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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받고 싶다" 김기춘…끝까지 "난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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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약받고 싶다" 김기춘…끝까지 "난 모른다"

    한국 역사 최대 직권남용 사건에도 형사적 책임은 끝까지 부인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이른바, '블랙리스트 공판'이 다음달 3일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구형 선고를 계기로 마무리 국면에 들어간다. 최종 선고는 다음달 말쯤으로 예상된다.

    이번 블랙리스트 재판은 한국 역사상 최대의 직권남용사건이다. 한국 최고의 권부실세인 청와대 비서실장과 정무수석과 문체 장관을 지낸 주요 인사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는 일은 초유의 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블랙리스트 관련 공범으로 지목돼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는 뇌물죄 공판과 함께 별도로 이뤄지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미 유죄를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한국의 대표적인 공안검사이자 '왕실장'이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재판은 그가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최고 보좌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김 전 실장은 직권남용 혐의 외에 '강요죄'로도 기소됐다.

    법원 안팎에서는 김 전 실장에 대해 특검이 최소 10년에서 15년의 중형을 구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한 인사는 "전직 대통령과 비서실장이 연루된 직권남용 재판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며 "블랙리스트 선고는 '역사적인 심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김기춘 "난 알지도 못하고 지원 배제 지시한 사실도 없다" 끝까지 부인

    28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형사 30부(재판장 황병헌) 심리로 김기춘 전 실장에 대한 마지막 피고인 신문이 열렸다.

    김 전 실장은 지금까지 재판이 진행된 32차례는 물론 피고인 신문이 열리는 마지막날까지도 "나는 블랙리스트라는 말을 써 본 적도 없고 재임중에 그런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고 부인했다.

    또 "그런 명단을 만들고 적용하고 하는 과정에서 보고 받거나 본 적도 없다"고 끝까지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가 "실제로 그런 일을 알지 못했고 재판에 나와 증인들 얘기를 듣고 그런 일이 있었나 짐작했을 뿐 명단 작성 사실을 몰랐다"고 항변하는 순간, 재판정의 한 방청객이 급기야 소리를 질렀다.

    "뭘 몰라! 거짓말하지 마세요" 이 방청객은 재판관의 퇴정 명령을 받았고 울면서 법정 경위들에 의해 재판정 밖으로 끌려 나갔다.

    김 전 실장은 대신 모든 책임을 문체부 장관과 차관 등 아랫사람들에게 떠넘겼다.

    그는 '블랙리스트' 작성을 위해 2014년 초 청와대 주도로 구성된 '민간단체 보조금 티에프(TF)' 구성 및 블랙리스트 집행에 대한 책임을 부하 직원과 문체부 쪽에 미뤘다.

    그는 "실무진이 수석비서관 의중과 다르게 추진 배경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냐"는 특검 질문에 "청와대 비서실 행정관은 행정부처와 달리 나름대로 재량을 갖고 일을 한다"며 "수석도 모르는 사이에 재량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많다"고 답했다.

    청와대가 문화예술인 지원배제 필요성을 지적한 국정원 문건을 문체부에 보내도록 지시한 사실에 대해서도 "제가 보낸 일이 없다. 누가 보냈는지 알지 못한다"고 발뺌을 했다.

    또 증거로 제시된 문건에 대해선 "3년 전 일이라 기억이 안난다. 이제 나이가 80에 이르러 기억이 없다'며 불리한 내용을 빠져나갔다.

    ◇ 문체부 직원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다", 김기춘 "장관이 해결했어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31회 공판에 환자복을 입은 채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이 과정에서 특검은 "블랙리스트 업무때문에 괴로웠다"는 문체부 직원들의 증인 신문조서를 여러개 제시했다.

    문체부 김아무개 사무관 등은 "블랙리스트때문에 너무 힘들어 자꾸 회의를 할때는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고 그게 심해져 정신과에 가서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공연과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문체부 장관과 직원 탓으로 모든 책임을 돌렸다.

    "난 그렇게 지시하고 괴롭힌 일이 없다. 제가 알지 못하는 일이고, 문체부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어려움을 겪었다면 장관이 책임지고 해결했어야 한다”고 오히려 딴소리를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알지 못하는데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추궁에 대해서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은 자신의 건강문제에 대해선 울먹이는 목소리로 재판장에게 호소했다.

    "심장 흉통으로 건강이 나쁘지 않냐"는 변호인 신문에 "아버지가 고혈압과 협심증으로 58세에 갑자기 돌아가셨다"며 "매일매일 오늘이 생애 마지막 날이다라는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 심정은 제발 옥사 안하고 밖에 나가 죽었으면 하는게 최대 소원"이라고 덧붙였다.

    "과거 왕조시대 같으면 망한 정권으로 도승지는 사약을 받는다. 민주국가라 해서 형법 틀에 맞추다 보니 (이런 재판을 받고 있는데)무너진 대통령을 잘못 보좌했는데 사약 마시라 하면 독배를 마시고 이 자리에서 끝내고 싶다"는 말도 했다.

    김 전 실장은 정치적 책임은 일부 인정하면서 형사적 책임만큼은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는 자세였다. 그의 '모르쇠·발뺌' 전략이 최종 선고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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