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공개한 자료 중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작성한 메모로 추정되는 자료. (사진=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14일 박근혜 정부 민정비서관실 캐비닛에서 발견됐다고 공개한 300종의 문건에는 현재 진행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수수·공여죄를 뒷받침할 수 있는 민감한 자료들이 많이 담겼다.
지난 3일 청와대가 민정비서관실 공간 재배치 도중 발견했다는 대량의 문건을 이날 전격 공개한 것은 같은 시간 이 부회장의 공판이 서울 서초동에서 열리고 있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날 공판에는 '삼성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증인 자격으로 출석해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 시도에 대한 증언을 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순방으로 인력이 모자라 발견된 문건을 정밀 검사해 공개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 뇌물 사건 공판이 열리는 시점에 맞춰 전 정부의 정경유착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드러내는 데 최대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도 풀이된다.
공개된 문건의 내용도 메가톤급이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문건들 중 '국민연금 의결권 조사'라는 문건에는 관련 조항 찬반입장에 대한 언론 보도, 국민연금 기금 의결권 행사 지침, 직접 펜으로 쓴 메모 원본도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전초 작업이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국민연금이 큰 손해를 보면서까지 의결권 행사를 강행하려 한 것에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개입됐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박 대변인은 "특히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지원 방안을 검토한 메모에는 삼성 경영권 승계 국면을 기회로 활용한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말했다.
또 "경영권 승계 국면에서 삼성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하고, 도와줄 것은 도와주면서 삼성이 국가 경제에 더 기여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삼성의 당면 과제 해결에는 정부도 상당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하다는 내용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7월 이 부회장이 박 전 대통령을 두번째 독대할 때, 청와대에서 준비한 말씀자료에 나온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박영수 특검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당시 독대에서 청와대가 '현행 법령상 정부가 도와드릴 부분은 제한적이지만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 정부 임기 내에 승계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말씀자료를 준비한 것을 밝혀냈다.
당초 청와대 경제수석실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내용이 민정비서관실에서도 발견되면서 안종범 전 경제수석 말고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 민정라인도 삼성 경영권 승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추정도 가능하다.
민정비서관실에서 발견된 문건에는 "금산분리 대응 규제 완화 지원"이라는 대목도 있다.
박영수 특검팀은 수사 당시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밀접하게 관여돼 있다고 봤는데, 이번에 민정비서관실에서 발견된 문건에도 '금산분리 규제 완화' 부분이 들어 있었다.
결국 청와대가 이날 이들 문건을 전격 공개하고 문건 사본을 전부 검찰로 넘기기로 한 배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재판에 결정적인 추가 증거라는 판단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경영권 승계를 대가로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에 적극 나선 혐의를 받고 있는 만큼, 최씨와 '경제공동체' 격인 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증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다중 포석을 노린 것으로 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