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폭우로 막대한 수해를 입은 지역 상황에도 외유성 연수를 강행해 논란을 빚은 김학철 충북도의원(왼쪽)과 여자 대표팀의 절반 비즈니스석 논란에도 호텔 취임식을 연 오한남 대한배구협회장.(자료사진=이한형 기자, 더 스파이크 제공)
최근 폭우로 최악의 수해를 입은 가운데서도 외유성 연수를 떠난 충북도의원들이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지역도민들은 수해 때문에 살 길이 막막해진 상황에서 2000만 원 가까운 혈세를 들여 외유를 떠난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후폭풍은 컸다. 자유한국당은 소속 도의원 3명을 제명 조치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연수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도정에 필요하다면 갈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시기가 적절치 않았다. 폭우 피해로 도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연수를 강행할 이유가 없었다.
스포츠계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물론 폭우 수재민들에 비할 만큼 피해가 크진 않았지만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배구협회 얘기다.
협회는 25일 서울 강남 모 호텔에서 오한남 신임 회장의 취임식을 열었다. 대관료만 1000만 원 가까운 데다 주류 및 식사까지 행사 관련 총 비용이 2000만 원 정도가 들었다고 한다. 다른 종목 행사도 종종 열리는 곳으로 한국 4대 스포츠로 꼽히는 배구를 총괄하는 수장의 취임식인 만큼 일견 이해가 가는 행사다.
하지만 역시 시기가 문제였다. 협회는 현재 여자 대표팀의 이른바 '절반 비즈니스석' 논란에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2017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라운드에 나서기 위해 체코로 떠나는 대표팀 선수 12명 중 절반만 비즈니스석에 탑승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주말 수원 홈에서 열린 월드 그랑프리 2그룹 예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파이널 라운드 진출을 확정지은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기뻐하는 모습.(사진=대한배구협회)
더욱이 남자 대표팀과 비교가 되면서 비난이 거세졌다. 세계대회 아시아예선에 나서는 남자 대표팀 14명 전원은 비즈니스석으로 떠나기 때문. 신장이 큰 배구 선수들은 장시간 비행할 경우 근육에 피로가 쌓여 경기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좌석 문제는 매우 예민한 사안이다.
물론 여자 대표팀의 절반 비즈니스석 탑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당초 협회는 여자 대표팀도 오는 9월 세계대회 아시아예선이 열리는 태국행에 비즈니스석을 예약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표팀이 그랑프리 2그룹 예선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파이널 라운드에 진출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여자 대표팀은 태국보다 장거리인 체코행에 대한 비즈니스석을 협회에 요청했다.
협회는 부랴부랴 항공권 확보에 나섰지만 예산이 만만치 않았다. 태국행보다 체코행의 항공료가 더 비싼 데다 여름 휴가 성수기가 겹쳐 금액이 더 높아졌다는 것. 결국 12명 중 6명만 비즈니스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다.
딱한 사정이야 일견 이해가 되지만 하필 이런 시기에 굳이 호텔에서 취임식을 열어 구설수에 오른 것은 난해한 대목이다. 물론 협회는 전임 회장의 진퇴 여부를 놓고 오랜 기간 진통을 겪은 만큼 보란 듯이 새 회장의 취임식을 열고 싶었을 터.
그러나 협회는 그동안 여자 대표팀에 대한 처우 문제로 여러 번 곤경에 처한 바 있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당시 매니저, 통역, 팀 닥터가 출입증이 없어 선수단과 동행하지 못해 선수인 김연경이 통역 역할을 도맡았다는 사실이 불거졌다. 대회 이후에는 선수단이 표가 없어 따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러면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낸 여자 대표팀이 이른바 '김치찌개 회식'을 한 사실까지 소환되면서 협회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다. 이후 김연경이 사비를 털어 선수들을 고급 레스토랑에 데려간 일화도 알려졌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 20년 만에 금메달을 따낸 여자 배구 대표팀 선수들이 김치찌개 회식을 하는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런 전력에도 협회가 또 다시 여자 대표팀 홀대 논란을 야기한 것이다. 상황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비판이 일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서도 호텔 취임식을 강행한 것은 비난을 산 꼴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가뭄과 홍수 등 지역 주민들의 피해에도 외유성 행사를 떠난 정치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셈이다.
배구협회의 열악한 재정 역시 자초한 일이다. 협회는 과거 임태희 회장 시절 강남 도곡동 배구회관을 무리하게 매입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협회 자립기금 70억 원에 은행빚 113억 원을 차입하며 건물을 샀지만 시세가 떨어졌다. 여기에 당시 협회 부회장이 32억 원의 웃돈을 얹어 건물을 산 뒤 뒷돈을 챙긴 사실도 드러났다.
이게 부메랑이 돼 지금까지 대표팀 지원 부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협회는 프로배구를 주관하는 한국배구연맹(KOVO)으로부터 매년 2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항공권 업그레이드로 1억 원을 추가로 받았지만 궁핍한 살림살이는 여전한 실정이다. 배구회관 매각 등을 통해 안간힘을 쓰고 있으나 단기간에 상황이 나아질 리 만무하다.
문제의 외유를 떠났던 충북도의원들 중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철 의원은 비난 여론에 "국민들이 집단 행동을 하는 설치류인 레밍 같다"는 막말을 쏟아내 더 큰 공분을 샀다. 이후에도 "문재인 대통령 탄핵" 등을 주장하며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배구협회도 "KOVO가 그랑프리 홈 경기 때 스폰서로 나서지 않아 재정이 더 열악해졌다"는 변명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협회는 시기상 적절하지 않았던 호텔 취임식을 인정하고 재정 정상화를 위한 자구책을 내놓고 실천에 옮기겠다는 뼈저린 반성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레밍' 도의원의 전철을 밟을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