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정'하고 '차별'이 없어야 할 학교가 이상하다.학교에서 일하는 수 십여 개의 직종이 '정규직'과 같거나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유로 절반의 임금, 차별, 반말과 무시 등의 대우를 받고 있다.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제로화’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재원 마련과 역차별 해소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은 것이 현실.학교 내 다양한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CBS가 짚어봤다.<편집자주>편집자주>
(자료사진)
"00학교 가니까 다과를 꽃으로 장식했더라. 이런 걸 하면 얼마나 고급스럽고 좋을까."대전 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무행정사 A씨는 교장 선생님의 한 마디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내 A씨는 학교의 장미꽃을 따다가 교무실을 찾는 손님들의 다과 접시를 꾸미기 시작했다.
여러 학교를 돌며 근무했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종합 감사'나 '장학지도'를 위한 외부 손님이 찾아올 때면 교장 선생님의 다과 요구는 더 심해졌다.
A씨는 "제 업무는 틈틈이 해야 했고, 미리 장을 봐 손님이 오기 전날부터 곶감에 호두를 넣어 곶감 호두말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바늘로 잣에 구멍을 뚫어 솔잎을 넣을 때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솔잎 역시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가 산에서 구해온 것이었다.
교무행정사는 교사의 행정업무 경감을 위해 교무실과 행정실에 배치된 노동자다.
업무 분담상 A씨는 기록물 관리와 공문 접수 및 배부, 물품 관리, 민원 업무, 교과서 주문·배부, 학생 전·출입 등을 맡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학교장이 지시하는 업무'라는 명목 아래 행정업무 외에 접대와 떡 셔틀(배달) 등 '잔 일'이 많다고 털어놨다.
A씨 역시 기본적인 업무 외에 교장실에 모닝커피를 배달하는 것으로 일과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학교의 교사가 결혼 답례 떡을 준비하면 돌리는 것 역시 A씨의 일이다.
그뿐만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시설 보조 업무'까지 겸하고 있다고 A씨는 전했다. 학교 내 시설을 관리하는 주무관이 따로 있지만, 시설관리 주무관이 부재중이거나 급한 일은 늘 A씨 몫이다.
A씨는 "학교 형광등을 사 오는 것부터 고장 난 청소기 고치기, 전화기 선 교체 등 온갖 잡일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지난 2014년 경기도교육청은 교육청과 직속 기관·단위 학교에 '접대 금지' 알림 공문을 보낸 바 있다.
공문에는 △보고회, 협의회, 각종 회의 및 행사 시 커피·차 등 참여자 셀프서비스 실행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내빈에게 차 접대 생략 △회의 주관자와 상급자의 자발적인 직접 차 접대 문화 조성 등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수시 모니터링을 통해 기관 평가와 성과급에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접대 금지' 문화가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5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 학교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5%가 여전히 "차 심부름을 한다"고 답했다.
비정규직 사무직군을 중심으로 다과 심부름을 비롯한 광범위한 잡무를 관행처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