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 스틸컷.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관동대지진과 아나키스트 청년 그리고 페미니즘. 이준익 감독이 배우 이제훈·최희서와 함께 독특한 실화 영화에 도전한다. '사도'와 '동주'에 이어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이번에도 제목은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두 글자다. '박열'은 제목 그대로 무분별한 조선인 학살이 이뤄졌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의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 독립운동가였던 박열(이제훈 분)과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활약상을 그렸다.
이준익 감독은 윤동주 시인을 영화화한 '동주'에 이어 또 한 번 항일 운동의 역사를 담은 영화에 도전하는 셈이다. 그는 무슨 이유로 연이어 이 같은 선택을 한 것일까.
이준익 감독은 25일 서울 동대문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윤동주 시인은 많은 분들이 아는데 박열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 나도 20년 전 '아나키스트'라는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몰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당시 이준익 감독이 발견한 이름없는 한 독립운동가가 바로 '박열'이었다. '아나키스트'를 촬영할 당시만 해도 이준익 감독에게 '일제강점기'는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작용했다. 그래서 그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고.
이 감독은 "박열은 식민지 주체인 일본 동경에서 몸을 던졌던 인물이다. 이봉창 역시 그랬다. 사형 선고까지 각오했던 22살 청년의 기개와 용기 그리고 그 시선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면서 "우리가 그들의 삶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시대를 정면 돌파했던 사람들을 잊고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이제훈에게 '박열' 또한 쉬운 선택은 아니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인물이라도 부담감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이제훈은 "이준익 감독님 시나리오라는 것만으로도 떨렸다. 감독님 작품을 계속 봐왔고, 그 세계 안에서 연기를 펼쳐 본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쉬운 캐릭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이준익 감독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님 덕분에 나를 내던지고 영화에 뛰어들 수 있었다. 거의 정신적 지주였다"고 고백했다.
캐릭터 표현을 위해서라면 자발적 금식은 물론이고, 곤봉 세례, 강제 음식물 주입 등 고문 장면을 모두 실제로 연기하는 투혼을 펼쳤다. '박열'이라는 인물의 신념과 사상을 온전히 체화해야 된다는 고집에서였다.
그는 "박열이 감옥에서 단식 투쟁으로 말라가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밥차를 두고도 먹지 않아 군침을 흘렸던 게 기억난다"며 "실존 인물을 연기하니 절대 거짓으로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외면은 물론이고 내면까지 '박열' 그 자체가 되지 않으면 울림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혹독한 촬영을 자처한 이유를 설명했다.
결국 이제훈은 고문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실신하기도 했다. 고생으로 점철된 여정의 마지막 날에는 스태프들을 향한 감사함에 눈물을 떨궜다. '박열'은 이제훈이 모든 것을 쏟은 동시에 많은 것을 준 영화였다.
이제훈은 "과연 나는 세상과 역사 앞에서 그만큼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현실에 안주하고 비겁하게 살아오지는 않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후미코 역의 배우 최희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후미코는 시대에 저항하는 또 한 명의 '인간'이었다. 최희서는 '동주'에 이어 이번에 또 한 번 이준익 감독의 작품에 함께하게 됐다. 그는 당시 윤동주의 시집 출간을 도왔던 일본인 여성 쿠미로 분해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최희서는 "가네코 후미코는 여성이지만 여성성으로 규정되지 않는 인물이다. 한 명의
자유인으로 존재하기 위해 노력했다. 진취적이고 멋있는 캐릭터"라고 소개했다.
이준익 감독은 역사 속 후미코에게서 '페미니스트'의 면모를 볼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는 "요즘 페미니즘이 많이 화두가 되고 있다. 서양 여성 못지 않게 동양 여성들 중에서도 근대적인 여성들이 많았을텐데 우리는 그런 점을 잘 배우지 않고 있다. 23살에 자살한 후미코의 자서전이나 기록을 보면 엄청난 페미니스트"라고 영화에 그려질
후미코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볼거리' 보다는 '생각할 거리'를 강조하기 위해 일부러 제작비까지 줄였다. '박열'을 통해 이준익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명확히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 감독은 "실존 인물을 대하는 자세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영화적인 오락성을 잘못 덧붙였다가는 예의가 아닐 수 있다. 제작비는 많이 쓰면 안된다고 생각해서 적절한 비용으로 촬영했다"면서 "일본은 피해자 코스프레만 90년 째 하고 있다. 역사 의식을 가르치려는 '꼰대' 발언이라 죄송하지만 역사를 실제로 느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열'은 오는 6월 28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