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차량 속도제한장치 해체장비들. (사진=인천지방경찰청 제공)
화물차나 전세버스 등 대형차량 속도제한장치 해체장비 개발자와 불법해체업자 10여 명이 경찰에 무더기로 검거됐다. 해체장비 개발자 검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지방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속도제한장치를 해체장비를 제작해 유포한 개발자와 해체 장비를 구입해 수수료를 받고 속도제한장치를 해체한 해체업자 12명, 속도제한장치가 해체된 것을 알면서도 허위로 검사증명서를 발부한 자동차 검사소 관계자 30명(16개 업체)을 검거해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또 해체차량 운전기사 등 198명에 대해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정비불량차량 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속도제한장치 해체장비 6세트(1억8000만 원 상당) 및 노트북 20개를 압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해체장비 개발자인 김모(44) 씨는 지난 2008년 자동차의 출력을 높이는 '매핑(mapping)' 기술을 배운 후 자동차 프로그램 기술자 윤모(43) 씨를 고용해 해체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이들은 2009년 화물차의 속도제한장치를 해체하는 장비를 개발해 VMT(Vehicle Mounted Terminal·차량탑재단말기)라는 명칭을 붙이는 한편, 2~3000만 원을 받고 장비를 판매하거나 해체기술을 전수하고 신차가 나오면 500만 원을 받고 프로그램을 업데이트 해주는 방법으로 약 8억 원을 벌었다.
김 씨는 현재 경기도 시흥에서 4~5명의 직원을 두고 센서 등 자동차 관련 부품 생산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해체업자들은 김 씨로부터 구매한 해체장비를 이용해 주로 고속도로 휴게소나 화물차 차고지 등 대형 차량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서 대당 20~40만 원을 받고 화물차나 버스의 전자제어장치(ECU)를 조작해 속도제한장치를 해체했다. 차량 한 대당 해체 작업 시간은 5~10분이 걸렸다.
해체업자 중 일부는 프로그램을 복제해 다른 해체업자에게 판매하기도 하고 직원을 고용해 활동 지역을 확대하거나 다른 해체업자들과 사업구역을 정하는 등 일종의 조직체계를 구성하기도 했다.
또 16개 검사소에서 속도제한장치 관련 검사를 하지 않거나 속도제한장치가 해체된 것을 알면서도 허위로 검사증명서를 발부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검사소 중에는 교통안전공단 직영 검사소도 2곳이 포함됐다.
대형 화물차나 전세버스 등 사업용 자동차에는 과속운전을 막기 위해 속도제한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하도록 돼 있다. 11인승 이상 승합차는 110㎞/h 이하, 총 중량 3.5톤 이상 화물차는 90㎞/h 이하로 돼 있다.
속도제한장치 해체업자 계보도. (사진=인천지방경찰청 제공)
초창기 해체업자들은 주로 속도제한장치를 해체한 차량의 데이터 칩을 정상 차량의 데이터에 덮어 씌우는 방식(ROM PACK)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대부분 해체장비를 이용해 ECU 데이터를 추출‧변경 후 재입력하는 방식(VMT)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업용자동차는 전체 차량의 6.3%에 불과하지만 교통사망사고의 20%를 차지하며 보행자 사망사고의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또 일반 교통사고 치사율(1.9명)에 비해 사업용 자동차에 의한 치사율(3.2명)이 59% 높다.
경찰은 자동차 제작사의 경우 현재 ECU 조작만으로 속도제한장치 변경이 가능하도록 돼 있어 조작이 용이하지만 앞으로는 변속제어장치(TCU) 등 여러 장치를 종합해 속도제한장치 프로그램을 보완하는 등 보안성을 높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자동차관리법상 속도제한장치의 '해체'라는 용어가 과거 납땜을 떼어내는 1990년대 해체 방식임에도 현행 법률에 남아 있어 속도제한장치 해체업자를 검거해도 법원은 프로그램의 '조작' 행위는 '해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 처벌 규정을 명확히 할 수 있는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