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부인을 뭐라고 호칭할지를 둘러싸고 때아닌 논쟁이 뜨겁다. 아니 엄청나게 가열되며 확산되고 있다. 모 언론에서 김정숙씨라고 표기했기 때문이다.
1. 작년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 이야기다. 식사를 할 수 있게되자 간호사가 "여사님이 식사를 도와줄겁니다"라는 것이다.
난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못알아들었는데 알고보니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오른 손이 마비돼 혼자 힘으로 식사를 못하니 밥을 먹여주겠다는 뜻이었는데, 아주 드물지만 중환자실에 있으면서도 식사를 할 수 있는 환자의 경우, 보호자가 들어오지 못하니 대신 '여사님'이 식사를 해주는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이런 호칭이 무척 어색하더니 일반병실로 옮겨서도 이런 표현을 계속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다.
2. 젊은 시절 취재를 하다가 의아했던 기억 하나. 모 교단 총회에 갔더니 회의록에 '김영수씨가 동의하고 이철수씨가 재청을 하였다'라고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평소 김영수 목사님, 이철수 장로님같은 식으로 높임말을 사용하는데 왜 회의록에는 여러 호칭중에서 '씨'라고 부를까 의아해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3. 이 두 경험을 통해 나는 호칭이 상황에 따라 상대적이 될 수 있음을 절감하였다. 여성에 대한 극존칭인 '여사님'이 적어도 병원에서는 의사를 호칭하는 '선생님'보다 하위의 존칭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반대로 일상적 사회생활에서 존칭이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던 '씨'가 국어어문법상 성과 나이, 신분차이를 드러내지 않는 존칭으로 사용되는 것이 원래 용도임을 확인한 것이다.
4. 권위주의정권 시절에는 대통령 부인을 '영부인'이라고 호칭했다. 그러다가 민주화가 진전되며 '여사'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용어 역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냥 '씨'라고 호칭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어느 용어를 사용하든 그것은 선택의 문제이지 존칭과 하대 여부를 좌우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5. 그런데 자리에 따라서는, 또 상황에 따라서는 이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동네식당에서 여종업원분에게 '여사님'이라고 부른다면 반응이 어떨까? 또 한국기업에서 회의중에 나이많은 상사를 '씨'라고 호칭한다면?
6. 어느 언론이 대통령 부인을 비롯해 기사의 등장인물을 모두 '씨'라고 표현하기로 했으면 거기에는 보편성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누구나 항상 그렇게 표현해야지 장관은 장관이라고 표현하고 의원은 의원이라고 표현한다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만하지만 공식적 지위는 없는 인물에 대해서만 차별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적어도 아직까지의 한국사회 분위기에서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7. 따라서 나는 문제가 된 보도가 원칙적으로 틀린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적절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학술서적이나 공식기록물이 아닌 대중매체의 기사는 대중의 정서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용어를 취사선택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되기 때문이다.
8. 하지만 그 용어사용에 대해 지금처럼 과열된 반응을 보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물론 평소 기사에 대한 불만과 당사자의 SNS글이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그에 대한 지적은 그 수준에 맞는 비판과 토론으로 정리되어야만 한다.
지금의 대립사안은 마치 서로 루비콘강을 건넌 것같은 불가역적 대립으로 확산시킬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해 온국민이 힘을 모으고, 특히 촛불혁명의 정신을 국가개혁과 한반도 평화로 이어가기 위해 작은 차이보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공통분모에 더욱 주목하여 '진짜 반개혁, 반평화세력'에 대응해야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