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를 입력하세요.
교회의 다양한 활동과 사회적 역할을 공유하는 제 36회 독일 개신교회의날(Deutscher Evangelischer Kirchentag)이 지난 24일 독일개신교연맹(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 EKD) 주최로 베를린에서 개막했다.
올해 주제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You see me)’. 난민, 경제, 세계화 등의 위기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돌보심을 바라는 고백이다. 또 나를 살피고 보호하는 하나님처럼 우리 이웃을 대해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EKD 소속인 수잔 엘리케 목사는 “우리는 서로 관계를 맺으며 다른 사람들의 문제에 개입할 수 있고, 서로 존중하며 이 세상을 위해 함께 활동할 수 있다”며 교회의날 주제를 설명했다.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붙이면서 종교개혁의 불을 붙인 비텐베르크에서도 종교개혁500주년기념행사와 함께 교회의날이 진행됐다. 오는 28일에는 교회의날 모든 참가자들이 비텐베르크에 모여 성만찬을 포함한 폐회예배를 드린다.
◇ 한인교회 부스 설치.. 세월호 참사,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알려
개막 이튿날인 지난 25일, 주행사장인 박람회장 메세 베를린(Messe Berlin)을 찾았다. 행사장 일대는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로 북적였다.
올해는 한국 교회와 한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담임 조성호 목사)가 마련한 부스에서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참가해 세계인들에게 세월호 진실규명과 일본군성노예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한 연대활동을 요청했다.
베를린기독교한인교회의 초청으로 교회의날에 온 세월호 가족 이지성씨(416기억저장소 소장, 도언 엄마)와 김순길씨(416기억저장소 운영위원. 윤희 엄마)는 416기억저장소를 소개하며 서울에서 가져온 세월호 추모 팔찌와 리본 등을 외국인들에게 나눠줬다.
김순길씨는 “케냐에서 온 청년들이 저희 이야기를 다 듣더니 힘내라고 말하면서 안아주며 격려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안 좋은 말을 하고 가는 사람도 많은데, 여기서는 직접 찾아와서 설명도 듣고 기꺼이 팔찌도 하고 간다”며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를 전했다.
아이들의 유품과 진실규명을 위해 싸운 기록물, 국민들이 함께 해준 추모글 등을 모아 416 기억저장소에 보관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김순길씨는 “독일에도 우리 활동을 적극 알리고 지금까지 함께 했듯이 공감과 연대를 지속해주길” 독일 교민들과 현지인들에게 당부했다.
세월호 가족들은 교회의날 이후 뮌헨 등 독일의 다른 도시들을 방문해 한인들과의 연대와 지원을 요청할 예정이다.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도 여든이 넘은 노구를 이끌고 교회의날에 참석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길원옥 할머니는 지난 24일 주독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책임있는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1284차 수요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 25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교회의날 한인교회 부스를 찾은 길원옥 할머니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윤미향 대표.
건강이 좋지 않은 길원옥 할머니는 “힘들긴 하지만 괜찮다”면서, “성노예제 피해자들의 문제를 빨리 해결하기 위해 독일과 세계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가톨릭이 주관한 지난해에도 교회의날에 참석해 서명운동을 벌였다. 올해는 교회의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 권리회복과 재일동포의 권리문제를 논하고, 특히 IS에 의한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해 전쟁의 참상을 알릴 예정이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인명진 원로목사(갈릴리교회)와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이은선 교수(세종대)와 이정배 전 교수(감신대) 등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개혁과제, 에큐메니칼 운동의 현주소, 한국적상황의 기독교 등을 주제로 발제와 토론을 이어간다.
◇ 연대, 소통의 가능성 보여준 교회의날
독일 베를린 시내에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옆에 마련된 교회의날 행사장.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는 2차대전 당시 폭격으로 파괴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의날 행사는 1949년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되던 해에 평신도운동으로 시작했던 교회일치운동이다.
이번 교회의날에는 성경공부를 비롯해 예배와 각종 세미나, 토론 등 2천여 가지의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특히 '가능성의 시장(Market of Opportunities)'으로 불리는 섹션에는 교회, 개신교 단체 등이 마련한 730여 곳의 부스가 설치돼 각 단체의 활동과 사업을 소개했다.
가능성의 시장은 교회연합, 이주/난민, 환경, 청소년 등 다양한 주제를 담은 단체들의 활동을 전시함으로써 그야말로 연대와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정대협 윤미향 대표는 “독일교회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연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면서 ”여전히 계속되는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의 인권과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 전쟁을 물리치고 성폭력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걸 많은 이들과 공유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작은교회 운동을 하고 있는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는 “독일 교회의날은 경제, 난민, 기후 등 전지구적 문제에 대해 교회의 책임을 토론하고 나누는 자리”라면서 “한국교회도 교회만을 위한 행사가 아니라 사회적, 세계적 어려움의 문제를 공유하며 함께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 교회의날 찾아온 오바마 보기위해 수 만 명 몰려
교회의날을 맞아 베를린은 특별한 손님을 맞이했다. 지난 25일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베를린을 방문했다.
브란덴부르크 문 광장에서 열린 오바마 전 대통령과 독일 메르켈 수상의 토론회에는 교회의날 참가자들을 비롯해 수 만 명이 광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오바마의 연설을 듣기 위해 왔다는 한 독일인은 ‘오바마 케어’를 언급하면서 가난한 미국인들이 병원에 갈 수 있게 한 것은 잘 한 것이라고 칭찬했다.
광장 주변으로는 모든 교통이 통제됐다. 두 나라 정상급의 만남이기도 하지만 며칠 전 영국 테러의 우려 때문인지 광장으로 연결되는 공원 입구에서부터 보안이 강화됐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는 이 날 민주주의와 시민참여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고, 관중들은 토론회 중간중간에도 박수를 치며 발언들을 지지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장벽 뒤에 숨지 말고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