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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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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⑤] 진짜 사용자와 교섭할 수 있는 환경 마련돼야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실행을 선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30년 만에 노동 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CBS노컷뉴스는 5회에 걸쳐 외주화로 얼룩진 공공부문부터 악마의 공장으로 돌아가는 민간부문까지 철저하게 은폐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들여다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비정규직, 그 두꺼운 사슬
    ① 불법 내몰고, 차별 숨기고…"무기계약직='가짜'정규직"
    ② '왕궁 수문장'도 '철도 지킴이'도 전부 비정규직
    ③ "2분 늦었다고 해고" 정규직 '0' 악마의 공장
    ④ 천 명 넘게 일하는 공장 노동자, 한꺼번에 '유령'된 사연
    ⑤ "대통령이 우릴 구할 수 있을까"…무대로 나오는 비정규직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의가 물살을 타면서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구하는' 조직화 작업도 속도가 붙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 시간 내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숨고 피하기 급했던 사용자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직접 교섭하게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지적이다.

    ◇ '비정규직 노조 설립, 가입률도 증가'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관리본부와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지난 3월 노조를 결성했다. 석‧박사 출신들로 구성된 이들의 월 임금은 150~200만 원 수준으로 정규직 공무원과 100만원 가까이 차이 난다. 승진은 물론 성과급 대상에서도 배제됐다.

    고용불안 역시 만성적이다보니, 혹시 불합리한 처우에 반발했다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노조 결성의 장애물이었다. 무기계약직 A 씨는 "질병관리본부 비정규직들은 '상대평가로 하위 20%는 언제든 계약을 해지한다'는 규정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지난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후보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팔을 걷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가시적 성과가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대선 이후 노조원은 50% 넘게 증가했다.

    법무부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 1일 노조를 결성했다. 노조설립에 참여했던 B 씨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정규직이 우리와 같은 껍데기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정규직을 만들고자 나왔다"고 말했다.

    ◇ 조직률 1.8%, 협상위한 최소한의 통로도 없어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노조원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화 대책회의 발족 및 입장발표 기자회견’ 을 갖고 노동조건 후퇴 없는 정규직화 등 6800명 노동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노조 조직과 가입률 증가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협상 대상자의 지위에 한 걸음 나아간 사례도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기간제 노동자의 무기계약직화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내세웠다가 비판을 받자, 현장 노동자들의 의견수렴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10년 넘게 고용개선을 위해 싸워온 비정규직 노조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항 방문 이후 300명의 가입신청서를 새로 받았다. 이들은 실권 없는 용역업체 대신 진짜 사용자인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노조와의 직접 교섭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교섭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숨어 있는 사용자', 또는 '진짜 사용자'를 드러내라는 요구이기도하다.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우선적으로 비정규직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조를 조직하고 진짜 사용자, 즉 원청을 교섭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한국비정규직노동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노조 조직율은 단 1.8%(2016년 8월 기준)다. 전체 노동자 3명 중 1명(32.8%)이 비정규직이지만, 비정규직 고용 사업장 중 아예 노조가 없는 곳은 87.7%에 달한다.

    서울의 한 회사에서 1년간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던 공모(28) 씨는 "비정규직들은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등 문제가 많은데도 누구도 관심이 없고 노조가 없어 하소연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노동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통로조차 없는 셈이다.

    어렵게 노조를 조직한 사업장은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지 않도록 직접교섭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지만, 무시당하는 것은 물론 해고 등 가혹한 보복에 시달리는 게 일반적 상황이다. 두 번째 큰 산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자회사 서울농수산시장관리주식회사(이하 농수산회사)의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에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책임을 미루고 있다. 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는 "서울시와 공사에서 개입할 근거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자회사는 "재량으로 쓸 수 있는 돈은 전체의 8%에 불과해 노조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근로계약의 해지(해고) 사유에 관한 사항 (사진=송영훈 기자)

     

    ◇ 비정규직 해결 "교섭 테이블 마련이 첫걸음"

    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가 사용자를 명확히 함으로써 노조와 사용자가 교섭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가능성이 열리면, 외톨이였던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조직하고 목소리에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문제 해결을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과 관련해 "구체적인 정규직화 방법은 공공기관장이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며 "해당기관 업무처리 효율성, 근로자 처우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하면 된다"고 밝힌 바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공동사용자 표현을 입법화해야 한다"며 "원청업체의 사장을 공동사용자로 규정해 단체교섭에 나오도록 해야 하고 정권 초기 반짝 이벤트성으로 정규직화 움직임이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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