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 전당에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가 내부 갈등으로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사무국 직원들이 7일 발표할 성명서에는 부산영화제를 20여년 간 이끌어왔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의 복귀를 요청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10년 이상 근무한 사무국 직원들 대다수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부산영화제가 숱한 외압과 시련을 겪었을 때도 묵묵히 일하면서 영화제를 지켜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외부에 맞서 똘똘 뭉쳐왔던 직원들은 내부에서 벌어진 균열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결국 문제를 공론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다.
사무국 직원들은 잡음보다 더한 위기들이 부산영화제를 덮쳤을 때마다 의연하게 대처해왔다. 이런 이들이 어쩌다 '성명서 발표'라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게 됐을까. 강수연 집행위원장 밑에서 이들이 군말없이 일했던 햇수를 생각하면 이번 성명서는 단순히 이용관 전 위원장에 대한 향수로 보기 어렵다. 영화제 관계자의 이야기를 재구성해 문제의 내막을 짚어봤다.
강수연 위원장은 햇수로 치면 3년 째, 부산영화제에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 3년 동안 부산영화제에는 지난 21년 벌어진 일들보다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
2년 전 처음 부산영화제에 나타난 강 위원장은 이용관 전 위원장과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일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이 그 해 검찰에 고발당하며 해촉당했고, 강 위원장은 홀로 남아 영화제를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설상가상, 부산영화제에는 폭풍이 몰아쳤다. 정부 외압 논란이 거세지면서 개최 불발 위기까지 갔고, 영화인 9개 단체 중 4개 단체가 부산영화제를 '보이콧'했다.
영화인들은 부산영화제의 상징적인 인물인 이용관 전 위원장이 정치 보복성 검찰 고발을 당하자 더 이상 사태를 관망하거나 지켜보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끊임없이 검열에 시달리던 영화계에 부산영화제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상영작 '다이빙벨'을 향한 발길질 한 번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야 만 것이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하는 정관개정이 이뤄졌지만 이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겨우 개최가 확정되자 사무국 직원들은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영화제 준비 기간 자체가 너무나 촉박했기 때문이다.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일단은 영화제 개최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게 없었다.
부산국제영화제 강수연 집행위원장.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정권이 바뀌고 부산영화제를 향한 박근혜 정권의 외압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겉으로 보기에 부산영화제는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달랐다. 오히려 지금껏 묻어왔던 내부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중심에는 강수연 위원장이 있었다.
관계자에 따르면 강수연 위원장은 중요한 업무 결정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사무국을 일방적으로 배제시켜왔다. 자신이 속한 집행부, 프로그래머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만 의존해왔다는 지적이다. 사무국 직원들이 몇 번이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강 위원장은 '불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에서 세상을 떠난 고(故) 김지석 수석프로그래머 겸 부집행위원장은 사무국 직원들과 강 위원장 사이에서 유일하게 다리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그가 영원히 부산영화제와 이별하면서 집행부와 사무국 직원들 간의 갈등은 더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은 최근 수없이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며 성명서를 통해 외부에 이 같은 문제를 알려야 할 지 의논했다. 올해 어김없이 개최될 부산영화제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논란은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관계자 역시 최대한 내부에서 갈등을 봉합해 보고, 그 후에 성명서 발표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전했었다. 안타깝게도 그 말이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사무국 직원들이 부산영화제에 가지는 애정의 크기는 가늠하기 어렵다. 스무 명 남짓한 직원들은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해도, 스트레스가 건강을 해쳐도 지금까지 영화제를 떠나지 않았다. 분명한 한 가지는 이들이 웬만한 애정 없이 불가능한 일들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 부산영화제가 이들을 잃는다면 영화인 단체들의 보이콧보다 더 두려운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