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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들의 명절 '페밋', 다정하고 안전한 공간의 탄생



문화 일반

    페미니스트들의 명절 '페밋', 다정하고 안전한 공간의 탄생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1주기 ⑤]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 운영진 인터뷰

    어느덧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이 1주기를 맞았다. '여성이기에'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 안의 두려움을 용기 있게 발화한 여성들 덕에, 강남역 10번 출구는 '여성의 연대'가 머물렀던 자리로 재발견됐다. CBS노컷뉴스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의 의미를 짚고, 사건 이후 페미니즘이 보다 활발하게 논의돼 자연스레 일상 속에 들어온 흐름을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은 '묻지마 범죄'가 아니다
    ② "묵인했던 차별과 혐오가 이런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③ 페미위키, 핀치…강남역 이후 일상으로 들어온 '페미니즘'
    ④ '여성 편향적' 젠더 토크쇼라고요? 오해입니다
    ⑤ 페미니스트들의 명절 '페밋', 다정하고 안전한 공간의 탄생
    <끝> 노컷 인터뷰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탈영역 우정국에는 끝없는 줄이 이어졌다. 문화 플랫폼 탈영역 우정국·텀블벅·핀치가 주최하고 소문자에프가 주관하는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을 찾은 방문객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페밋'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보통이 아니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페밋' 기획전에 참여하는 팀들이 후원을 받았는데 행사 총 1억 4400만원에 달하는 후원금이 모였다.

    이 '기이한' 열기는 행사 당일 정점을 찍었다. '페밋' 첫날인 13일에는 너무 많은 방문객이 몰려들어 당초 오후 5시 20분까지로 예정되어 있었던 입장 가능 시각이 오후 4시로 대폭 앞당겨졌고, '페밋' 마켓과 위탁판매 부스 '후로파간다'마저 다음 날 판매를 위해 조기에 문을 닫아야 했다.

    CBS노컷뉴스는 텀블벅, 소문자 에프, 핀치, 탈영역 우정국 등 '페밋' 운영진에게 '페밋'에 쏟아진 큰 관심과 애정의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들어 보았다. 인터뷰는 서면으로 이루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 13~14일 양일 간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문화 플랫폼 '탈영역 우정국'에서 열린 페미니즘 페스티벌 '페밋' (사진=페밋 제공)

     

    ▶'페밋'의 탄생기가 궁금하다. 어떤 계기로 이런 행사를 준비하게 되었는지.

    텀블벅 (이하 텀) : 2016년 5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을 기점으로 여성혐오 및 차별을 비판하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2016년 2월에 페미니즘 매거진 [소문자에프] 창간호를 만들었던 소문자에프팀에서 각자의 영역에서 목소리 내던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을 행사라는 형태를 통해 한데 모아 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다. 이후 매거진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던 텀블벅의 김철민 에디터를 통해 '행사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어떤 모습일까'를 이야기했던 게 첫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그 규모를 크게 그렸는데 김 에디터가 작은 규모를 먼저 테스트해보고 다음 수순으로 규모 있는 행사를 진행해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해, 2016년 12월 독립출판물 서점인 햇빛서점에서 페미니즘 창작자들이 만든 굿즈를 판매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후로파간다'를 진행했다. 접근이 용이한 입지도 아니었고, 장소가 협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연일 성황이었고, 좀 더 큰일을 벌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확신을 얻었다. 이후 김 에디터의 섭외로 자생적 문화예술 생산을 지향하는 탈영역 우정국과 여성 생활 미디어 핀치가 합류했고, 2017년 2월 12일 페미니즘 창작자들을 대상으로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 창작을 고민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많은 페미니즘 창작자들이 서로와 서로를 잘 모른다는 것에 놀랐고, 그만큼 연대나 협력에 대한 고민 역시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오는 5월이면 웹에서 오프라인까지 페미니즘 창작이 촉발된 지 1년쯤 되었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열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하자는 데 네 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참여형 부스를 포함한 크리에이티브 마켓과 페미니스트 주체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토크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창작자 섭외와 행사 기획이 이뤄지게 되었다.

    소문자에프 (이하 f) : 두 명의 페미니스트 디자이너로 이뤄진 소문자에프는 페미니즘 시각예술 매거진 [소문자에프]를 발간할 때 1년의 타임라인을 그려왔었다. 첫 번째 판의 주제는 '발화'였고 그 다음 판의 주제는 '관계'였다. 지난 여름 소문자에프의 두 번째 판 발간을 준비하면서 다음 행보를 구상하던 중 '발화'와 '관계'를 지나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봉착했다. 발화가 점(개인)이었고 관계가 선(나와 타인들)이었다면 이제는 관계를 확장시켜 시간과 공간을 구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특히 소문자에프 활동을 하며 만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기존의 온라인 위주의 논의를 오프라인으로 끌어오는 경험이 주는 힘에 대해 확신이 들었고 그에 대한 갈증이 더욱 생겼었다.

    그 첫 번째 시작으로 지난 겨울에 '후로파간다'를 운영했다. 일정한 유통 채널이 없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이곳 저곳에서만 판매되던 많은 굿즈를 오프라인 공간에 모아본 것이다. 처음엔 이미 판매됐던 굿즈를 단지 한 공간에 모았다고 해서 과연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줄까 반신반의했는데, 숍이 열려있던 한 달 동안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다. 후로파간다가 '같은 공간에 서로가 페미니스트임을 확신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경험이 주는 안정감, 소비자로서 내가 하는 소비가 페미니즘의 지속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 창작자로서 페미니즘과 창작을 실천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희망' 등 다양한 주체들의 물음에 긍정적인 실마리를 보여줬던 것 같다.

    지난 겨울 팝업스토어 형태의 후로파간다를 운영할 때에도 판매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DJ가 음악을 트는 파티, 성폭력 생존자들이 모여 이야기 나누는 자리,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신의 지인을 데려와 고충을 토로하는 파티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오프라인에서 다양한 형태의 만남의 초석을 다졌던 것 같다. 단발성 행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특히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이 지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소문자에프의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과도 일치했다. 그래서 창작자들의 생태계 조성, 지속 가능성 등을 고민하며 페밋을 기획하게 됐고 이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 소비자들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임파워먼트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 탈영역 우정국, 텀블벅, 핀치, 소문자에프라는 각 단위가 참여하게 된 계기와, '페밋'을 통해 기대한 바는 무엇이었는지 설명 부탁한다.

    : 2016년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즘 창작자들의 대다수가 텀블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예산을 확보한 채로 창작을 할 수 없기에 크라우드펀딩을 택한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많은 수의 창작팀들이 텀블벅을 진행하고 소통하면서 창작자나 창작물에 대한 공감과 지지로 이뤄지는 '후원'이라는 새로운 소비 방식을 문화처럼 향유하기 시작한 것 같다. 2016년을 돌아볼 때 텀블벅은 이 새롭게 등장한 흐름이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 지속될 현상에 가깝다고 생각했고, 페미니스트 창작들이 어떻게 지속 가능해질지에 대해 주목했다. 또, 가능하다면 이들에게 안정적이고도 독립적인 창작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우연한 기회로 좋은 협업자들을 만나 페밋 기획을 함께할 수 있었고, 이 행사를 통해서 페미니즘 창작자들이 자신의 동료와 자신을 지지해주는 후원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 커넥션을 확인하는 것이 행사를 통한 수익 창출보다 더 큰 힘이 될거라 생각했다. 모든 분들의 생각을 짐작할 수는 없지만 페밋 공식포스터의 캐릭터처럼 서로 손을 맞잡는 데까지는 가닿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어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핀치 (이하 핀) : 핀치는 2016년 10월 런칭한 '여성 생활 미디어'로, 구독자 멤버십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부분 유료 서비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런칭 무렵부터 구독자들을 위한 오프라인 베네핏 모델을 고민해 왔고, 그 중 하나로 올해 5월 강남역 1주기 즈음하여 여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규모 있는 행사를 진행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2016년에도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다양하고 즐거운 행사들이 많았지만 마켓은 마켓대로, 파티는 파티대로 강연은 강연대로 진행되었던 것 같아서 그런 내용이 한 장소에서 한 이름으로 진행될 수 있는 행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럼 규모도 커질 것이고, 규모가 커지면 페스티벌 느낌도 나서 참가자들에게 조금 더 임파워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던 차에 텀블벅으로부터 기획 목적과 내용이 완전히 유사한 행사를 다른 주최 단위들과 함께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후로파간다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소문자에프를 비롯, 평소 여성 창작자들의 작업을 집중력 있게 소개해 온 탈영역 우정국 등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함께 하면 더 크게 할 수 있으니 반가운 제안이었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탈영역 우정국 (이하 탈) : 탈영역 우정국은 운영진이 여성기획자 3인으로 이루어져있어, 개국 공연이나 '포스트사이드' 등의 자체기획 프로그램에서 여성 창작자들의 작업을 비중 있게 소개해왔다. 온라인에서 이뤄져 온 새로운 여성주의 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고, 특히 지난해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때 포스트잇을 통해 나타난 오프라인 추모활동과, 검은 시위 등 일련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여성들이 목소리 내고 서로의 활동을 임파워링하는 것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문화예술 플랫폼으로서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은 페미니즘 작업을 발굴하고 관객하고 만날 수 있는 적절한 접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해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f : 핀치, 탈영역 우정국, 텀블벅 모두 페미니즘 창작자를 위한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는 팀들이고, 이러한 환경이 창작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밋의 출발이 소문자에프의 다음 행보에 대한 고민과 일치했던 만큼, 페미니즘을 주제로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자생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생태계가 생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의 '지속 가능한' 창작 토대를 마련한다는 기획의도가 신선했다. 결국 페미니즘을 중심에 놓고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하고, 그들을 '참여'하게끔 이끌어야 했을 텐데 혹시 어려움은 없었나.

    : 올해 2월에 있었던 페미니즘 창작자 워크숍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고민이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과, 지속 가능한 페미니즘 창작이었다. 생계와 창작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려움부터, 페미니스트로 자각하고 나니 남성 중심의 창작·생산 구조를 견딜 수 없다는 이야기, 페미니스트들끼리 자생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대안구조에 대한 상상까지 모두가 지금의 문제만큼이나 앞날을 걱정했다. 페밋 기획팀에서는 2016년 계속해서 몰아친 이슈들과 더불어 창작자들에게 피로와 좌절이 누적되었다고 생각했다. 사회가 나아질 거라는 보장은 없고, 그 안에서 맨땅에 헤딩하듯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피로감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줄 만한' 일이 필요하다고 봤다. 말 그대로 '함께, 오래도록, 재미있게!' 모든 페미니스트들이 만나 서로의 가능성이 되어주는 사건을 만들고자 애썼다. 다행히도 많은 창작팀들이 이러한 기획에 동참해주었고, 많은 분들이 이 행사의 기획과정부터 진행까지를 응원해주었다.

    : 이전에도 페미니즘을 모토로 한 잡지나 소모임 등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해에 개최한 멀티페스티벌 '포스트사이드'에서도 '입이 트이는 페미니즘'을 발간했던 봄알람(당시 페미디아 출판팀)을 초청해 참여시킨 적이 있다. 지난 겨울 소문자 에프가 진행한 '후로파간다' 팝업숍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창작자들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페미니스트로서 자각을 가지고 공적으로 발언하는 작가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온라인에서 예술계 성폭력 사건 폭로가 이어지면서, 여러 장르에서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생산자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었고, 그들의 활동을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따라서 참여할 팀을 섭외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f : 페미니스트 창작자들이 자신의 창작물을 선보이고 판매할 수 있는 장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나아가 페미니스트 창작팀에게 새로운 창작의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 또한 느꼈다.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분들과 만나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이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다. 이전과 같이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구조를 ‘참고’ 직업활동을 이어가기 힘들다는 뜻이다. 많은 창작자들이 이렇게 '참아야 하는' 구조 속에서의 소극적 변화 외에 완전히 새로운 판을 원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참가자 모두 이러한 새로운 생태계를 함께 만들어가보자는 의지가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던 것 같다.

    : '지속 가능한'이라는 워딩은 매우 중요하다.

    ▶ '페미니스트 창작자'와 '페미니스트 소비자'란 어떤 의미일까.

    : 페미니스트 소비자란 자신이 소비하는 대상(그것에 물성이 있든 없든)이 어떤 본질을 바탕으로 어떻게 생산된 것인지, 만약 소비하는 대상과 과정 속에 혐오가 있다면 어떤 혐오가 어떤 방식으로 재생산 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혐오를 감안하고 지속적으로 소비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소비하기를 그만 둘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위 고민의 유무가 핵심이라고 본다.

    : 일단 차별적 사회구조를 인지하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고 변화할 자세를 갖추는게 중요한 것 같다. 계속해서 새로운 생산물들이 쏟아져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로서 자신의 태도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적절한 비평과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f : 창작팀으로서, 페미니스트 창작자는 여타 창작자보다 더 고민할 지점이 많은 것을 안다. 메세지를 드러내되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력적인 셀링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항상 중심을 잘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 같다. 이제 소비자가 단지 페미니즘 굿즈이기 때문에 의리로 소비하는 때는 지났다.

    ▶ 마켓, 토크, 공연으로 행사를 구성했다. 각 부분을 맡아줄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섭외했나.

    : 토크의 경우 우선 패널을 전원 여성으로 섭외하겠다는 가장 중요하고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이 주제를 이분들이 이야기하면 정말 유익하고 재밌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분들을 한 자리에 모셨다. 전문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해당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들으러 와주시는 분들과 '잘' 이야기하실 수 있는 분들을 섭외했고, 주제마다 섭외의 결이 조금씩 달랐다.

    : 힙합씬 자체가 남성중심적으로 짜여져 있고, 가사 등에 내재된 여성혐오적인 요소들에 대해 비판이 이뤄지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슬릭은 씬 내부에서 페미니스트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를 작업에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페밋에서 꼭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섭외하게 되었다. 2월의 여성창작자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인연을 맺은 75a 역시, 지난 앨범에서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을 담은 사진집을 함께 발간하는 등 페미니스트로서의 고민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섭외하게 되었다. 참여형 부스의 경우, 운동의 방식이나 소주제에 있어서 다양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한국여성의전화나 여성환경연대와 같은 기존의 여성단체와 전국디바협회나 페미위키와 같은 새로운 분야나 운동방식을 채택한 팀들이 함께 잘 어우러질 수 있었던 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f : 마켓은 '창작팀'의 의미를 확장해, 단순히 굿즈를 제작하는 창작팀뿐만 아니라 작가, 디자이너, 페미니스트 활동가, 페미니즘 소모임원 등 다양한 형태로 페미니즘 활동을 하는 팀 모두 페미니스트를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나가는 '창작자'라고 생각해서 다양한 팀을 발굴하고 섭외하기 위해 노력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진행된 '페밋!' 기획전에서는 총 1억 44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다. (사진=텀블벅 캡처)

     

    ▶ 텀블벅 기획전 참여팀 총 모금액이 1억 3700만원(5월 12일 기준)을 넘었다. 첫날에는 천 명이 넘게 와서 입장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이렇게까지 열기가 뜨거울 줄 예상했는지 궁금하다.

    : 텀블벅에서 진행한 기획전의 성과가 총 1억 4400만원으로 좋은 결과를 내어 행사 당일 인파가 많이 몰릴 것을 예상하기는 했다. 하지만 행사 오픈 한두 시간 전부터 줄이 생겨서 행사 내내 줄이 계속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특정 창작팀의 굿즈를 사고 싶어서 온 분들도 많았지만, 페미니즘에 대한 공통 관심사를 기반으로 '무슨 일이 생기나' 보러 오신 분들이 더 많았다. 총 방문인수 1500명에 행사 운영상의 이유로 발길을 돌리셨거나 미처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포함하면 더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셨다고 생각된다. 무척 감사한 일이다.

    : 기획단에서 '천 명 오겠지요?' 하는 식으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씀을 하셨는 데 정말 천 명이 넘게 오셔서 아직도 좀 얼떨떨하다.

    : 결과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창작자들을 모신 풍성한 행사가 되었지만, 기획 초반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축제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대해 우려되는 부분도 있었다. 어떤 피드백을 받게 될지 조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하지만 2월 창작자 워크숍에서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자의 고민에서 비슷한 지점들이 확인됐고, 이번 행사가 창작자들에게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중요한 동력이 되어 (페밋을) 준비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많은 호응을 받은 데에 기획팀들 모두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

    ▶ 왜 이렇게까지 페밋이 '사랑받았을까'.

    :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목소리를 내다가 지친 분들이 꼭 들러주셨으면 좋겠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무척 힘이 되는 경험이다'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그런 행사가 아니었나 싶다.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었다.

    f : '나와 같은 사람'을 직접 확인하고, 그들과 이야기하며 같은 생각을 공유한다는것이 페미니스트에게 얼마나 고무되는 것인지, 또 나 자신에게도 생각할 기회를 주는것인지 알기 때문에 페밋 또한 사랑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 페밋 행사를 마치고 나서의 소감이 궁금하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 기획단으로서도, 주최 단위로서도 굉장한 경험이었다. 첫날 대기줄이 긴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큰 비가 내렸는데, 궂은 날씨에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우산을 나눠 쓰며 입장줄을 지켜 주시는 분들께 오히려 더 큰 힘을 받았던 것 같다. 모두들 친절하고 다정한 공간이었다. 심리적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 기존에 페미니즘 시위나 행사에서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 이를 전시하거나, 행사를 방해하기 위해 참여해서 훼방을 놓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불미스러운 일들이 없었다. 참가자들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즐기는 데에서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f : 지난 후로파간다, 다른 페미니즘 행사 등에서 뵈었던 분들을 페밋에서도 또 뵙고 인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명절 같은 분위기였다. 페미니스트들만의 명절. 그리고 SNS에 올라온 많은 후기 중 '아치형 눈썹을 그린 서로에게 다정한 여성들' 이라는 말이 자주 보였는데 이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세상에는 예민하고 불'친절'하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사랑하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존재가 기획단에게도 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 벌써 하반기에 또 열어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는데 혹시 계획이 있나.

    : 6개월 가까이 준비한 행사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기획팀 내부에서 행사에 대해 되돌아보고 정리할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연례적으로 행사를 이어나갈 의지를 공유하고 있으니,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f : 원래 후로파간다 이후, 지난 일 년 간을 정리하는 시간을 내부적으로 가지려고 했는데 바로 페밋 준비를 하게 되었다. 2015년 부터 쉼없이 달려왔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진짜… 제발…)

    ▶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이후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 한국에서 여성이 페미니즘과 관련하여 목소리를 내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 있는 여성들이 만들어 나가는 커다란 흐름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바깥으로 나올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 행사 참여자 중에 도 10대들이 꾸린 '소수자들' 부스가 있었고, 관람객 중에서도 10대들이 많다는 점에 고무되었다. 또 페밋 이후에 우정국에서는 여성 디자이너들이 기획하고 주최한 '여성디자이너 정책연구모임 WOO의 공개 강연 및 네트워크 행사 WOOWHO' 가 뜨거운 관심 속에 성공리에 진행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 다양한 주제의 페미니즘 행사가 앞으로도 많이 열릴 것으로 기대되고, 페밋의 성공이 창작자들에게 좋은 자극과 용기가 되길 바란다.

    f : 각자의 일상에서 다양한 규모, 다양한 주제로 페미니즘을 실천하다 필요할 때에 모여 다시 힘을 얻고 각자의 자리로 흩어지고… 이제는 이러한 이합집산이 가장 중요할 때라고 생각하고 그것의 기반이 될 행사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너무도 환영할 일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페밋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 주관·주최 단위 여러분들께 정말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린다. 여성생활미디어 핀치에도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린다.

    f : 페밋에 참가해주신 분들, 그리고 와 주신 분들 지켜봐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고 그분들에게 페밋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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