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지난 정권에서 극심한 노정 갈등을 불렀던 성과연봉제를 결국 폐기하는 대신 직무급제를 대안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아직 조심스러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6일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를 열어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관련 후속조치 방안'을 의결했다.
이를 통해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하기 위해 세워졌던 관련 권고안 및 방안들을 폐기하고, 현재 진행 중인 지난해 경영평가에서도 성과연봉제 관련 항목 평가를 아예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즉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공공기관들이 성과연봉제 유지 여부를 자율적으로 다시 결정하도록 하고, 만약 노사 합의 없이 강행한 경우 관련 취업규칙을 재개정하도록 해 기존 보수체계로 되돌아가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이처럼 정부가 공공부문의 임금체계를 원점으로 돌려놨지만, 현재와 같은 연공호봉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데에는 정부와 노동계 모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근무 기간이 늘면서 호봉도 같이 올라 임금이 결정되는 '연공급제'도 다양한 장점을 갖는다.
우선 중장년이 될수록 목돈이 필요한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생애주기와 일치해서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 또 분배 원칙이 간단 명료하기 때문에 임금에 대한 불만도 크지 않다.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인원을 고용할 때 초기 부담도 줄어들고, 노동자들의 장기 근속을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 노동시장 구조가 급속히 변하면서 기존 연공급제는 위기를 맞았다. 우선 단기계약을 반복하는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연공급제에서 벗어난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다.
또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수명이 짧아지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대량해고를 감행하지면서 노동자로서도 중장년에 받아야 할 호봉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기업들의 경우 근속년수와 숙련도가 비례하지 않는 단순 직무를 중심으로 정규직을 새로 고용하기보다는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방안을 선택하기도 한다.
특히 공공부문의 경우 연공급제가 업무 성과 및 숙련도와 무관하다는 지적과 함께 '공공부문 철밥통'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근무기간만큼 돈을 더 주는 연공급제도, 개인 성과대로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제도 아닌 맡은 업무에 따라 등급을 매겨 임금을 주는 '직무급제'를 대안으로 검토 중이다.
이미 대선 기간 문재인 대통령도 TV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식 성과연봉제에 반대한다. 그러나 단순히 연공서열대로 임금이 올라가는 구조도 옳지 않다"며 "앞으로는 새로운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를 위해 노사 합의기구를 조직해 시장임금과 배분임금(이익공유분)을 분석한 뒤 '산업 단위의 표준 직무급 체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직무급제 역시 곧장 한국 노동시장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극도로 직무 등급을 세분화하는 영미식 직무급의 경우 각자 역할 분담이 뚜렷한 영미권과 달리 한국은 개인·부서 간 업무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또 노동자의 숙련도에 중점을 두되 직무별 등급을 나누는 독일식(유럽식) 직무급제의 경우에도 관련 전통이 없고 직무 간 이동이 경직된 한국에 적용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으로는 성과급제처럼 모호한 평가 기준으로 불평등만 조장할 수 있단 지적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노동계도 기존 임금체계를 대폭 개편하되 폭넓은 대화가 선행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김철운 공공기관사업팀장은 "현재 공공기관 임금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고, 어떤 형태로든 임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특히 공공기관 간에도 임금 격차가 크고, 무기계약직이나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가 극심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임금 제도는 임금 체계는 물론 임금 수준, 안정성 등을 모두 포괄한 복잡한 문제"라며 "각계 전문가와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강조하는 직무급제에 대해서는 "직무급제의 유형도 다양하고, 이를 적용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며 "미리 직무급제로 규정짓고 논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