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정'하고 '차별'이 없어야 할 학교가 이상하다. 학교에서 일하는 수 십여 개의 직종이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절반의 임금, 차별, 반말과 무시 등의 대우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재원 마련과 역차별 해소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은 것이 현실. 학교 내 다양한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CBS가 짚어봤다. [편집자 주]
(사진=자료사진)
"노예도 이렇게 일하진 않을 거예요. 징역살이하는 기분이에요."대전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당직 기사'로 일하는 A(74)씨는 '당직 기사'가 처한 현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직 기사는 방과후 학교에 출근해 학교 시설을 돌보는 업무를 수행하는 용역 근로자로 문단속, 순찰 등이 주요 임무다.
A씨는 주중에는 오후 5시 출근해서 다음 날 오전 8시에 퇴근하지만, 금요일엔 출근하면 월요일 아침 8시까지 꼼짝없이 학교에서 보내야 한다.
과거 명절에 7박 8일 동안 바깥에 나가지 못한 채 학교 안에서 스스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A씨는 "노예도 밥은 먹이면서 일을 시킬 것"이라며 "명절마다 인사도 못 드리니 조상님 뵐 면목도 없고 귀여운 손주 녀석들 얼굴도 까먹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당직 기사들 대부분이 70대 고령인데 명절 동안 홀로 근무하다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를 일"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일주일간 123시간 정도이며 한 달로 계산하면 약 490시간에 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임금으로 적용되는 '근로 인정시간'은 평일 15시간 중 4~5시간, 주말과 공휴일 24시간 중 6~7시간으로 주중 근로 인정시간은 123시간 중 34시간 정도라고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전지부는 전했다. 나머지 시간은 인력경비 및 휴게시간으로 근로 인정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현장에선 이 시간에도 학교 밖을 나서면 안 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비상 전화나 외부 침입에 대비해 잠잘 때도 신경을 곤두 세워야 한다고 A씨는 전했다.
한 달 중 A씨가 쉴 수 있는 날은 단 2번. A씨는 "이마저도 대리인을 세워야 한다"며 "대리인이 일당을 받는 대신 나는 '무급'으로 쉬게 되니 결국 한달에 단 이틀도 쉴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월급도 일한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A씨 기본급은 최저시급 6,470원이 적용된다. 매월 연차수당 4만 8000원을 합쳐도 한 달 동안 학교에 490여 시간 머무는 A씨가 가져가는 돈은 100만 원이 채 안 된다.
(사진=자료사진)
대전 지역 한 중학교에서 일했던 70대 B씨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게다가 B씨는 '당직 기사' 업무의 고충에 대해 행정실장과 교장에게 면담을 요청한 것이 화근이 돼 해고 통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B씨는 "교장과 면담을 한 뒤 내가 소속된 용역 회사 직원들이 학교에 방문했다"며 "이후 같은 회사에 나머지 당직 기사들과 달리 나만 1년 계약에서 6개월 계약으로 바뀌었고, 결국 해지 통보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1월 교육청은 학교 당직근로자 처우 개선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2017학년도 학교당직근로자 처우 개선 계획'을 내놨다.
근로 인정시간 확대, 3일 이상 장기간의 휴일 근무 시 2교대 근무 또는 대체 근로 조치, 자유로운 휴게 시간 보장, 고유업무 이외의 업무지시 금지 등의 내용이다.
하지만 당직 기사들은 여전히 학교에선 처우 개선을 위한 현실적인 노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남들에겐 10월 초 추석 전후로 다가오는 열흘짜리 '황금연휴'지만, 이들에겐 홀로 학교에서 보내야 할 '두려운' 열흘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