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기간 노무현 정부시절의 '호남소외론'에 시달렸던 문 대통령이 첫 총리로 호남출신을 지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야권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이 후보자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호남정서의 가장 예민한 부분은 지금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위장전입도 아니고 이 후보자가 동아일보 기자시절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지목되고 있는 전두환에 대해 '이 나라의 위대한 영도자'라고 칭송하는 기사를 썼다는 내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후보자가 기자시절 썼던 관련 기사 원본을 확인해보면 '사실이 아니다'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전남도청 한 간부는 "이는 가짜뉴스이고 호남총리 지명을 흔들려는 악의적인 왜곡이다"고 단언했다.
이 가짜뉴스가 최근 며칠사이 SNS를 통해 급격하게 유포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 동의에 관한 인사청문회에서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이 "이 후보자가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시절 인용한 것이긴 하지만 '위대한 영도자'라는 표현도 자주 나온다"고 지적하면서 발단이 되었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쓴 기사 중 '위대한 영도자'라는 표현이 나오는 기사는 1983년 1월26일 동아일보 2면에 실린 가십성 기사인 '여록' "'이 지방은 민정의 뿌리'… 경남출신 의원들 전 대통령 선영 참배" 4꼭지 가십 하나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 후보자는 당시 1983년 1월25일 경남 합천에서 열린 민정당 의령·함안·합천 지구당 개편대회 격려사를 한 권익현 사무총장이 "이 나라의 위대한 영도자이신 우리당 총재(전두환) 출생지인 이곳에서 평생 동지들이 모여 정기위원회(개편대회)를 갖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 한다"고 말한 발언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사진=자료사진)
이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저로서는 (권 사무총장의) 과도한 칭찬에 대한 저항감 같은 게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권 사무총장이 하신 말씀을 (기사에) 인용보도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동아일보 1981년 2월 5일자 전두환 대통령 방미기사 역시 언론인 시각으로 봤을때 팩트의 전달 외에 자의적으로 전두환을 찬양하거나 우호적으로 쓴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즉 이 후보자가 기자시절 썼던 기사 중 현재까지 드러난 내용만으로는 전두환을 찬양했다는 내용은 가짜뉴스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기사는 "이낙연 후보자가 기자시절 전두환을 찬양했다는 기사를 썼다"로 덧씌워져 순식간에 SNS를 타고 의심의 여지없이 진실처럼 전파되고 있다.
특히 이낙연 후보자에 대한 총리 인준을 놓고 여야가 대치를 이어가면서 호남에서는 이 후보자의 과거 행적에 대한 가짜뉴스가 유포되면서 호남정서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호남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직무수행 지지도가 90%에 육박하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여야가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을 놓고 격돌하면서 호남총리 인선여부를 초조감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역시 위장전입 사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역대정권의 초기처럼 총리지명부터 인사 징크스를 깨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발목을 잡고 있는 위장전입 문제는 이미 언론을 통해 드러나듯 이 후보자 부인이 1989년 3월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강남구 논현동으로 전입신고를 했다가 같은 해 12월 다시 평창동으로 주소를 옮겼다.
이 후보자는 "부인이 당시 강남교육청 소속 학교로 배정받기 위해서 위장전입을 했지만 포기했다"고 답변했다.
이처럼 부동산 투기나 자녀취학을 위한 위장전입도 아니고 부인이 혼자 시도하다가 포기해 실행에 옮겨지지도 않아 결과적으로 이익도 없었던 30여 년 전 사안을 가지고 야당이 총리 인준을 문제 삼고 있지만 국민여론 조사에서는 인준 찬성이 70%를 넘고 있다.
실제로 정치인이나 공무원뿐만 아니라 농어촌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자녀교육을 위해 인근 도시로 주민등록을 옮겨 놓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그 논리로 보면 이들도 위장전입에 해당한다.
일부 언론에서 진실을 호도한 채 선정적인 내용으로 이를 보도하고 대중은 말초적인 감성으로 사건을 얘기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희생양'이 생긴다. 이것이 중세의 마녀사냥과 무엇이 다른가.
기자는 지난 2003년 5월호 월간중앙에 '덕보자는게 아녀, 본전만이라도 하게 해야제'라는 제목으로 '호남 소외론의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장문의 기고를 게재한바 있다.
당시 월간중앙 기고문을 통해 썼듯이 노무현 정부는 당시 대선에서 95%라는 호남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으나 취임 2개월간 인사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호남민심이 들 끊었던 것은 대북송금 특검과 검찰인사였다. DJ정권 이전 40여 년 동안 받아왔던 부당한 지역차별을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로 몰표를 주었는데 청와대 비서실 인선은 13명의 수석 또는 보좌관급 중 호남출신은 정찬용 인사보좌관이 유일하고 영남출신은 6명이었다.
첫 내각은 호남 4명, 영남출신 8명이었으며 검찰인사에서는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검찰고위 간부 전체 41명 중 호남은 9명 영남은 18명이었다. 여기에 좌천당한 10명중 5명이 호남출신으로 드러나면서 '호남 소외론'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당시 옷을 벗은 한 검사장은 고별사에서 "검사 임관 후 30년 검찰생활 동안 호남출신이라는 천형과도 같은 멍에를 안고 살았다"며 "DJ 정부에서는 호남출신이라는 이유로 역차별을 당했다"고 해 오랫동안 회자되었다.
또 4월초 단행한 행자부 인사에서도 주요 인사 대상자 출신지는 영남이 11명인데 반해 호남은 전북 1명이 유일해 호남창구가 없다는 푸념이 나왔고 국세청 인사에서도 호남출신 이용섭 국세청장이 단행한 4월 인사에서 호남쇠락 영남부상이었다. 사표를 낸 1, 2급 6명 중 5명이 호남이었다.
지난 대선기간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괴롭힌 것은 이 같은 인사차별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상 호남총리를 지명하니 국민의당부터 발목을 잡는 모양새가 되면서 호남사람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전남도청의 또 다른 한 간부도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1980년 5월 광주의 아픈 기억을 가슴에 묻고 사는 호남 사람들에게 이낙연 후보자를 전두환 찬양자로 둔갑시켜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너무 억울할 일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