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청년들과 함께 하는 '만민공동회'를 진행하고 있는 방송인 김제동.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노제 때 들었던 생각은 지금, 아직은 울 수 없다."
지난 겨울부터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방송인 김제동은 시민들과 함께했다. 때로는 광화문 광장에서, 때로는 SNS에서 그는 맛이 깊은 이야기로 모두를 위로했다. 유명인들이 정치·사회 문제에 침묵해왔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김제동은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문제 등에 꾸준히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김제동은 지난 23일 서울 성동구 CGV 왕십리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 라이브톡에 참석해 노무현 대통령과 첫 인사를 나눌 당시의 비화를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 대신 '노무현 아저씨'가 익숙해 그렇게 말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아마 지금까지도 노무현 아저씨는 제가 누군지 모를 가능성이 높아요. 청와대에서 하는 행사였는데 그 때 초대가 됐거든요. 부인이신 권양숙 여사님이 '오늘은 재밌겠네. 김제동 온다니까'라고 했다고 하신 건 들었어요. 짜여진 동선을 제가 분명히 들었는데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제 쪽으로 걸어오시는 거예요. 당연히 제 뒤에 누가 서있겠다 싶어서 순간적으로 뒤를 봤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럼 저잖아요. 어떻게 인사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엄청 지나갔는데 척추가 빠지더라고요? 알아서 척추가 빠지는구나, 이게 내 것이 아니구나…. (웃음) 제가 또 권력에 한없이 비굴합니다. 제 프로그램 무언가를 잘 보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제가 하는 게 아니었어요. 다시 척추를 세우고 항의해볼까 하는데 말을 안 듣더라고요."
사실 김제동과 노무현 대통령의 인연은 그 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그가 아직 유명하지 않았던 시절, 김제동의 어머니와 노무현 대통령이 만난 적이 있었기 때문. 김제동은 아직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대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따뜻함을 잊지 않고 있었다.
"아직 제가 유명한 연예인이 아닐 때 가족들이 전부 '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됐어요. 어머니 설득에 출연하기로 하고, 저는 먼저 서울에 올라갔죠. 나중에 올라온 저희 가족들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더라고요. 그 때는 당선인이었어요. 어머니가 경호팀을 밀치고 들어가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냥 두시라 그래서 이야기를 했대요. 어머니가 '김제동 엄만데 내일 우리 가족이 아침마당에 출연한다. 손가락 걸고 꼭 보신다고 약속을 해달라'고 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뭐라고 답했냐면, '저하고 아내가 거기 나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 아침마당 동기가 됐네요. 내일 꼭 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옆에 있는 참모에게 '내일 아침에 나 좀 깨워달라'고 말까지 했다더라고요. 그렇게 약속을 받고 어머니가 나왔다가 다시 뚫고 들어갔어요. '나는 정치인을 잘 못 믿는다. 다시 한 번 손가락을 걸어라'. 그랬더니 손가락 걸고 다시 약속을 했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게 설움받던 촌동네 과부였던 우리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따뜻하게 말해준 공무원이었어요."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생을 마감한 뒤 치러진 '노제'는 '아저씨'였던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김제동은 왜 스스로 노제의 사회를 맡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는 아프고 괴로웠지만 지울 수 없는 경험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스크린에 나타났을 때 생각이 납니다. 2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속을 삭이는, 비명 같은 야유를 보냈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노제를 부탁할 때 제게 요청 사항이 있었습니다. 선동적이지 않고, 절제된 감정이면 좋겠다. 제가 그랬어요. 이거대로 하지 않을 건데, 그걸 허락해주시면 하겠다고요. 땡볕에 앉아 계신 분들을 보는데 그냥 지금은 울 수 없다, 지금 여기서는 울 수 없다. 그런 감정이었어요. 노제 사회자가 저라고 발표된 후에 좌우 양쪽에서 모두 욕을 먹었거든요. 너무 괴로워서 산에 올라가서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죠.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물어봤고. 중턱을 넘어가는데 그 분이 돌아가셨을 때 생각만 나는 거예요. 그리고 동시에 뭔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죠. 부끄럽고, 참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