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 (사진=자료사진)
"법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사람의 문제입니다. 법안에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잘 들어봐야 합니다. 힘없고 억울한 사람이 기댈 수 있는 곳이 법원이어야 합니다"
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에게는 '소탈'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권위적이지 않고 판사, 직원들과 소통하는 행보를 주저하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는 소탈 행보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부산가정법원에 재판을 받으러 온 위기 청소년, 학대가정 가장들을 직접 찾아간다. 그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줘야 또다시 같은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5월 들어서는 보호소년 들과 함께 숲길을 걷고 있다. 범죄를 저질러 재판을 받으러 왔다가 돌아갈 가정이 없어 청소년 보호센터 있는 아이들이다. 또, 보호처분으로 정규교육과정을 이수하지 못해 부산국제금융고 부산가정법원 특별반에 다니며 다시 꿈을 설계하는 학생도 있다.
숲길에는 문 원장과 해당 학생에게 판결을 내린 판사,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들이 동참한다. 프로그램 이름은 '숲속의 작은 학교'. 어른들과 그것도 숲길을 걷는 것이 아이들은 영 어색하기만 하다. 그래도 자연이 주는 넉넉함에다 어른들의 진심 어린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해지면 아이들은 이내 마음을 연다.
"먼저 청소년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죠. 그들의 고민도 듣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에 숲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회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가장 편하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문형배 부산가정법원장 등 법관 고위 인사들은 직접 보호청소년들을 만나 숲길을 걸으며 상담에 나서고 있다. '숲속의 작은학교'를 통해 보호청소년들은 어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거나, 미래에 대한 상담을 하기도 한다. (사진=자료사진)
숲길을 걸으면서는 생태에 대한 이야기와 마술쇼도 벌어진다.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아이들이 숲길을 걷고 난 뒤 식사자리에 가면 먼저 고기쌈을 싸서 동참한 어른들의 입에 넣어주는 애정을 표하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의 관심과 애정인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문 원장은 아동학대 가장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 미리 가정에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자전거, 오븐, 학습지 등을 준비해 간다. 학대 당사자가 없을 때 또 학대가 벌어졌는지 가정 현장을 둘러보고 상담도 한다.
"보통 아동학대가 벌어지는 배경을 살펴보면 어려운 가정 형편이 있습니다. 생활이 힘들고 짜증 나니까 죄 없는 아이에게 화풀이 하는 것이죠. 학대 당사자들이 화나는 원인을 듣고 공감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학대 당사자가 없을 때 가정을 방문하고, 이후 당사자가 이 사실을 알아채면 아주 반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 나는 내 아이를 때렸는데, 법원에서는 선물까지 사와서 챙겨주는구나.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라고 느끼는 겁니다"상습적인 부친의 구타를 당한 한 여중생의 가정에 법원은 이번에는 오븐을 선물했다. 직접 오븐을 들고 가정을 방문하니 학생의 어머니가 화들짝 놀랐다고 한다. 설마 사다 주겠냐는 심정에서다. 제빵사가 꿈인 여중생은 오븐으로 빵을 만들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 오븐 하나가 아이의 상처도 치료하고, 가정에 미래를 심어준 셈이다.
범죄를 저지른 위기 청소년, 가정폭력은 이면을 들여다보면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문 원장은 설명한다. 실제 학대를 당한 아이는 위기 청소년이 되거나, 이후 가정을 꾸렸을 때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때문에 개인, 사회, 국가 세 단위가 협력해 도와줘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 사회, 국가가 협력해 관심을 갖는 것은 엄청난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작은 예산으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것이 마중물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죠. 법원뿐 아니라 경찰, 검찰, 부산시 모두 협력체계를 구축하면 가정법원에 올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그러면서 문 원장은 공익적인 일을 하는 사단법인, 재단법인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통 새터민, 다문화가정, 저소득층, 미혼모 등에 대한 지원과 정책은 있는 편인데, 학대 가정을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자는 사회적 공감이 적다는 것이다.
부산가정법원에서 처음 시도되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은 어디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문 원장은 주저 없이 드라마와 책을 꼽았다. 드라마에는 항상 법원이 부정적으로 나온다. 사적인 영향력을 써서 사건을 해결하려고도 한다. 내용은 천차만별이지만 결국 협력해서 사랑으로 극복하는 것은 매한가지라며 문 원장은 법원의 역할과 어떻게 시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많은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은 판사의 역할에 대한 큰 고민을 하게 된 작품으로 꼽는다. 은식기를 훔친 장발장에게 은촛대까지 내밀며 관용과 용서를 보여준 미리엘 주교의 역할을 판사가 할 수 없을까? 빵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 형을 선고한 소설 속 판사 대신 말이다. 아마도 소설 마지막에 혁명을 배치한 것은 19년 형을 선고하기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판사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는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을 스스로 늘 해본다고 한다.
"이 사회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가 있어야 관계가 발전합니다. 이야기가 없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사회가 연결되어 있는 게 중요합니다. 각자 중요하고 소중한 그 이야기를 듣고 연결하는데 가정법원이 먼저 나서려고 합니다."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