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 (사진=USGA 제공)
"솔직히 마지막 홀에 워터해저드가 있어서 지난해 생각이 났어요."
펑산산(중국)에 2타 앞선 채 들어선 US여자오픈 마지막 18번홀(파5). 사실 18번홀은 박성현에게 악몽의 장소다. 지난해 대회에서 두 번째 샷을 워터해저드에 빠뜨리면서 연장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쳤기 때문. 올해는 투온이 아닌 스리온을 노렸지만, 세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갔다.
가뜩이나 쇼트게임이 약점으로 지적됐던 박성현이기에 부담이 더 컸다.
그 때 캐디인 데이비드 존스가 박성현을 다독였다. 박성현은 침착하게 어프로치 샷을 날렸고, 네 번째 샷은 홀 옆에 안착시켰다. 파 세이브. 뒤 이어 18번홀에 온 펑산산이 이글에 실패하면서 박성현의 우승이 확정됐다.
박성현은 17일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네 번째 샷을 남기고 머리가 하얗게 됐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캐디가 '항상 연습했던 것이니 믿고 편안하게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런 말들이 도움이 많이 됐다"면서 "평상시 연습한대로 어프로치가 된 것 같아서 나도 치고 나서 깜짝 놀랐다"고 웃었다.
올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본격 데뷔한 박성현은 박세리(40),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 등과 호흡을 맞췄던 캐디 콜린 칸과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7개 대회를 치르고 칸과 결별했다. 이후 두 개 대회를 임시 캐디인 크리스 매칼몬트와 함께 했다. 6월 숍라이트 클래식을 앞두고 데이비드 존스와 손발을 맞추기 시작했다. "장타 플레이어들과 호흡을 많이 해 본 경험자,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을 끌어올려 줄 수 있는 캐디와 함께 해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존스와 함께 한 5번째 대회. 박성현은 드디어 LPGA 투어 데뷔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흔들릴 때마다 존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 존스는 최나연(30), 전인지(24) 등 한국 골퍼들의 캐디를 맡은 경험도 있다.
박성현은 "솔직히 18홀 내내 한결 같은 집중력을 가져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한 순간이라도 집중력이 떨어지면 플레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면서 "오늘 같은 경우 캐디의 역할이 정말 컸다. 조금이라도 흐트러질 때면 캐디가 작은 농담이라도, 더 집중할 수 있게 한 마디씩 던져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1, 2라운드에서는 주춤했다. 1라운드에서는 1오버파, 2라운드에서는 2언더파를 기록했다. 2라운드까지 순위는 공동 14위였다.
하지만 3, 4라운드에서 몰아치기가 나왔다.
박성현은 "대회에 들어오면서 샷감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 나흘 중 이틀 정도는 몰아치기가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3, 4라운드에 나와서 우승한 것 같다. 3라운드 후반에만 6언더파를 치는 등 3, 4라운드는 만족스럽다"면서 "아무래도 1, 2라운드가 잘 안 풀렸기에 3, 4라운드에 내 샷이 나올 거라 믿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