 불운이 반복되었던 봉순이 언니의 기구한 삶의 이야기가 다섯 살 꼬마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주인공 ‘짱아’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던 봉순이 언니의 굴곡진 삶과, 그녀를 통해 세상과 만나고 성장한 짱아의 이야기가 60~7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하여 72개의 꼭지로 나뉘어져 있다. 이 소설은 어느 날 봉순이 언니가 또 사라졌다는 엄마의 전화로부터 시작된다.

    예닐곱 살에 의붓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도망했다가, 다시 숙모의 의해 버려져 짱아네 식모가 된 봉순이 언니. 열일곱에 세탁소 총각과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행복을 꿈꾸게 한 남자와 사랑하고 마침내 헤어지는 그녀, 그리고 또 다시 남자에게 순정을 바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평탄하지 않은 봉순이 언니의 삶의 여정이 날줄이 되고,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언니이자 엄마로, 그리고 유일한 친구로 삼아 성장기를 보낸 나의 이야기가 씨줄이 되어 엮인 이 작품에는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본 근대 도시민의 소소한 풍경이 담겨 있다.

    작가는 봉순이 언니의 삶을 슬프거나 비극적인 것으로 그리지 않는다. 기구하고 고단했던 인생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기꺼이 살아냈던 내 인생의 ‘첫사람’, 봉순이 언니를 통해, 작가는 그늘지고 우울했던 과거 우리의 초상에서 자칫 놓쳐버렸을지도 모르는 작은 희망을 되돌아본다.

    아직 동네 개울에 오리가 있고, 마차와 전차가 도심을 가로지르며, 골목에 아이들이 뛰놀던 서울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 소설에는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급변하는 도시의 삶이 펼쳐져 있다.

    책 속으로

    낮잠에서 깨어나 마주친 이 세상은 아주 낯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 있었다. 왜, 어린 시절엔 낮잠에서 깨어나면 그렇게 서러웠을까. 나는 지금도 나의 아이가 낮잠에서 깨어나 서럽게 울 때면 가슴이 철렁해진다. 말이 되든 그렇지 않든, 별로 세심한 어미도 아닌 내가 아이를 그처럼 잘 이해할 수 있는 때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푸르스름한 저녁 빛이 이 세상에 내려앉을 때, 화단에 심어진 파초나 담장 따라 올라간 연분홍빛 월계꽃 이파리조차 푸른 필터를 끼운 것처럼 보이는 아침인지 저녁인지 분간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말이다. 누구도, 사랑하는 누구와 함께 있어도 모두 고아 같은 그 어스름의 시간.
    어쨌든 잠이 들면서 언니가 세탁소를 차려 떠난다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들은 뒤끝이라 그랬는지, 눈을 떠서 언니가 보이지 않자, 그래서 그때도 나는 울었고, 내 귀로 들리는 나의 울음소리가 하도 처량해서 더욱 악을 쓰며 울었다. 봉순이 언니는 내가 울기 시작하자 미자 언니네 방 안으로 얼른 달려왔고, 잠이 깨서 우는 나를 귀여워죽겠다는 듯이 꼬옥 안아주었다. 그러면 푸르스름한 세상이 조금씩 노란빛을 띠기 시작했고 얼마간은 서러움이 가셨다. 아직도 봉순이 언니는 내가 서러울 때, 내가 따돌림당할 때, 내가 혼자 외로울 때 나를 안아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엄마였고 언니였고 그러면서 친구인 그녀는, 내 첫사람이었다.
    ―87~88쪽 중에서

    “아니예유. 지는 아니라니깐유.”
    “그래, 그럼 증명을 해봐. 니가 아니라는 걸 증명을 해보란 말야.”
    “아니믄 아니지 그걸 어?게 증명을 해유. 긴 걸 증명하라믄 모를까.”
    “그래, 니가 정 아니라니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해보고 끝내자. 거기 옷 벗어봐라.”
    봉순이 언니의 어눌한 말투를 낚아채듯 덮치는 업이 엄마의 목소리는 톤이 높고 지나치게 또박거려서 금방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 또박거리는 목소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벗으라고.
    “괜찮아, 벗어. 다 니가 무고한 걸 밝혀주려고 그러는 건데 왜 안 벗니? 벗으라니까.”
    “아줌니 왜 그래유, 지는 아니여유, 아니라니깐드루 자꾸 그러셔요, 그러시길, 시방.”
    “너 자꾸 이러면 경찰에 넘긴다. 시집두 안 가구 콩밥 먹어야 말 들을래?”
    “글쎄 난 몰라유. 다이언지 타이언지가 어?게 생겨먹었는지 알아야 말을 하쥬.”
    “그러니깐 벗어봐, 벗어보면 될 거 아니냐? 응?”
    “왜 이러시는 거예유, 증말…… 아줌니, 지가 뭘 어떻게 했다구.”

    공지영 지음 | 해냄출판사 | 304쪽 |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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