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
북한이 15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면서도 일부 긍정 평가하는 첫 반응을 내놨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발표 9일 만에 나온 공식 반응이다.
북한은 노동신문은 이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진로가 무엇인지 똑똑히 알아야 한다'는 제목의 개인 명의의 논평에서, "도이췰란드를 행각(방문)한 남조선의 현 집권자가 이른바 '한반도평화구상'이라는 것을 발표했다"며, "평화의 미명하에 늘어놓은 전반 내용들에는 외세에 빌붙어 동족을 압살하려는 대결의 저의가 깔려있으며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와 북남관계개선에 도움은커녕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들이 열거되어 있다"고 비판했다.
노동신문은 이어 "외세의존과 동족대결의 본심이 그대로 녹아있는 '한반도평화구상'의 실체를 파헤쳐보자"한다며, 문 대통령이 제안한 각종 의제에 대해 '잘못된 출발, 엇나간 방향' '적반하장의 평화 타령' '언행상반의 대화협력타령' '근본문제부터 풀어야한다'는 소제목 아래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러나 북한 노동신문은 이런 비판을 하기 전에 먼저 "일명 '신베를린 선언'이라고 자칭하는 이 '평화구상'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 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입장들이 담겨져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일부 긍정적인 점이 있다는 점을 먼저 언급한 뒤 비판을 해나가는 형태를 취한 셈이다.
노동신문은 우선 문 대통령의 구상이 베를린에서 발표된 것을 '잘못된 출발, 엇나간 방향'이라고 문제를 삼았다.
"우리 민족 자신이 주인이 돼 풀어나가야 할 중대한 문제를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늘어놓는 것 자체가 황당하기 그지없다"며, "더우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도이췰란드식 '통일경험' 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해주고 있다'느니 뭐니 하며 마치도 이 나라가 조선반도(한반도)통일의 표본이라도 되는 듯이 억설을 늘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또 문 대통령의 평화협정 체결 등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제안에 대해서는 "이미 때는 늦었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가 핵을 가지지 못하였을 때에는 우리의 진지하고 성의 있는 조미평화협정체결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상전의 뒤다리를 그리도 잡아당겨 온 남조선이 핵무력을 보유하게 된 오늘에 와서 '항구적인 평화체제구축'에 무슨 큰 관심이라도 있는 듯이 고아대고 있는 것은 철면피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정밀화되고 다종화된 자위적 핵무장력은 세계정치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가져오고있으며 오늘날 조선반도평화보장의 조건과 가능성도, 평화협정체결의 분위기와 환경도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괴롭더라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문 대통령이 거론한 '올바른 여건', '적절한 조건' 등에 대해 "우리의 핵폐기를 유도하고 압박하는 데 선차적인 관심과 목적을 두고 있으며 대화도 북남관계도 여기에 복종시키려 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고 비난한 뒤 "근본적인 정책전환, 입장전환이 없다면 그 어떤 언약도 새로운 실천을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산가족 상봉과 체육·민간교류 추진 제의에 대해서는 "근본문제부터 풀어야 한다"며, "첨예한 적대적 관계에 놓여있는 북남사이에 대결구도의 청산이라는 근본문제의 해결을 외면하고 그 어떤 비정치적교류나 협력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체육문화교류나 인도주의적 협력사업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동족 간에 혈연적, 정서적 유대감과 민족적공통성을 되살리기 위한 이런 사업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어제나 오늘이나 일관된 우리의 입장"이라면서도, 5·24 조치 문제, 탈북 여종업원 12명과 현재 북송을 요구하는 김련희 씨의 송환문제 해결 등을 또다시 거론했다.
그러면서 노동신문은 올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거론하면서 "동족이 내민 손을 잡고 북남관계개선과 자주통일을 위한 옳바른 길에 들어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과거 한국 대통령의 대북 제안에 대해 통상적으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공식기구의 담화나 성명을 통해 거부입장을 밝혔으나, 이번에는 A4 용지 7장, 8천 6백자가 넘는 노동신문 개인 논평을 통해 비판하는 형태를 취했다.
게다가 비판에 앞서 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존중, 이행을 다짐하는 등 선임자들과는 다른 일련의 입장들이 담겨져 있다"는 점을 먼저 긍정 평가한 뒤 각종 제안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방식을 썼다.
이에 따라 북한 당국이 문 대통령의 제안을 비판하면서도 수위 조절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의 반응에 대해 "북한이 너무 심하게 얘기하거나 지나치게 한 말이 없었고, 오래 동안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며, "전반적으로 기대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다. 북한도 문 대통령의 5월 취임이후 남북 간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의 비판에 대해서도 "북한이 베를린 구상 자체에 관심이 없었다면 좋은 얘기가 나올 수 없고 한마디로 일축하고 말았을 것"이라며 "북한이 길게 조목조목 비판한 것 자체도 앞으로 대화가 재개되면 의제가 될 수 있는 것들인 만큼 긍정적인 신호로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