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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스릴러 '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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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간도 예측할 수 없는 기묘한 스릴러 '엘르'

    [노컷 리뷰]

    오는 15일 개봉하는 영화 '엘르' (사진=소니 픽쳐스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냉혹하고 우아한 그녀의 복수', '감성 스릴러'라는 소개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영화 '엘르'(감독 폴 버호벤)는 '미셸'(이자벨 위페르)이라는 한 여성을 깊이있게 파고드는 영화에 가깝다. 그의 복수는 이야기 전개의 일부일 뿐, 영화는 내내 미셸을 좇아 그의 말과 행동을 비춘다.

    미셸은 이웃 주민 27명과 동물을 죽인 아버지와 한참 어린 애인과 결혼을 선언하는 철없는 어머니, 폭력 때문에 이혼한 남편이 있고 여자친구의 등쌀에 시달리는 무능한 아들을 둔 중년의 여성이다.

    게임회사 CEO로 사회적 명성과 평판이 좋고 언제나 세련됨과 고상함을 잃지 않지만, 온전치 못한 가족 구성과 환경의 영향인지 비위가 거슬리면 굉장히 날카로워지는 면모를 지녔다.

    어느 날 미셸은 복면을 쓴 침입자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후에도 협박성 음란 문자를 받는다. 회사의 신작 게임에서는 괴물의 습격을 받아 흡사 강간당하는 것처럼 묘사된 게임 캐릭터의 얼굴에 합성되는 수모를 겪기도 한다. 일련의 사건들을 일으킨 범인을 미셸 스스로 찾아나간다는 것이 영화의 얼개다.

    하지만 이 얼개는 영화를 이해하거나 음미하는 데 핵심이 되는 부분은 아니다. 동일범의 소행일 줄 알았던 일은 각각의 범인이 있었고, 그 사실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이 아니라 그보다 일찍 알려진다. '그래서 도대체 범인이 누군데'라는 질문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는 의미다.

    오히려 영화에서 가장 호기심이 이는 존재는 주인공인 미셸 자신이다. 미셸은 무척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비밀을 만드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여기서의 비밀은 대개 섹슈얼한 무드를 형성하는 것이다.

    가장 친한 친구 안나(앤 콘시니)의 남편과 6~8개월이나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가 하면, 괴한 습격을 염려하며 집에 데려다 준 패트릭(로랑 라피트)에게 호감을 느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유혹한다. '할 뻔 한 적'이 있었다는 안나의 말대로라면 미셸은 사랑을 나누는 상대를 굳이 이성으로 제한하지도 않는다.

    미셸은 여간 해서는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높은 도덕률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일관되지도 않다.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는 태연하게 독설을 내뱉고, 모욕적인 언사를 들어도 개의치 않는다.

    이제 아무 관계도 아닌 전남편의 새로운 애인을 질투하거나, 호감을 가진 남성에게 끔찍한 아버지의 살인 이야기를 자세히 늘어놓고, 자신을 강간했던 남성을 위급한 상황에 불러내며, 변태적 성욕을 지닌 사람의 장단을 맞춰준다. 게임 화면으로 망신을 준 당사자에게는 성기를 보여 달라는 엉뚱한 제안을 하기도 한다.

    '엘르'에서 주인공 미셸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 (사진=소니 픽쳐스 제공)

     

    '엘르'를 보면서 내내 느낀 감정은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뭐지?'였다. 영화가 끝나고도 영 개운치 않았다. 범인은 잡혔고 죽음을 맞았지만 어차피 강간 사건은 하나의 소재였을 뿐 이 영화의 중심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얼기설기해서 이런 기분을 느꼈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엘르'가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을 한 영화여서 더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여성이고, 주인공의 말과 행동에 집중해 한 캐릭터의 여러 가지 면을 고루 보여주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더구나 그 여성이 사회적으로 권장될 만한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신선하며 낯설다.

    특히 비교대상을 남성 서사가 주를 이루고 희생하는 어머니, 요부, 악녀 등 몹시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만이 존재하는 한국영화로 두었을 경우 그 차이는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여성 주인공이 당하는 범죄가 꼭 '강간'이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이 함께하는 '중범죄'이기에 극적 분위기 연출을 위해 쓸 수는 있겠다 하더라도 식상한 게 사실이다.

    사회적 평판이 높고 돈도 안정적으로 버는 게임 회사 대표도 약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 아무리 호신기구를 사 놓아도 범죄를 100% 피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강조해 '실재하고 있는 강간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려 했다면 그 전략은 성공하고도 남은 것 같지만.

    2017 골든글로브 시상식 여우주연상, 외국어영화상 수상. 6월 1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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