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공기업의 친박계 수장과 임원들의 교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청와대가 공공기관 인사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한다고 알려지면서다. 지난 정부 성향의 인사들을 대폭 물갈이하고 새로운 후보군을 물색하는 절차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가장 첫 손에 꼽히는 친박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는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과 정찬우 한국거래소 이사장이다. 이 회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해 금융 관련 공약을 개발하고 전현직 금융인의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선거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정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최순실 측근 인사의 승진을 위해 KEB하나은행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 회장은 임기가 1년, 정 이사장은 2년 이상 남았지만 워낙 '친박' 색채가 뚜렷해 새 정권과 함께 하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실제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 이사장은 본인은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끝까지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면서 "사실상 이들은 친박 성향이 너무 강해서 알아서 나가주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공기업 임원들 중에서도 '친박 낙하산'이 적지 않다. 특히 놀라운 것은 올해 초 탄핵 국면 기간에 정국 혼란을 틈타 막판 밀어내기식 금융권 낙하산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곳이 주택금융공사다. 올해 1월 금융위원회는 주택금융공사 신임 비상이사를 3명을 임명했다. 이 가운데 2명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출신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친박 폴리페서'다. 김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노사정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서울 강동갑 한나라당 당협위원장,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 선대위 정책메시지 단장을 했다. 김동주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부 검사 출신으로 금융위원회 법률자문관 등을 거쳐 2015년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금융권 경력조차 없는 문외한들도 상당수 임원급 자리를 차지했다.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을 지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펜'으로 불리던 조인근 한국증권금융 감사가 대표적이다. 조 감사는 2004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때부터 메시지 담당으로 박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측근으로 꼽혀온 인물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작년 9월 기준으로 금융공기업 임원 255명 중 97명(38%)이 낙하산이며, 이 가운데 53명은 여당이나 18대 대선 캠프 출신의 '정피아(정치권+마피아)'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역대 정권마다 금융권이 '낙하산 인사'의 단골 착륙지점으로 애용되는 까닭은 고액 연봉이 보장되고 책임도 무겁지 않은 꽃보직 자리가 즐비해서다. 금융당국의 상시 감독을 받는 인가 사업이라는 특성도 한 몫 한다. 이 때문에 조직 내에서도 수장이 정치권이나 당국에서 오는 게 더 유리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권 곳곳에 포진돼있는 지난 정부의 낙하산 인사를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겠다는 게 현 정부의 의중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청와대가 금융공기업 인사를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실 지난 정부의 낙하산 인사 가운데 비정상적인 것도 많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융 관련 기관의 수장 및 임원들의 임명 및 교체가 속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친박 CEO 일부는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하고 주위에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것으로 안다"면서 "최 후보자가 임명되면 사의를 표명하는 방식으로 교체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