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반대 및 기권 투표 등으로 정족수를 채우면서 2017년도 제1회 추가경정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있다. 이한형기자/자료사진
"한 달 동안 참고 참으면서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 하지 않습니까."
한 달 전 여당의 우원식 원내대표는 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과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심사 테이블 조차 마련되지 않자 이처럼 답답함을 토로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국민의당에서) 선회하면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탄력있게 가겠습니다."
제 1 야당인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국민의당이 추경안과 관련, 여당 협조 기류로 선회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이 같이 말했다.
공고했던 거대 양당 구도가 무너지고 다당 체제가 자리잡은 국회의 신풍속도다. 민주당과 한국당 가운데 누구 하나 과반 의석을 점하지 못하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중간지대에서 양당에 협조와 견제를 병행하다보니 '양보 없는 독주'가 불가능해졌다는 평가다.이번에 국회를 간신히 통과한 '승자 없는 추경안'은 이를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그동안 청와대와 여당은 김상곤 사회부총리와 송영무 국방부 장관,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모두 지키는 한편, 추경과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원안통과를 주장했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여당 원내지도부는 그야말로 발이 닳도록 야당과 접촉했다.
하지만 야3당은 이 같은 독주 기류에 견제 공조를 구축했다. '협치를 위한 보여주기식 만남은 의미가 없다'며 여당의 삼고초려를 밀어냈다.
'김·송·조 트리오'의 자진사퇴와 추경의 핵심 내용인 공무원 증원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두 사안 연계책으로 맞섰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으로 국민의당이 분개한 점도 야 3당 공조를 강화시킨 변수로 작용했다.
결국 청와대와 여당은 조 후보자를 사실상 사퇴시키면서 한 발 물러섰다. 청와대에서 직접 나서 국민의당에 추 대표 발언을 사과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의사일정 참여로 입장을 선회했다. 졸지에 '나홀로 반대' 신세가 된 한국당은 발목잡기 비판 여론에 직면할 위기에 놓였고, 결국 추경 심사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우선 여당 견제에 무게를 실어 협의점을 도출하고, 여당 협조로 입장을 선회해 한국당을 고립시키는 패턴은 추경안 처리 과정에서도 반복됐다. 정부 여당이 끝까지 지키려 한 공무원 채용 예산 80억 원은 전액 삭감됐고, 채용 규모도 줄여 목적예비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둘이 합쳐 60석 의석수의 두 당이 큰 힘을 발휘하면서 '승자 없는 추경안'이 마련된 것이다. 쟁점인 물관리 일원화 문제를 떼어놓고 처리된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마찬가지의 결과물이다.
의석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여당과 '바닥 지지율'의 제 1 야당 사이에서 이들 두 당의 사안별 대응전략은 앞으로도 정국의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양당 중심이었던 국회 논의구조가 훨씬 복잡해지고, 소수 의견이 반영될 여지도 커지면서 '여소야대 다당체제'에서 협치가 필수조건이 될 것이라는 관측은 현실화 되는 분위기다.
민주당 김현 대변인도 추경안 처리 직후 서면 브리핑을 통해 "여야가 장기간 인내를 통한 협력과정을 거쳐 통과시켰다"며 "여야 각 당이 양보하면서 얻어낸 합의는 촛불민심이 요구하는 협치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