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가운데)이 참석자들과 함께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지난 14일 해단한 가운데 많은 성과와 한계를 남겼다.
국정기획위는 60일 동안 활동하면서 90여 차례의 부처 업무보고, 200여 차례의 간담회 및 세미나, 500여 차례의 토의를 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며 문재인 정권 5년 청사진을 구상하는 데에 주력했다.
◇ '인수위·시어머니'…국정기획위의 또다른 이름국정기획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이나 지나서야 현판을 달고 발족하면서 두 달 동안 문재인 정부의 완충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청와대가 내각 구성과 추경안 처리 등에 주력하는 사이 국정기획위는 인수위 역할을 맡아 문재인 정권 5년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돌입했다.
국정기획위는 문재인 정부의 거시적인 비전과 목표를 정립하고, 문 대통령 후보시절 약속했던 공약 중 우선순위 가려 20대 국정전략과 100대 국정과제를 선정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국정개혁 5개년 계획'은 오는 19일 '대국민보고대회'(가칭) 통해 발표된다.
동시에 국정기획위는 정부의 '시어머니' 역할을 자처했다. 새 정부 정책에 굼뜬 일부 부처 공무원들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고, 문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반기를 드는 재계에도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이 지난 5월 25일 "사회 각계의 정규직 전환 요구로 기업들이 매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며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반기를 들자,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기업 입장의 아주 편협한 발상"이라며 "일자리 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당사자 중 하나인 경총의 목소리로는 적절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맞받아쳤다.
이는 청와대보다 한발 빠른 기자회견이었다. 이렇듯 국정기획위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를 확실히 선전하고 비판에 선제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함께 했다.
◇ '文 컬러' 선명하게 정리한 국정기획위국정기획위의 성과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기조를 선명하게 정리하고 구체화했다는 점으로 평가된다.
국정기획위는 소득주도 성장, 경제민주화, 적폐청산 등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를 정부 정책으로 승화시켰다.
국정기획위는 '문재인 정부의 12대 약속' 중 1번으로 '일자리 창출'을 제시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 방안으로 '공공의 더 좋은 일자리 창출', '민간의 더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을 선정해 관련 정책을 수립했다.
또 '아동수당 월 10만원 지급', '기초연금 25만원 인상' 등 국민 소득을 증대시키는 정책과 '가맹점 보호' 등 경제민주화를 위한 방안 등도 발표했다.
아울러 정부 부처에 새 정부의 국정철학과 기조를 명확히 각인시켰다는 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며 "많은 부처들이 대통령의 공약을 베껴오는 수준이면서 기존 정책의 틀만 바꾸는 '표지 갈이'가 눈에 띈다"고 공무원들의 관행적 행정을 지적했다.
김연명 국정기획위 사회분과 위원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보고에서 "문체부가 과거 잘못을 발본색원하고 새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얼룩진 문체부에 강력한 '적폐청산' 의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왼쪽 다섯번째)과 홍남기(네번째), 김태년(여섯번째) 부위원장을 비롯한 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5월 22일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열린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출범식에서 현판을 제막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 작은 몸집·달리는 체력…모호한 논의 속 공약 후퇴는 한계하지만 급박하게 출범하면서 충분한 인력과 시간을 갖지 못해 국정 과제들이 추상적 논의 수준에 그치거나 일부 공약이 후퇴된 점은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국정기획위는 30명의 자문위원과 64명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됐다. 노무현 정부의 인수위는 246명,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183명이었던 것에 비해 현저히 작은 규모다.
인력 부족은 자연스럽게 전문성 부족으로 이어진다. 국정기획위는 6개 분과에 6~7명의 위원들이 포진돼 있다. 분과의 수가 적다 보니, 한 분과가 여러 분야의 정책을 맡게 됐다. 사회분과에서 교육과 복지, 환경 등을 모두 떠안은 것이 단적인 예다.
공약 후퇴 논란도 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통신 기본료 폐지'는 통신업계의 반발로 무산됐고, 산업통상자원부의 통상 기능을 외교부로 이관하겠다는 정부조직 개편안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통령 경호실 폐지 공약도 보류됐다.
일부 정책들은 결말을 짓지 못한 채로 남은 것도 아쉬운 대목으로 꼽힌다. '경유세 인상'을 시사했지만 이후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는 이유로 추가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고, 유치원·어린이집 유보통합 문제도 '끝장토론'을 한다고 했지만 정작 끝을 보지 못했다.
또 문 대통령의 '5대 인사원칙' 파기 논란이 있었을 때 국정기획위는 '5대 인사원칙' 구체화 작업에 착수한다고 했지만, 결국 결과는 발표하지 못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대통령 공약을 한꺼번에 시행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이해해달라"며 "남은 과제들은 단계적으로 해나가겠다고 약속한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내가 주인이 되는 나라',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나라'를 열망하는 국민의 지지로 이 정권이 탄생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향후 법 개편과 재원 확보 노력 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