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 국면에서 다 비주류였잖아요. 그런 점이 뼈아프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 이후 촛불이 들불처럼 번졌다. 그 결과, 제19대 대통령 선거는 7개월이나 앞당겨진 지난 5월 9일 치러졌다. 조기 대선 불씨를 지폈던 국정농단 사태는 언론사들의 희비를 가르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주최로 '2017년 19대 대선보도 모니터링 좌담회'가 열렸다. 언론노조 산하 KBS본부(새노조), MBC본부, SBS본부, 연합뉴스지부가 참석해 자사의 대선보도 문제점을 짚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때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비주류'라는 표현으로 KBS, MBC, SBS, 연합뉴스가 처한 현실을 지적했다. 인지도와 영향력 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주류언론'이 어째서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이 높은 빅 이벤트였던 '대선'에선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했을까.
◇ 북풍 보도, 자사이기주의, 여론조사 왜곡, 세월호 보도
25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주최로 '2017년 19대 대선보도 모니터링 좌담회'가 열렸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정수영 간사는 KBS 대선보도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북풍'을 꼽았다. 이번 대선이 흔치 않은 보궐 대선인 만큼 박근혜 탄핵을 바라는 목소리가 높았던 연초에 나간 보도도 대선보도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전제를 먼저 언급했다.
2월 14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KBS는 MBC·SBS에 비해 월등히 많은 '북한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는 설명이다.
정 간사는 "2월 16일부터 22일까지 8일 동안 KBS는 단 이틀 빼고 매일 같이 10꼭지 이상 북한 아이템으로 채웠다. 이는 타사의 2~3배 분량"이라며 "(북풍 보도 때문에) 마땅히 다뤄야 할 의제를 안 다룬다는 것이 문제다. 박근혜 탄핵, 특검 소식 등도 국민들에게 투명하고 적절하게 전달되어야 했는데 북한 보도로 눈 가리는 효과를 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MBC 대선보도의 문제점은 도드라진 '자사이기주의'로 수렴된다. MBC본부 남상호 민실위 간사는 '뉴스데스크'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전파 사유화' 사례를 3가지 소개했다. MBC 노조탄압 문제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루려고 했을 때, 문재인 후보가 방송장악을 거론했을 때, 언론노조가 '언론장악 부역자'를 발표했을 때 등이다.
남 간사는 "전파라는 공공재를 MBC에 있는 극소수 구성원을 위해 썼다는 것이 굉장히 문제"라며 "현 경영진은 특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자기 안위가 불안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주요 뉴스들이 특정 후보 낙선을 위해 동원된 측면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삼성의 정유라 말값 지원 등 특종을 내는 등 KBS, MBC와 차별화된 보도를 꾸준히 하던 SBS는 대선 일주일 전 나간 리포트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세월호 인양을 차기 정권과 거래했다는 뉘앙스의 보도에서 가장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 후보를 언급한 것이 화근이 됐다. 주장은 파괴력이 있었으나 뒷받침할 근거가 빈약한 보도였다.
SBS본부 심영구 공정방송실천위원장은 "정책 검증 보도 비중을 늘리는 등 노력해 대선미디어감시연대 선정 '최악의 대선보도'를 피해갔는데 5월 2일 1분 33초짜리 기사 한 건이 최악의 보도로 선정됐고 대선 막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했다.
심 위원장은 "관련자 징계, 보직해임이 이뤄졌고 SBS 신뢰도도 크게 추락하면서 조직원들에게 큰 상처가 됐고 국민들에게도 실망을 안겼다"며 "국정농단 사태 후 6~7개월 동안 노력했던 게 한번에 무너지는 걸 경험하며 기본을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되돌아보았다. 다른 언론사에도 반면교사할 수 있는 사례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는 KBS와 공동으로 발표한 여론조사가 문제가 됐다. 대선 한 달을 앞둔 지난달 9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공직선거법 및 선거여론조사 기준을 위반한 탓이다. 실시기관인 코리아리서치는 이례적으로 1500만 원의 높은 과태료를 물어야 했다.
이 여론조사 결과의 파장이 컸던 이유는 그간의 결과와 달랐기 때문이다. 늘 선두를 지키고 있던 문재인 후보를 안철수 후보가 제치는 결과가, 대선 한 달을 앞두고 나온 것이다.
연합뉴스지부 임화섭 민실위원은 "빨리 조사결과를 내야 하는 환경에서는 할당량 채우기에만 집중한다. 빠른 조사를 위해 올바르지 않은 샘플링 절차를 거치려고 하는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며 "언론과 여론조사기관이 각별히 유념해서 이런 일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고 밝혔다.
◇ 문제와 잘못은 알았는데, 해결책 있을까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그렇다면 이런 '문제적 보도'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 참석자들은 '적절한 인사'와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장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새노조 정 간사는 "그날의 메인뉴스를 어떻게 채우느냐는 중요한 문제고, 치열한 토론과 의견 교환을 통해 결정되는 게 마땅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통합뉴스룸국장이 뉴스의 편집, 분량, 시각에서 전권을 휘두르고 있다. 형식적인 편집회의가 있으나 실질적 논의는 없고 지시와 받아쓰기만 있다"고 질타했다.
이어, "결국 인사가 만사다. 권력, 자본과 거리를 두고 감시하는 것이 저널리즘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사장으로, 이런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간부가 와야 한다"며 "KBS는 취재와 보도 실무자들 (자율성을) 보호하는 제도가 있음에도 깡그리 무시당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현 체제를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MBC본부 남 간사는 "문제가 되는 보도들은 편집회의에서도 자세히 논의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 편"이라며 "편집회의 내에서도 보도국장, 담당 부장, 아이템 지시를 받은 해당 기자만 (내용을) 알고, 이는 보도본부장, 사장의 묵인 혹은 지시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구조라고 판단한다"고 전했다.
그는 "(보도 문제가 생겼을 시) 공적으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제도의 부활, 일방향의 아이템 지시가 아닌 치열하게 아이템 논쟁할 수 있는 문화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SBS본부 심 위원장은 문제 상황에 대한 '지속적인 항의'와 '요구'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세월호 거래 보도'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관계자들이 비교적 빠른 처분을 받은 것 등은 결국 노조를 포함한 내부의 감시와 문제제기의 영향이었다는 설명이다.
연합뉴스지부 임 위원은 편집권 보장 장치였던 '편집총국장제' 정상화, 사장 및 이사회 임기 연장 등을 제안했다.
홍 연구원은 "SBS는 세월호 보도가 방통심의위원회에서 법정제재를 받아서 (진상조사) 보고서를 낼 상황이긴 했지만, 각 조직 내에서 이 정도 수준의 진상보고 결과가 나와야 본격적인 토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 나은 '선거보도'를 위한 제언도 나왔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권순택 활동가는 "촛불집회를 통해 마련된 보궐 대선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었는데 여기에 언론사가 좀 더 주목했어야 한다"며 △정치권에서의 이슈를 따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원하는 이슈를 충분히 다룰 것 △여론조사를 공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고민할 것 △정책 평가의 기준을 보다 세밀하게 구성할 것 등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