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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기자 "회사는 머리 없이 자판치는 기계가 되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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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기자 "회사는 머리 없이 자판치는 기계가 되라 했다"

    'PD수첩'이 시작한 제작중단… MBC 시사제작국 타 부서도 동참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 MBC 시사제작국 기자, PD들이 제작중단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수정 기자)

     

    MBC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이 2주째 결방 중이다. 'PD수첩' 제작진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세월호 유가족 우는 장면 삭제', '국정원·백남기 농민·4대강 녹조' 등의 아이템 반려' 등 숱한 제작자율성 침해를 겪어왔다고 폭로하며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지난달 21일부터 제작중단 중이다. 제작 PD 11명 중 10명, 12명의 작가 전원이 동참했다.

    'PD수첩'에서 시작된 제작중단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경제매거진 M'(시사제작1부), '시사매거진 2580'(시사제작2부), 'PD수첩'(시사제작3부), '생방송 오늘 아침'-'생방송 오늘 저녁'(시사제작4부)의 프로그램을 도맡아 왔던 시사제작국 기자, PD 32명이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취재·보도·제작을 위해 MBC에 들어온 이들이 스스로 일손을 놓은 이유 역시 '경영진의 지나친 검열과 간섭' 때문이었다. 이들은 직종을 뛰어넘어 제작중단을 결의했고, 오늘(3일) 오전 9시부터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앞으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피케팅을 벌일 예정이다.

    3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사옥 앞에 시사제작국 기자, PD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피켓을 들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지금까지 감내해야 했던 괴로운 시간들을 고백했다.

    ◇ "비참함과 자조 떨칠 수 없었다"

    '시사매거진 2580'의 노경진 기자는 "MBC는 제대로 된 취재와 보도를 하는 언론사라기보다 취재의 대상, 뉴스거리나 조롱거리로 인식됐을지 모른다"면서 "사회의 공기(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용하는 도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도 여러분 앞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개인적으로도 조직원으로도 조직의 부조리와 부당함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 기자는 "이미 스테이션 이미지와 신뢰도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황이고 5~6% 시청률이지만, 끝까지 봐 주시는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이자 제작일선에서 배제돼 있는 동료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해 발제하고 취재하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제가 15년째 기자로 일하고 있는데 2012년 파업 전후로 정말 달라졌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심히 일만 하면 됐던 10년, 굴욕적이고 패배감을 맛봤던 5년이었다. 어떻게 하면 편집회의에서 통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비참한 상황이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집요할 정도로 사상 검열이 일어났고 수정됐다. 그렇게 너덜너덜해지면 애초 기획했던 아이템도 아니고 시청자가 원한 아이템도 아니었다. 시간 때우기용 영상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비참함과 자조를 떨칠 수 없었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주변에서 동료들이 자꾸 사라진다는 거다. 지난 박근혜 정부 때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단독을 해 왔던 선배기자는 타사라면 칭찬을 한몸에 받아도 모자랄 텐데, 상사에게 쓴소리했다고 기술직에 가까운 중계팀 PD로 발령났다. 남아있는 자들은 무력하게 떠나보내고 떠난 사람들은 남아있는 저희를 걱정한다. 이런 일이 100번 가까이 반복되더라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회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자든 뭐든 그냥 머리 없이 가슴 없이 손가락만 움직여 자판치는 기계가 되라는 것이다.

    한 사회의 정상적인 개인으로서도, 기자로서도 사측은 저희를 놔두지 않았다. 세월호 보도를 놓고 진실이라는 말을 못 쓰게 하는 국장, 김경준 단독 인터뷰 따온 후배에게 제작을 끊임없이 방해하며 출장비 정산도 안 해주는 회사. 결국 참지 못하고 제작중단에 나섰다. 저희 역시 이런 무력감과 부조리함을 견딜 수 없다. 이 상황에서 방송해봤자 시청자들에게 해악만 끼칠 뿐이다. 감히 국민들에게 알리고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싶다. 다시 한 번 기회를 달라 간절히 부탁 드린다."

    ◇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사진=김수정 기자)

     

    '경제매거진 M'의 강연섭 기자는 "제가 근무한 3년 동안 박근혜 정부에서 민감한 이슈였던 최저임금, 열정페이, 비정규직, 청년실업 , 프랜차이즈 갑질 등의 아이템을 못하게 했다"며 "(위상이) 땅으로 떨어진 시사제작국의 일원으로 추락을 볼 수만은 없어서 이 자리에 함께 나섰다"고 말했다.

    '생방송 오늘 저녁'의 김동희 PD는 생활정보 밀착형 프로그램을 맡는 자신이 시사제작국의 제작중단에 동참한 이유를 2가지로 정리했다. 제작자율성 침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조직이었다는 점, '생방송 오늘 저녁'의 PD 3명이 모두 'PD수첩' 출신으로 그동안 동료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잘 알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감정이 북받쳐오른 듯 이따금 울먹였다.

    "많은 선후배들이 제작현장을 떠나는 것을 보았다. 다큐멘터리부에서 다큐를 계속 만들면서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만든 것도 많았다. 탄핵이 진행되는 순간에도 저희 부서에서 만들었던 탄핵 다큐는 불방이 됐고, 자기검열이 마음속에 많이 있었다. 방송을 내보내면 선배들에게 연락을 받는다. '방송 잘 봤다'부터 '왜 이런 방송을 네가 했느냐'는 이야기까지. 저도 자포자기한 방송을, 애정을 가지고 끝까지 본 선배님들이 계셨다. 꼭 보고 코멘트를 해 주시는데 가슴이 아프더라. 저희가 이렇게 같이 하게 된 이유는 조금은 눈감고 자포자기해버린 저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고, 계속 이렇게 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왕종명 MBC기자협회장은 "MBC 싸움의 오랜 역사 중 이렇게 기자와 PD가 한 조직 내에서 결합해 제작중단에 들어간 장면은 처음 경험한다. MBC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들이 먼저 시작했지만 제자리로 돌아갈 때는 우리 함께 돌아갈 것을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송일준 MBC PD협회장은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 치하의 보도지침을 언급한 후 "김재철-김종국-안광한-김장겸 사장 치하에서는 (내부에서) 보도지침을 너무도 꼼꼼하게 실시해 왔다"며 "기자, PD들이 제작중단을 선언한 것은 불의한 체제를 끝장내고 말겠다는 결심이 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청자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부탁했다.

    시사제작국 기자, PD들은 앞서 성명을 통해 "기억해야 하는 이름들이 있다. 김재철, 김종국, 안광한, 김장겸 사장. 백종문, 김철진, 김현종, 김도인 편성제작본부장. 이현숙, 심원택, 송재우, 정연국, 박용찬, 조창호 시사제작국장. 지난 5년, 사적 이익을 위해 MBC의 시사 보도 부문을 난도질한 언론 부역자들을 단죄하는 첫 걸음을 시사제작국 기자와 PD들이 오늘 내딛는다. 우리는 MBC가 공정방송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제작을 중단한다"며 △김장겸, 김도인, 조창호 사퇴 △'PD수첩' 이영백 PD에 대한 대기발령 철회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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