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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 작가들 "취재 가장 큰 걸림돌, MBC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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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D수첩' 작가들 "취재 가장 큰 걸림돌, MBC 자체였다"

    제작중단 13일째… PD들 지지 성명 및 제작자율성 침해 사례 발표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PD수첩' PD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제작중단에 나서게 된 배경을 밝혔다. PD들이 각자의 이름을 건 피켓을 들고 있는 모습 (사진=이한형 기자)

     

    이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기억하고 있을, MBC 'PD수첩'의 캐치프레이즈는 바로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였다. 어느 순간부터 공식 홈페이지에서조차 자취를 감춘 그 문구는 한때 'PD수첩'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부심이었다.

    권력의 치부를 파헤치고 사회 구조적 병폐를 드러냈던 'PD수첩'은 김재철 사장 이후 힘을 점차 잃어갔고, 수 년이 지난 지금은 "아직도 PD수첩 방송하고 있어?"라는 반문을 듣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취재작가들이 취재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MBC요? 거절하겠습니다"였고,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은 "'PD수첩'에서 하실 수 있겠어요?"였다.

    깊이 파고들어야 할 이슈는 아예 아이템 논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고, 어렵사리 제작해서 방송을 하더라도 구체적인 방향 지시가 뒤따른 지 5년, 당초 1일 방송되기로 했던 '한상균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제작 불허가 기폭제가 되어 'PD수첩' PD들(11명 중 10명)은 지난달 21일부터 제작을 중단했다.

    제작중단 13일째이자, 본방송이 2주째 결방된 시점인 2일, 'PD수첩' 작가들은 PD들의 제작중단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어 다시 과거의 'PD수첩'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성명에는 'PD수첩' 작가 전원(김영민·류가영·문정화·박수정·송애림·송현정·이소정·이아미·인소희·정초희·조희정·차주영)이 참여했다.

    이들은 예의 그 날카로움과 집요함을 잃은 'PD수첩'에서 일하며 끊임없이 의심받아야 했던 시간을 고백했다. 이들은 인터뷰나 취재 요청을 하면 인터뷰이들은 전화조차 받지 않거나, 얼굴이 MBC 로고와 함께 나가는 것을 원치 않아 했다고 설명하며 "MBC라서 진심으로 죄송했다. 섭외와 취재의 최대 걸림돌은 MBC 그 자체였다"고 밝혔다.

    이들은 거듭되는 아이템 반려 속에 스스로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성명에 나온 한 취재작가는 "'PD수첩'에 온 뒤, 세월호나 4대강 아이템 기획안이 곧바로 킬(반려)당하는 걸 보며 생각했다. '아, 이런 아이템은 여기선 못 하는구나.' 그게 계속 반복되니까 저도 사건사고 아이템만 찾게 되더라"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는 노란 리본 (사진=황진환 기자)

     

    이들은 또한, MBC본부 조합원인 제작진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위원장을 다룰 경우 공정성 문제가 발생한다며 8월 1일 방송 예정이었던 '한상균을 향한 두 개의 시선' 제작을 불허한 간부들에게도 일침을 놨다.

    이들은 "1990년 첫 방송 이래 27년간 숱하게 다룬 노동문제 아이템이 '청부 아이템'이라니. 그렇다면 최근 업무 과중으로 인한 자살과 구조조정 문제를 다룬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현대자동차 하청업체인 유성기업의 노조 문제를 다룬 KBS '추적 60분'은 누구의 '청부'를 받은 것인가"라며 "지난 3년간 '세월호' 아이템을 막아선 것은 누구의 '청부'였나? 'PD수첩'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시청자들이 외면하게 만든 것은 누구의 '청부' 때문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2016년, 시민들이 촛불을 든 이유는 정치적 편향성 때문이 아니었다. 비정상의 정상화. 나라를 나라답게 되돌리기 위한 행동이었다. 'PD수첩' 제작중단을 지지하는 작가들 역시 그렇다. 목격한 것에 침묵하지 않는, 살아있는 어떤 권력과도 단호하게 맞서는, 다시 우리는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로서 글을 쓰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작중단에 나선 'PD수첩' PD들에게는 'MBC에 정의를 다시 세울 것'을, 사측에게는 '경영진 사퇴'를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PD수첩'에서 겪었던 비정상적인 지시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이날 공개된 사례 중 일부를 공개한다.

    MBC 'PD수첩' 제작자율성 침해의 대표적 사례
    - 누구를 위한 '기계적 중립성'인가

    시사프로그램 작가는 구성안과 대본집필은 물론 취재 전반의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 'PD수첩' 작가들에게 사측이 끊임없이 요구해온 것, 바로 '기계적 중립성'이다. 중립성,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요구한 '기계적' 중립성은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해치고 공정성을 잃게 만든 '도구'로 활용됐다. 중립이 아닌 최악의 편향성이었다.

    탄핵 찬성과 반대 두 진영의 여론 전쟁을 다뤘던 2017년 2월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편 제작 당시의 일이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발언 영상을 지켜보던 당시 박용찬 국장의 지적은 간단명료했다. "촛불집회도 돈 받은 사람들 있다던데, 왜 취재하지 않았나?" 태극기 집회의 문제점을 짚으려면, 같은 분량으로 촛불집회의 문제점도 짚으라는 것이다. 지시는 이어졌다.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의 비상식적인 행동을 삭제하라는 것. "애초에 취재가 편향됐다"는 지적까지 했다.

    - 'PD수첩'의 국장은 왜 '일베' 모니터를 지시했나?

    그렇게 어렵게(?) 다듬어진 '탄핵, 불붙은 여론 전쟁'편 방송이 나간 후, 박용찬 국장은 색다른 지시를 내렸다. 'MBC 홈페이지 게시판과 일간베스트 게시판의 반응을 취합하라'는 것. 일을 맡은 취재작가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든 '비정상'적인 지시였다. 정말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면 홈페이지 게시판은 그렇다 쳐도, 왜 극우성향인 '일베'의 게시판 분위기를 확인해야했던 걸까. 그렇게 운운하는 ‘중립성’을 위해서라면 다른 성향의 커뮤니티 반응도 알아보라 지시했어야 하지 않을까? 설마 공정방송 MBC의 'PD수첩' 국장께서 일베 회원들의 불편한 심기를 걱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정말, 아니었길 바란다.

    - '세월호' 리본을 달면 ‘일반시민’이 아니라는 'PD수첩' 국장

    막말 지시는 디테일하기까지 하다. 2015년 8월 방송된 '선생님! 저를 만지지 마세요'편 당시에는 정연국 국장이 전교조 측 인터뷰 내용을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인터뷰는 화면에 나온 전교조 마크를 잘 보이지 않게 한 뒤에야 나갈 수 있었다. 2016년 9월 경주지진을 다뤘던 '한반도 대지진의 전주곡' 편에서는 박용찬 국장이 원전인근주민들의 인터뷰를 삭제하라고 지시했다. 주민들이 입고 있던 조끼에 적힌 '원전반대'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올해 6월 'GMO 그리고 거짓말'편 시사 과정에서 조창호 국장은 기이한 발언을 한다. 한 시민의 인터뷰를 보던 중 '저 사람은 일반 시민이 아니지?'라는 알 수 없는 말을 던진 것. 옷에 세월호 리본이 있다는 것이다. 처음 알았다. 세월호 리본 하나면, '일반시민'이 아닌 '특별시민'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시사제작국장으로서의 자격이 의심되는 발언은 또 있다. 한 여성 전문가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자 던진 박용찬 국장의 발언은 참으로 가관이다. '비디오에도 신경 좀 쓰세요'. 인터뷰 내용인 '오디오'보다 '비디오', 즉 외모 때문에 인터뷰이가 부적절했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시사프로그램의 인터뷰이가 외모로 결정되었나. 인터뷰이가 여성인 경우에만 유독 '비디오'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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