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는 2016년 제1회 수상자인 이건혁, 박지혜, 이영인과 초청작가 김보영, 김창규의 과학소설 다섯 편이 수록되었다.…
대상을 수상한 이건혁의 「피코」는 인류의 1차 종말 이후 인공지능이 철저히 관리되고 통제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인 ‘피코’는 반려 인공지능을 부르는 말이다. 소설에서 등장하는 인공지능법은 인공지능의 지능 발달 수준을 통제하기 위해 7년마다 피코를 교체하도록 강제한다. 피코가 자의식을 가진 인격체로 성장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인류의 1차 종말이 인공지능과 관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7년을 함께 살아온 피코를 반려동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인공지능법을 어길 때가 많았다. 주인공 제타는 이런 피코를 수거해 기억을 폐기하고 초기화하는 일을 한다. 그러다 인공지능법에서 철저히 규제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한’ 피코를 수거하게 되면서 제타의 삶은 예기치 못한 일들을 겪게 된다.
박지혜의 「코로니스를 구해줘」는 과학스릴러 소설이다. 주인공인 BJ 주노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VR(가상현실) 게임에 출연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사이드 오브 마인드2’라는 VR 게임은 개개인이 가진 기억 속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구현해낸다. 학창시절 왕따를 당했던 주노의 기억이 가상현실 게임에서 구현되면서 소설은 판타지적인 요소들과 결합되어 긴장감을 조성한다. 작가는 십대 소녀들 사이의 선망과 질투, 우정을 가장한 폭력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영인의 「네 번째 세계」는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소설을 구성해낸 하드SF소설이다. 우주에서 데브리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함선이 ‘시아’라 불리는 특별한 물체를 발견하고, 좌초를 겪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거대한 종기 덩어리처럼 보이는 괴생명체가 등장하고, 빛도 반사되지 않고 소리를 질러도 메아리가 없는 검은 벽 ‘블랙필드’가 발견되면서 함선의 선원들은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과학이론을 통해 정체불명의 물체들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를 밝혀가는 과정에 있다. 이영인은 열역학 제2법칙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 소설의 의문들을 하나씩 해소시켜 나간다.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작가는 SF영화를 보다가 시간여행의 개념에 의문을 품고 관련 서적을 찾아보다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을 읽게 되었다.
김보영의 「고요한 시대」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을 대체하는 ‘마인드넷’을 이용하게 된 가까운 미래에,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의 상황을 그린다. 마인드넷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시각화해 보여주고, 감각을 느끼는 대로 공유할 수 있게 해주는 가상공간이다. ‘대선’을 앞두고, 언어학자인 주인공 신영희는 언어를 통해 대선 프레임을 짜는 일에 고용된다. 하지만 뜻밖의 대선주자가 ‘마인드넷’을 통해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소설에서는 국내 정치의 이면을 비판적으로 그려내는 한편 SF적 상상력으로 ‘마인드넷’이라는 가상공간을 창조해내 이야기에 재미를 더했다.
김창규의 「삼사라」는 인류가 사라진 이후 기계인 ‘코어’들이 살아가는 우주를 그린다. 코어인 유리와 넨버는 우주선 ‘삼사라’에 살면서 우주를 탐색하고, ‘은하 중심’의 지시를 수행한다. 은하 중심은 유리와 넨버에게 타원형 인공물을 관찰하고 청소하라고 명령한다. ‘청소’하라는 것은 인공물을 없애라는 의미이다. 두 코어는 ‘섬-21’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인공물에서 인간이라는 개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전염병인 ‘주마병’ 보균자라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학대와 차별을 받아왔고, 다른 세계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3,0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수면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첫 전쟁의 지평선 이후 인류는 사라졌고, 그들은 마지막 남은 인간들이었다. 유리는 그들을 ‘청소’하라는 명령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김창규의 「삼사라」는 정부의 강제 조치로 소록도에 격리 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혁 , 박지혜, 이영인, 김보영, 김창규 지음 | 허블 | 328쪽 |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