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그냥 제 생일 때 사주는 걸로!"
지난 5월 5일, 전북 전주의 사립 특수학교인 자림학교 체육교사 강모(45) 씨는 아이들 때문에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어린이날 선물을 사주려 양쪽에 7살, 9살 난 두 아들을 데리고 간 마트에서였다.
전북 전주의 한 마트에 어린이 장난감 '터닝메카드'가 진열된 모습. 단돈 3만원이 채 안되는 장난감을 강 씨의 자녀들은 차마 집어들지 못했다. (사진=김민성 기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두 형제는 그토록 갖고 싶었던 터닝메카드 장난감을 애써 외면한 채 아버지를 향해 밝게 웃었다. "아빠가 힘든 걸 눈치 챈 걸까요?" 강 씨는 말을 맺지 못하고 붉어진 눈으로 자리를 떴다.
강 씨는 엄연한 정규직 교원이지만 지난 3월부터 수입이 없다. 학교가 강 씨 등 교사 4명의 공익제보로 폐교절차를 밟게 된 뒤 전라북도교육청은 학교에 이들에 대한 인건비 지원을 뚝 끊었다. (관련기사 CBS노컷뉴스 17. 4. 6. '전주판 도가니' 자림학교 교사들 "다시 교단에 서고 싶어요")
'전주판 도가니'로 불리던 장애인재활시설 '자림원' 성폭행 사건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 마무리되면서 일단락됐다. 조모(47) 전 생활관 원장과 김모(57) 전 보호작업장 원장은 지난 2009년부터 3년간 시설 내 장애인 여성 4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각각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이 과정에서 강 씨 등은 양심고백으로 자림복지재단에 맞섰다. 장애 학생들이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재단·학교를 떠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떠난 학교에 교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학교가 별안간 폐교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이다.
예기치 못한 실직 위기에 공립교사 특채를 바랐다. 그러나 전북교육청으로부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전북교육청은 '공익 제보에도 급이 있다'며 특채 대신 명예퇴직을 종용했다.
강 씨도 안다.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만 내려놓으라'는 주변의 충고를 따를 수 없다. 강 씨 말고도 세 명의 교사가 함께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만 무너져도 모두에게 충격이 클 터다.
미술교사 오모(49·남) 씨가 생활비 200만 원을 선뜻 '4분의 1' 하자며 내놓은 것도 그래서다. 함께 견뎌야 하니까. 200만 원은 미술협회 지인들이 십시일반 모아 건넨 돈이었다. 그러나 교사들은 오 씨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전라북도교육청 전경 (사진=자료화면)
오 씨도 누구 못지않게 힘들다. 화병, 우울증, 공황장애 등 몸과 마음이 종합병동이다. 때론 불타 죽는 꿈을 꾼다. 그 속에서는 지글지글 타는 냄새도 난다. 장소는 전북교육청 로비.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사방에서 자신을 옥죄어 오는듯하다. 알알하게 서린 감각에 몸서리를 친다.
고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한창 중요한 시기에 학원을 모조리 끊었다. 학교에서 기가 죽을 법도 한데 담임교사에게 학비 지원을 해달라며 오히려 당당하게 부탁했단다. 괜찮을 척을 하는 건지,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초등교사 오모(51·여) 씨는 자식 된 도리를 못해 노모(老母)에게 죄송스럽다. 상황이 이렇게 됐다고 차마 말씀드리지도 못했다. 딸 걱정으로 하루를 사는 어머니는 머릿속으로 건물 몇 채를 순식간에 지었다 허무는 공상가(空想家)다.
매일 저녁 5시쯤 오 씨는 퇴근 시간에 맞춰 어머니에게 전화를 건다. 방학 핑계로 하루라도 연락을 게을리 했다간 난리가 난다. 퇴근중이라고. 아무 일 없으니 염려 놓으시라고. 언젠가부터 어머니의 자장가는 딸의 거짓말이 됐다.
전북 전주자림학교 전경. 잔여 재학생 두 명이 모두 졸업하는 올해를 끝으로 자림학교는 학생 없는 학교가 될 예정이다. (사진=자료화면)
초등교사 박모 (51) 씨도 벼랑 끝이 얼마 안 남았다. 보험이며 적금이며 알뜰살뜰 모은 재산이 제법 됐지만 하나씩 정리하다보니 남은 게 거의 없다. 이것 또한 견딜 수 있는 고난이겠거니. 환란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을 지키고 있다.
몸이 아프니 병원이 가장 급하다. 그러나 이들은 4명 모두 '직장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기이한 처지에 놓였다. 학교에서 6개월째 월급은커녕 건강보험료도 내주지 않는 까닭에 머잖아 건강보험 혜택마저 받을 수 없을 판이다. 앞이 캄캄하다. 시간은 이들 편이 아니다.
이제 강 씨 등 교사 4명은 마지막 투쟁을 시작한다. 다음 주부터는 서울로 향한다. 청와대와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펼칠 계획이다. 잘 아는 인쇄소 사장님이 고맙게도 각종 선전물을 헐값에 만들어주기로 했다.
출진을 앞두고 이들은 "전북교육청은 우리를 생활고로 고사(枯死)시켜 스스로 나가게 하려는 것"이라며 "잘못한 게 없는데 부패한 특수학교의 교사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모와 형제, 자식에게 도리를 못하고 사는 게 너무 힘들지만 우리가 뜻을 이뤄야 앞으로 나타날 공익제보자들도 용기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눈을 빛냈다.
푹푹 찌는 올 여름도 벼랑 끝에 선 교사들에게는 춥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