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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고용 신분의 차별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신간 '고용 신분 사회'

     

    정규직, 파견직, 시간제 등 고용 신분에 따라 죽어서도 차별받는 고용 신분 사회의 도래!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고용 신분 사회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무엇일까?

    정규직, 파견직, 계약직, 시간제 등 어떤 형태로 취업했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대우와 차별을 받는 현대 사회는 고용 신분 사회라 할 수 있다. 노동자의 대다수가 정사원이거나 정규직인 시대는 막을 내리고 사람들은 정규직, 중규직, 파견직, 계약직, 시간제,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고용 신분을 배당받게 되었다. 이는 단순한 고용 형태의 차이가 아니라 고용 안정성, 임금, 복리후생, 사회적 지위, 서열 등에서 심각한 격차가 존재하는 신분제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현대에 어째서 이런 신분제가 부활하게 된 것일까?

    신간 '고용 신분 사회'는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계층이 세분화되면서 심각한 격차가 존재하는 신분으로 고착하는 현상을 풍부한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통해 분석하고,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고용 신분 사회를 해결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고용 신분’의 본질이 ‘차별’임을 생각할 때 불안정한 고용 상태인 시간제 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세탁기가 빨래를 해주고 전기밥솥이 밥을 해주니까 살기 편해지고 시간이 남아 여성이 노동시장으로 나온다고? 흠, 과연 그럴까? 저자는 이것이 ‘남자는 잔업, 여자는 시간제’라는 고용의 신분화를 정당화시키려는 통념에 불과할 뿐이라고 말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고용 신분 사회'의 저자인 경제학자 모리오카 고지 교수는 실천적 영역에서도 활발하게 개입하고 있는 학자다. 그는 지난 2012년 11월 한국에서 개최된 ‘노동시간 단축 국제심포지엄’에서 일본의 사례를 발표했고, 2015년 9월에는 ‘과로사 방지법’ 문제로 서울에서 초청 강연을 했다.

    이 책에서 그는 전전 시대부터 아베 정권까지 약 100년 간의 시대적 노동 문제를 짚어낸다. 산업화 초기의 노동 착취부터, 차별받는 파견 노동과 시간제 노동의 등장 그리고 기존 정규직 노동자의 과로사까지 살펴본다. 특히 일본 사회가 자본의 요구와 정부의 방관 속에 고용 신분 사회로 고착화되면서 노동자들 사이에 격차와 빈곤이 심화되었음을 지적한다.

    20세기 초 일본의 방적공장에서는 모집인을 통해 여공을 고용했다. 노동자를 모집하는 수고와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와 계약을 맺는 ‘직접 고용’보다는 공급업자가 제공해주는 ‘간접 고용’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공들은 팔리듯이 공장에 들어와 12시간 넘게 일하며 혹사당했지만 공장은 언제든 여공을 자를 수 있었다. 이후 노동법으로 금지되었던 위법적인 노동자 공급 사업이 노동자 파견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부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정규직은 상여금, 유급휴가, 승진, 퇴직금도 없이 저임금으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규직이 되기를 원지만 저자는 정규직이 안정적인 고용 신분이 아니라고 말한다. ‘판교의 등대’, ‘구로의 등대’라는 말이 있다. IT 기업이 몰려 있는 판교와 구로디지털단지의 기업 빌딩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과로사한 시스템 엔지니어는 하루 평균 11시간 52분을 일했으며, 어떤 때는 37시간 연속 근무를 하기도 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 때문에 과로사와 과로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일본 기업들은 잔업 수당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제도를 도입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을 받는 노동자는 연장 근무를 해도 수당을 지급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인데, 이는 경총의 주장에 한국 정부에서도 검토했던 ‘화이트칼라 이그잼션(White Collar Exemption)’과 같다.

    일본 정부는 이른바 종신 고용이 정사원의 특징이라 보고, 근무지를 옮겨 다녀야 하거나 노동시간이 긴 것을 이에 대한 대가라고 여긴다. 이러한 정사원을 무한정 정사원이라 칭하고, 직종이나 근무지, 노동시간을 한정한 정사원인 ‘한정 정사원’을 보급하여 비정규직을 감소시키겠다고 한다. 한국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을 가리키는 이른바 ‘중규직(中規職)’과 닮은꼴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줄기는커녕 정사원을 임금이 적고 해고하기 쉬운 한정 정사원으로 치환시켰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정사원으로 남으려면 무제한 장시간 노동을 해야만 한다. 저자는 이것이 노예처럼 부려먹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희망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고용 신분 사회에서 빠져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에게 ‘디센트 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좋은 일자리, 괜찮은 일자리 등으로 번역되는 이 말을 저자는 ‘제대로 된 노동 방식’이라고 번역한다. 그리고 디센트 워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파견 노동의 재고, 비정규직 노동 비율의 저하, 규제 완화 폐지, 최저임금 현실화, 성별 임금 격차 해소, 8시간 노동의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제가 어쩐지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우리나라 또한 비정규직 증가와 저임금 노동, 고용 및 성별 임금 격차, 과로사 문제 등이 IMF 구제금융 이후 지난 20년 사이 일본 사회를 그대로 뒤쫓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용 신분 사회에서 빠져나갈 길은 참담한 노동 현실을 바로잡자고 외치는 우리들의 목소리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제 저자가 던진 ‘제대로 된 노동 방식의 실현’을 고심해 볼 때다.

    모리오카 고지 , 김종진 (해제) 지음 | 김경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88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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