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 때문에 우리는 자기가 누구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자기계발 안내서에 의존하게 될까? 테일러에 따르면 역사, 자연, 사회를 비롯해 외부에서 비롯된 모든 것을 차단한 채 자아를 숭배하기 때문이다. 앞선 장에서 나는 이런 현상을 자아종교라 불렀다. 자기가 누구인지 이해하려 할 때 외부의 중요성을 배제한다면 토대가 될 만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자아를 이해한다면 기껏해야 얄팍한 이해일 뿐이며, 최악의 경우, 의무란 무엇이며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게 된다.자기계발서들은 이런 문제에 한몫하므로 무시하는 게 좋다. 그러나 독서는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므로 다른 종류의 책을 즐겨 읽기를 추천한다. 바로 소설이다. 자기계발서와 대부분의 자서전과 달리 소설은 삶을 더 정직하게 그린다. 소설을 읽다 보면 삶을 뜻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어떻게 우리 삶이 사회, 문화, 역사와 얽혀 있는지 깨닫게 된다. 이런 점을 깨닫고 나면 겸허해진다. 그리고 겸허함은 끊임없는 자기탐색과 자기계발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일로 우리를 이끈다. -제6장 읽다(176~177p)중에서
'스탠드펌(Stand Firm):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에서 덴마크 심리·철학자스벤 브링크만은 소진되지 않는 삶을 위한 안티-자기계발 7단계를 제시한다.
삶은 결코 완벽히 만족스럽지 않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이를 외면한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노오력’하는 삶은 소진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고효율 고성장시대에 형성된 문화적 관성은 개인을 계속해서 자기계발의 쳇바퀴 속으로 몰아넣는다.
저자는 이런 가속화 사회의 문화를 비판하는 한편, 이런 가운데서도 개인이 인간답게, 존엄하게 살기 위한 지침을 스토아 철학에서 영감을 얻은 7단계 방법으로 제공해준다. 스토아 철학에서는 우리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면을 특히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묻는다. 존엄한 삶에 자격이 필요한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것은 정말로 자신의 탓인가? 지금은 가속이 아니라 브레이크가 필요한 때다. 사회가 당장 바뀌지 않는다면 개인이라도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이런 개인이 많아질수록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길도 많아진다.
유명 자기계발서를 패러디해 총 7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앞만 보고 쫓아가기 바쁜 현대인들을 멈춰 세운 뒤,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을 7단계에 걸쳐 소개한다.
1단계는 자기계발에 안달 난 자신을 멈춰 세우는 것이다.
2단계는 무한 긍정주의에서 벗어나 투덜대보는 것이다. 마냥 불평하기만 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럴 때는 그냥 살아내라고 말한다.
3단계는 못하는 일을 못한다고 말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의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4단계는 감정 표출을 자제하는 법을 배우는 것,
5단계는 내면의 능력을 끌어내기에 급급한 코치와 이별하는 것이다.
6단계에 들어서는 독자들에게 소설을 읽으라고 말한다. 자신이 흉내 낼 수 없는 인물의 성공스토리보다 소설이 훨씬 인간의 삶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7단계에서는 과거를 돌아보며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아보라고 권한다. 이를 통해 스스로가 굳건히 지켜내는 어떤 것이 형성된다면 이제 뿌리내리는 삶을 살 준비가 된 것이다.
인간은 무한동력기관이 아니다. 삶을 바꿔 나가는 힘은 내면이 아닌 바깥에서 온다. 또 삶은 자신이 상상하는 대로만 살아지지도 않는다. 저자가 권하는 삶은 어렵지 않다. 한 번쯤 멈춰 서서 시대의 정신을 의심하고, 코치의 도움을 받아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내면에서 뭔가를 더 캐내려고 애쓰는 것을 그만두고, 삶의 표면에서, 또 외부에서, 친구들과 우정을 쌓으며 현실에 굳건히 발 디디고 서 있는 삶이다.
책 속으로이 책은 이런 자기계발 문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쓰였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자기를 계발하는 법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 단단히 서 있는 법을 고민한다. 자기를 찾는 법이 아니라 존엄하게 살아가는 법을 고민한다.
이 책은 우선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부정적 사고를 추천한다. 이 책은 7가지 성공 습관이나 영성, U-이론 같은 대중철학이 아니라 고대 로마에서 노예(에픽테토스)와 황제(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발전시킨, 진지한 (그러나 결코 지루하지 않은) 스토아 철학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도 누군가가 자신과 관점이 확연히 달랐음에도 지금까지 어떻게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 책머리에(13p) 중에서
“자기를 찾고 계발하라”는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삶을 존엄하게 살아갈 기회가 더 많다. 그들은 일관되고 지속된 정체성으로 자기 삶에서 중요한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는 본질적인 가치가 결코 없다. 반면에 우리와 서로 연결된 사람들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렇게 책임을 다하다 보면 우리가 ‘진짜’ 우리 자신인지 아닌지는 사실 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자아실현에 매달리느라 종종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못하기도 한다. - 제1장. 멈추다(59~61p) 중에서
그러나 한 가지 두려운 점은 이런 긍정적 사고방식이 개인에게 긍정적 태도와 행복을 강요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가속화 문화에서는 역설적으로 긍정성과 행복의 강요가 고통을 생산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늘 행복하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한다고 줄곧 자책한다(앞서 언급했던 모순 기계를 참고하라).
강요된 긍정에 대한 또 다른, 연결된 비판은 긍정적 사고가 상황의 중요성을 깎아내린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복이 주로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련된 여러 사회적 요인 등과 같은) ‘외적’ 요인 이 아니라 ‘내적’ 요인에 달려 있다고 가정한다면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신 책임이 된다. - 제2장. 바라보다(83p) 중에서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을 다룬 유명한 책에서 의심의 윤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진실이 없다 해도 사람은 진실할 수 있다. 믿을 만한 확실성이 없다 해도 사람은 믿을 만할 수 있다.” 아렌트는 스토아 철학자는 아니지만 이 문장은 스토아 철학의 신조 가운데 하나를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했다. 그리고 이는 21세기 가속화 문화에 무엇보다 적절하다. 어쩌면 절대 진리라는 것이 없을지 모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절대적 진리를 창조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 이런 의미에서 ‘아니요’는 굳건히 서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 제3장. 거절하다(117p) 중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도 화를 막는 방법으로 ‘상황의 하찮음’을 생각하라고 충고한다. …… 화를 내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마음의 평화를 흐트러뜨리고, 단단히 서 있지 못하게 뒤흔드는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단단히 서 있고 싶다면 쉽게 넘어져서는 안 된다. 텔레비전과 광고, 소셜미디어에서 우리의 감정에 호소하는 것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런 호소 때문에 우리의 욕망이 쉴 새 없이 달라진다. 덧없는 욕망을 줄곧 좇는다면 단단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감정을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진정성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야 어느 정도 존엄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가면을 쓰는 연습을 하라. 다른 사람의 사소한 행동에 휘둘리지 않도록 연습하라. - 제4장. 참다(146~147P) 중에서
그리고 요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이라는 표현 대신 ‘인맥’이라 부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맥은 도구적인 개념이다. 필요할 때 동원하기 위해 유지하고 관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 대상이다. 직장을 옮기고 싶다면 인맥 안에서 알아본다. 사회학자들은 ‘사회자본’이라는 형태로 인맥의 범위와 힘을 양적, 질적으로 측정한다. 이때 자본은 사실상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개인 관계의 상품화와 진짜 우정의 퇴화를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스토아 철학에서처럼 전통적 의미에서 친구는 한 사람의 삶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정의되었다. 친구는 당신의 삶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 제5장. 홀로 서다(164~165p) 중에서
스벤 브링크만 지음 |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 | 264쪽 | 1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