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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분 늦었다고 해고" 정규직 '0' 악마의 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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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 늦었다고 해고" 정규직 '0' 악마의 공장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③] 생산라인 전체가 비정규직…최악 고용형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실행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만에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CBS노컷뉴스는 5회에 걸쳐 외주화로 얼룩진 공공부문부터 악마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민간부문까지 철저하게 은폐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① 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정규직"
    ② '왕궁 수문장'도 '철도 지킴이'도 전부 비정규직
    ③ "2분 늦었다고 해고" 정규직 '0' 악마의 공장
    ④ 숨은 '사용자', 은폐된 '비정규직'…"실태부터 드러내라"
    ⑤ "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아침 조회시간에 2분 늦었다는 이유로 바로 짤린 직원도 있다. 원청 직원이 '뭐하는 XX냐?'며 그 자리에서 나가라고 했다"
    "원청 정규직 직원이 작업대 앞에 책상을 놓고 감시를 한다. 작업 중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참아야 했고, 물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시킨 적도 없는 업무를 왜 안 했냐고 난리를 치더라. 'XX, 너 내 말이 X같냐?'이런 욕이 일상적인데, 우리도 다 아이 아빠들이다. 욕 들을 때마다 회의감이 들었다"

    노동권이 극심하게 탄압 받던 70~80년대 에피소드처럼 보이지만, 2017년 첨단 기술을 이용해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일들이다. 만도사와 헬라사가 50%씩 출자해 세운 인천 송도의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만도헬라) 공장이다.

    여기서 노동자들이 고용안정성은 물론, 생리현상 같은 최소한의 존엄성도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이 공장 생산라인 전체를 100% 비정규직이 맡고 있기 때문이다. 사내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345명이 생산 현장에서 북적일 때, 관리·감독 명목으로 이들에게 장시간 근무와 가혹한 노동 조건을 강요하는 정규직은 30명뿐이다. 비정규직 활동가들 사이에서 '악마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정규직 제로(0명) 공장의 형태다.

    ◇ 생산라인 비정규직으로만…가혹한 노동환경 당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송도공장 (사진=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홈페이지)

     

    나쁜 고용 형태는 최악의 노동 환경으로 이어진다. 현장은 2주 단위 12시간 주야 맞교대로 돌아간다. 정해진 근무 시간 외에 3시간짜리 '특별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회사는 할당 인원이 다 채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특근 참여자 수를 조사하고, 특근을 빠지는 직원은 '관리사원'으로 찍어 특별 관리를 한다.

    관리사원이 되면 말 한마디에 해고를 당할 수도 있는 만큼, 하루에 12시간씩 일하고 한 달에 하루 이틀만 쉬는 것이 일상화돼 있다. 이렇게 일하고 손에 쥐는 한 달 임금은 300만원이 채 안 된다.

    만도헬라 비정규직지회 김경욱(37) 씨는 "회사가 말로는 인천 최고 연봉 수준이라 말하지만, 쉬지 않고 일했으니 다른 회사보다 많이 받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며 "실제로 쉴 만큼 쉬었으면 그렇게 받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회사 안에서 정규직은 지휘, 감독 업무만 하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 생산 업무를 도맡는 '악마의 공장'은 기아차 모닝공장,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으로 점점 늘고 있다.

    만도헬라의 경우 관리·감독은 '그나마' 정규직 업무지만, 현대모비스 화성공장의 경우는 아예 이 업무부터 하청으로 이뤄진다. 관리감독은 1차 하청이 하고, 생산은 2차 하청이 하는 구조다.

    ◇ 비용과 법적 책임 줄이기 위해 사용자 아닌 척

    원청이 '악마의 공장'을 만드는 이유는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을 양껏 부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지휘·감독에 따른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다. 즉 스스로가 사용자가 아닌 척 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주장하는 노동 3권의 요구를 외면하는 것은 물론 법적 책임도 회피하기 위한 꼼수다.

    앞서 대법원은 공장 안에 하청업체를 두고 자동차 생산조립 업무를 지휘감독하던 현대자동차에 대해, 비정규직들이 원청회사 설비에 투입돼 일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불법 파견이라고 결론내렸다. 보수적인 법원마저 제조업의 사내하청 실태에 제동을 걸고 나서자, 사기업들은 불법 요소를 하나라도 더 줄이기 위해 공장 전체를 아예 비정규직화하고 나선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런 공장에서 어렵게 노조가 조직돼 원청의 불법 행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원청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용자 흔적' 지우기다. 만도헬라 공장의 경우 지난 2월 노조가 출범하자 만도헬라 마크가 박혀있던 유니폼은 물론, 회사 주소의 직원 이메일, 사원증 등이 모두 없어졌다. 공장이 만도헬라의 지휘 아래 있다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정규직 제로 공장은 사기업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진화시킨 최신 모델인 만큼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는 한, 풀기 어려운 문제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송민정 연구원은 "원청이 하청에 모든 위험과 비용을 떠넘기는 정규직 '0'공장이 만연해 있지만, 하도급 정책이 나와도 사용자가 또 다른 회피 방법을 찾아내 해결이 어려운 사각지대"라고 지적하며 "정부가 나서 현재의 구조 전체를 손보는 개혁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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