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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환성-김광일 PD 유가족 "사람 쓰고 내버리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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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박환성-김광일 PD 유가족 "사람 쓰고 내버리는 것 같아"

    빈소 방문한 우종범 EBS 사장-이효성 방통위원장 내정자에 '나쁜 관행 개선' 요구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될 예정이었던 '야수와 방주'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故 김광일-박환성 PD (사진=한국독립PD협회)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방송이 밀어줘야 할 텐데 사람을 쓰고 내삐는(내버리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일이 생기고 하니까 참 가슴이 미어집니다."

    하루아침에 천금 같은 아들을 잃은 부모들의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하다가도, 생각 이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던 아들의 사고를 떠올리면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는 10월 EBS '다큐프라임'에서 방송 예정이었던 자연 다큐멘터리 '야수와 방주'를 찍기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떠났던 박환성-김광일 PD는 고인이 되어 돌아왔다. 부족한 제작비 때문에 그들은 촬영뿐 아니라 이동을 위한 운전도 도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3일 두 사람의 유해를 무사히 모셔오기 위해 현지로 떠난 유가족과 한국독립PD협회·한국PD연합회·EBS 관계자들은 사고 차량에서 채 다 먹지 못한 햄버거를 발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현지에서 화장 처리 후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들어왔다. 곧장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빈소를 마련했다. EBS 또한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EBS 신사옥 1층에 분향소를 마련해 오는 30일까지 운영한다.

    28일 오후 3시, 우종범 EBS 사장이 임직원들과 같이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빈소를 찾았다. 유가족은 하릴없이 세상을 떠난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울먹였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안전에 힘써 달라고 강조했다.

    ◇ 故 박환성 PD 어머니 "진짜 몰랐다, 그렇게 고생하는지…"

    故 박 PD의 아버지 박명호 씨는 "제작비가 떨어져서 제대로 차, 가이드를 못 구해서 사고가 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액정이 산산이 부서진 고인의 휴대폰을 보여주며 "얼마나 충격이 컸겠나"라며 "아(애)가 이렇게 된 거라 생각하면…"이라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제작비를 선진국처럼 100%는 못 줘도 어느 정도 되어야 작품도 마음대로 찍고 할 텐데 사람만 고생하고… 가슴이 참 미어진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방송이 밀어줘야 할 텐데 사람을 쓰고 내삐는(내버리는) 기분이 든다"고 덧붙였다.

    남아공 현지에서 두 PD가 타고 다녔던 차량에 남아있는 음식물 (사진=한국독립PD협회)

     

    박 씨는 "제작비 아끼려고, 한 끼 때우려고, 나가서 고생하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이때까지 그것도 몰랐다. 이게 다 뭐하는 건가 싶더라"라고 울먹였다.

    故 박 PD의 어머니 강연자 씨 역시 "진짜 몰랐다. 그렇게 고생하는지…"라고 읊조렸다. 그러면서 "환성이는 결혼을 작품이랑 했다고 말했었다"며 "대한민국에서도 내셔널 지오그래피에 버금가는 작품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더라. 그게 평생 소원이라고… 그 뜻을 못 이루고 갔다"고 전했다.

    고인의 동생 박경준 씨는 "저희 형은 고인이 되었지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에 대해 각별히 신경 써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 故 김광일 PD 아버지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 힘들진 않아"

    故 김 PD 아버지 김춘길 씨는 "제가 김광일 PD의 아버지다. 38살인데 열 살, 여덟 살 먹은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아이들이 있다. 애들을 키울 때인데…"라며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녀는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다. 제가 그런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우리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지에 나가 촬영할 때 꼭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너무 열악하면 촬영을 외국으로 보내지 말고, 보낼 바에는 현지 운전수를 쓰게 해야 한다는 거다. 우리나라 PD들이 운전하면 길도, 도로 사정도 모르지 않나"라며 "현지 사람 운전수를 고용하는 등 형편이 됐을 때 현지 촬영을 보내고, 돈이 안 되면(모아졌으면) 기다렸다 나중에 보냈으면 좋겠다"는 절절한 마음을 전했다.

    우종범 EBS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故 김광일 PD의 아내 오영미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김 씨는 "한 달에 전화 한 통 못해서 하다 못해 화장실 갔을 때라도 전화 한 통 하라고 했더니 '아버지, 너무 힘들고 바빠요'라고 했다"고 말했다.

    故 김 PD의 어머니 윤옥순 씨는 "저희 아들, 방송 일 힘들다는 것을 알아서 못하게 했었다. 항상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고, 방송 일이 좋아서 한다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못 이루고 가서 맘이 아프다"고 밝혔다.

    "아버지가 눈 수술을 했는데도 시간이 없다며 못 왔다. 속상해서 전화라도 한 통 하라니까 '밥 먹을 시간이 없다, 김밥 한 줄 사다 놓고 일하는데 이제 김밥이 질려서 쳐다보기도 싫다'고 했다. 먹지를 못하니 화장실 갈 수도 없고 그러니 전화도 못한 거였다. 뒤에서는 그렇게 힘들게 일을 하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편하게 TV를 본다. 그 고생하는 걸 아무도 모른다. 이제 자식들은 아빠 얼굴 보고 싶어도 못 본다. 집에 잘 들어오지도 못하고 어쩌다 한 번 오면 옷만 갈아입고 갔다. 그렇게 살아도 제가 볼 땐 고생만 죽어라 했다. 자기는 항상 이루고 싶은 꿈이 있고 방송이 너무 좋다는 말만 항상 했다. 그러다 가 버리니까 너무 안타깝고 불쌍하다. 이 좋은 세상 한 번 좋게 못 살아보고 고생만 한 것 같아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에 우 사장은 "같은 방송인으로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안타깝다"며 "좋은 방법을 찾도록 하겠다. 고인의 뜻에 맞게 하겠다. 거듭 위로 드린다"고 말했다. EBS는 두 사람에게 직원에 준하는 대우를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 유가족들이 입 모아 바라는 것은 '나쁜 관행 개선'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故 김광일 PD 아버지 김춘길 씨(왼쪽에서 두 번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모습 (사진=김수정 기자)

     

    같은 날 오후 4시에는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가 빈소를 찾았다. 이 후보자 역시 故 박환성-김광일 PD 유가족을 만나 위로를 전했다.

    이 후보자는 "한국방송 발전에 외주제작사들의 대우가 굉장히 중요한데 너무 어려워, 청춘의 꿈을 안고 왔다가 환경이 열악해 일찍 가 버린 경우가 많아 (역량이) 계속 축적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런 불의의 사고가 나, 저도 개인으로서 또 이쪽에 관심을 가진 학자로서 마음이 아프다"며 "앞으로 제가 임명된다면 이런 걸 좀 챙겨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故 박환성 PD는 독립PD들이 작품을 만들어도 방송사가 '간접비' 명목으로 제작비 일부를 떼가는 방송계의 오랜 관행에 반기를 들고 정면으로 맞선 인물이었다. 자연히 이런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7. 21. EBS "독립PD 사망 이후 비용 부담, 법적 지원할 것")

    박명호 씨는 "(독립PD들이 보조금을 따내도) 제작하는 데 다 안 썼다고 한다. 방송사가 30~40% 삭감을 해 버려서. EBS 말고 타 방송사도 가격 차이만 있고 거의 다 그렇다고"라며 "(방송사) 갑질이 너무 심한 것 같다. 지원을 해 줘서 좋은 작품이 나오도록 해야 되는데 (예산을) 삭감해 버리면 좋은 작품이 나오겠나. 위원장이 되시면 그런 걸 바로잡기 위해 애써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요청했다.

    김춘길 씨는 "제 아들은 세상을 바꾸겠다고 PD 생활을 했다. 관행을 뜯어고치는 것이 세상을 바로잡는 것이다. 관행은 나쁜, 아주 나쁜 버릇"이라며 이같은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내정자가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 보겠다", "관심을 가지고…"라고 하자 김 씨는 "관심이 아니고, '해 주십시오'. 만약에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되시면 해 주십시오"라고 재차 언급했다. 이에 이 내정자는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故 박환성-김광일 PD의 추도식은 내일(29일) 오후 1시 연세장례식장 영결식장에서 열리며, 발인은 30일 오전 7시다.

    故 김광일-박환성 PD 합동장례식장 입구에 놓인 화환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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