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23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이재준 기자)
"숨어있는 5번 핀을 제대로 공략하면 10개의 핀들을 모두 쓰러뜨려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첫 '경제 야전사령관'으로 지명된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내세운 일명 '킹핀 이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명 이틀 만인 23일 오전 청문회 준비 및 기재부 업무보고 사무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했다. 기자들과 만난 김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다"며 "시간이 나면 여러 가지 정책 구상도 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낙점을 받은 직후 김 후보자는 경제 정책을 볼링에 비유하며 "맨 앞의 1번핀을 보고 공을 굴리면 스트라이크가 되지 않고 스페어 핀들이 남는다"고 했다.
'스트라이크', 즉 경제 정책이 주효하려면 숨어있는 5번 핀을 가리키는 '킹핀'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언급한 1번 핀은 '저성장'이다. 지금까지는 저성장만 해결하면 다른 문제가 모두 해결된다고 보는 이른바 '낙수 효과' 위주로 정책이 운용됐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그의 '정책 구상' 요지다.
가령 2번 핀인 '청년실업', 3번 핀인 '저출산' 등을 일거에 해결하려면, 1번 핀이 아닌 5번 핀을 공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가 지목한 킹핀은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의 개선, 즉 계층 이동의 통로를 잇는 일명 '사다리 복원'이다. 김 후보자는 "사회보상체계는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느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과거에는 대기업·공기업에 취업하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었고 다들 이 곳에 가려고 경쟁하느라 대학 입시와 취업 문제가 나타났지만, 앞으로도 이런 길로 가는 데 대해 보상을 주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이 규칙과 체계가 곧 거버넌스다.
김 후보자는 전날 아주대 특강에서도 "교육이 부와 사회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 돼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단절될수록 사회 다수의 분노가 폭발할 우려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3월말 기재부 '후배'들을 대상으로 가진 강연에서도 김 후보자의 '킹핀 이론'은 핵심 이슈가 됐다. 그는 강연에서 "승자 독식과 기득권 카르텔을 깨부수고 보상체계를 흐트러뜨려 재구성하면 눈앞에 있는 4차 산업혁명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사회보상체계와 '게임의 룰'을 누가 어떤 절차와 규칙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거버넌스를 소수의 엘리트가 과점하면 안 된다"며 "기존에 알고 있는 경험이 절대적이란 우를 범하지 말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후보자의 이같은 철학은 새 정부의 경제 운용에 있어 일종의 '지침서'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국가 단위의 '성장'보다 '사람'에 주목하는 제이노믹스의 '소득 주도 성장' 개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16세기말 영국이 '대영제국'으로 도약한 계기로 스페인을 상대로 이긴 '칼레해전'을 꼽는다. "승리의 비결인 주철대포를 혁신할 수 있던 이유는 자원이 부족했던 '결핍' 때문"이며 "기술을 가진 유대인, 즉 '사람'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이에 따라 '돈'과 '성장'의 논리에 충실했던 기재부의 업무 방향도 '교육'과 '복지'를 충실히 뒷받침하는 쪽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지난 9년간 기재부는 예산 문제나 효율성 등을 내세워, 의무 보육 사업인 누리과정 예산을 삭감하거나 지자체의 복지 정책 운용에 번번히 제동을 걸어왔다.
하지만 사회보상체계와 거버넌스를 '킹핀'으로 지목한 수장이 조직을 이끌게 되면서, 각종 정책과 내부 분위기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