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여있던 문재인정부의 초대 경제라인이 윤곽을 드러냈다. 재벌 개혁을 통한 '경제 민주화'는 학자 출신인 장하성·김상조 투톱이, 이를 뒷받침할 재정 운용과 일자리 창출은 정통관료 출신인 김동연·이용섭 쌍두마차가 역할을 분담할 전망이다.◈'정책 총괄' 장하성 실장, '낙수' 아닌 '분수' 효과에 방점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정책실장에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김동연 아주대 총장을 각각 지명했다.
경제 사회 등 각종 정책을 총괄하게 될 장하성 실장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경제학자다. "대기업을 위주로 경제 성장이 이뤄졌지만 가계소득은 그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는 문 대통령의 설명은 그의 이력을 잘 설명해준다.
장 실장은 이날 인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도 "함께 잘사는 구조를 만드려면 기업 생태계가 균형 잡혀야 한다"며 "재벌 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로운 성공기업, 또는 새로운 중소기업의 성공신화 이런 것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재벌 저격수' 김상조 후보자와 중장기 개혁 '공동 행보'이같은 기조는 이미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도 방향을 같이 한다. '재벌 저격수'로 불려온 학자 출신의 두 사람이 경제 분야 '적폐 청산'의 일순위로 꼽히는 대기업 개혁을 주도할 것임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는 정책을 총괄하는 장 실장이 '큰 그림'을 그리면, '경제 검찰' 수장을 맡게 될 김 후보자가 박차를 가하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급격하고 단기적인 대기업 압박보다는 중장기 접근을 통한 근본적 개혁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장 실장은 "재벌개혁 문제는 김상조 후보자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기업은 대기업이든 재벌이든 소상공인이든, 모두 일자리로 매우 소중하다"며 속도 조절에 나설 뜻임을 밝혔다.
김 후보자 역시 "재벌개혁이 재벌을 망가뜨리거나 해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재벌도 발전하면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서비스업 분야에서 좋은 일자리가 더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개혁의 목표"라고 정의한다.
◈'예산통' 김동연 부총리 후보, '일자리 재정' 운용 전면에그간의 대기업 위주 정책을 벗어난 '소득 주도 성장'의 물적 토대는 경제팀 수장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가 맡게 된다. 장 실장이 제시하는 정책 방향을 경제 현장에 적용하는 총책임자 역할이다.
옛 경제기획원(EPB) 출신인 김동연 후보자는 기재부 예산실장과 예산 총괄인 2차관, 총리실 국무조정실장 등을 역임한 대표적 '예산통'이다.
옛 재무부 출신들인 일명 '모피아'가 주로 맡아온 기재부 장관을 김 후보자가 맡게 된 것은 재정과 예산 운용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새 정부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김 후보자 인선 배경에 대해 "청계천 판잣집 소년 가장에서 출발해서 기재부 차관과 국무조정실장까지 역임한 분"이라며 "누구보다 서민들의 어려움을 공감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제이노믹스'의 근간인 소득 주도 성장 정책에 뼛속부터 공감하며 실천해낼 수 있는 적임자로 김 후보자를 발탁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당장은 새 정부의 첫 경제 현안인 10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예산 편성이 김 후보자의 과제가 될 전망이다.
김 후보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실업문제가 지속되면 성장잠재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며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청년실업률이 두자릿수가 넘고 체감 실업률도 23%가 넘는다"며 "여러 거시경제 지표가 좋게 나오고 있지만 국민 체감경기와 맞는지, 내실있는 지표인지 짚어봐야 한다"고 추경 필요성을 설명했다.
◈정책과 현장 어우러진 '경제 개혁 삼두마차' 시대 열리나김 후보자는 또 "근본적이고 지속가능한 생산성은 사람중심 성장, 일자리 등에서 나온다"며 새 정부의 경제 철학과 맥을 같이 했다.
'제이노믹스' 성패의 첫 단추인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은 김 후보자와 '민간 몫'으로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게 된 이용섭 전 의원이 호흡을 맞추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은 일자리위원회가 경제 분야 '핵심 컨트롤타워'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책특보를 맡은 이 부위원장과 경제부총리의 협업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일자리와 경제 활력을 만들어내는 것이 새 정부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라는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도 김 후보자의 재정 운용과 정책 방향을 가늠하게 해준다.
김 후보자는 참여정부 청와대 근무 당시 작성을 주도한 '국가비전 2030'에서 "국가 발전 단계상 제도 혁신은 선진국 진입의 필수조건"이라며 "제도 혁신 없는 투자 확대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따라서 김 후보자가 일자리 창출은 물론, 비정규직 해소와 증세를 통한 복지 강화, 연금 개혁 등 기재부가 관여된 각종 정책에서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색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뿐 아니라 김동연 경제부총리 후보자까지 가세한 '경제개혁 삼두마차' 시대가 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