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재앙에도 서민이라 무시" 당국 차별·안전불감증 성토
(사진=연합뉴스)
영국 런던에서 24층 아파트를 통째로 태운 불은 꺼졌지만 시민들의 분노가 이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구촌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런던에서 21세기에 일어난 사고로 믿기 어려운 참사인 데다가 알고도 당한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4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불이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원인으로 리모델링을 지목하고 있다.
불이 난 공공 임대주택 '그렌펠 타워'는 지금은 부도로 폐업한 업체가 1천만 파운드(약 143억원) 정도를 들여 2015년 재단장을 마쳤다.
전문가들은 그 때 외벽에 부착한 피복이 이번 화재에서 굴뚝 같은 역할을 해 불길이 고층으로 순식간에 번졌다고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피복 때문에 참사 위험이 있다는 민원이 꾸준히 제기됐으나 주택을 관리하는 자치구 당국이 이를 묵살해왔다는 사실이다.
수전이라고만 밝힌 입주자는 CNN방송 인터뷰에서 "주민들은 이런 사태가 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관리 당국은 아무것도 안했다"고 말했다.
현재 집에 있던 세 아이의 행방을 모르는 수전은 "건물이 재단장됐지만 입주자들은 불만이었다"며 "안전하지 않다는 말들을 했다"고 덧붙였다.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다른 입주자들도 "아파트에 닥칠 재앙이 시간문제라고 민원을 제기했으나 소귀에 경 읽기였다"고 입을 모았다.
신문은 건물 외벽에 있는 피복이 화재 때 위험하다는 경고가 일찌감치 1999년부터 제기됐고 영국 정부 고위관리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렌펠 타워를 관리하는 '켄싱턴-첼시 세입자운영조직'의 전 회장 레그 커벨은"이번 화재참사는 영국의 가장 큰 스캔들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커벨은 "피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며 "재앙이 닥칠 것으로 보고 의원들을 만나 우려를 전할 계획이었는데 사고가 났다"고 강조했다.
그렌펠 타워가 서민들이 사는 공공 임대주택이라서 무시를 당했다는 견해가 힘을 얻으면서 런던 시민들은 충격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근처에 사는 해리는 화재 때 플라스틱 피복이 건물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회상하며 울컥했다.
해리는 "싸니까 그런 걸 썼을 것"이라며 "당국은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신경을 안 쓴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피복은 독일이나 스칸디나비아 국가 같은 곳에서는 쓰지 않고 영국에서나 쓴다"며 "그런 나라에서는 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역에서 50년을 거주한 진 헤일리는 공공 임대주택에 살면 소외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한풀이를 꺼냈다.
헤일리는 "문이 부서졌다고 5년째 얘길 하는데도 고쳐주질 않는다"며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제는 주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WP)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일어났을 법한 대형화재가 런던에서 발생했다고 제반 상황을 압축했다.
WP는 "19, 20세기에서나 볼 법한, 아마도 지구촌의 덜 부유한 지역에서 볼 법한 통제 불능의 화염이 불타올랐다"며 "지금은 2017년이고, 최근엔 그런 장면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영국 경찰은 이번 화재에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가 12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은 이들이 꽤 있어 사망자 수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